어둠 속에서 어둠을 바라보다

Michael Stone - 범죄의 해부학

by 네오

오 뮤즈여, 지고한 지성이여, 지금 나를 도우소서;

오 내가 본 바를 기록할 기억이여,

그대의 고귀함이 여기 임하기를.


내가 말합니다: "나의 인도자이신 시인이여,

나를 험난한 관문에 임하게 하기 전에,

먼저 내가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헤아려 주시옵소서.


⟪신곡⟫ 1권 '지옥편' 제2곡 7~12행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은 지옥의 마지막 하부층에 도달하기까지의 단테의 경험을 말해준다.



우리도 단테와 마찬가지로 책을 펼쳐

범죄자의 자아와 내면이라는 지옥에 그리고 그 지옥의 끝에 도달하여

이 책의 결말이라는 지상을 밟기까지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 내면의 힘과 정신력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악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단어는 종교에서 기인한 것으로

종교적인 악은 이단 같은 종교적 숭배에서부터 질투, 분노 등의 감정을 말할 때도 쓰인다.

보통 사람들이 악하다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일반 범주에서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부정적인 사건이나 사람을 맞닥뜨릴 때다.



사건이 평범하지 않고, 사건의 원인이 되는 사람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며, 잔인하고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은 행위를 볼 때 우리는 보통 극악무도한, 악마 같은 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사건이 더 잔인하고, 일상에서 동떨어져 있으며, 더 혐오스러울수록

우리는 악하다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마다의 사고 차이와 문화차이 때문에

어떤 나라, 사람한테는 악한 행위가 다른 나라, 다른 사람한테는 악한 행위가 아니기도 하다.

우리는 어디까지를 단순한 잘못이라 부르고, 어디부터를 '악'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이처럼 '악'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악의 심리를 파고들기 전에 악의 정의를 나름대로 세운다.

어떤 행위가 악행이 되기 위해서는,

1. 기가 막힐 정도로 끔찍해야 하고,

2. 사전의 악의(악한 의도)가 행위에 앞서야 하며,

3. 희생자에게 가한 고통의 정도에 극도의 과함이 있어야 하고,

4. 범행의 성질이 이해 불가능하고 당혹스러우며 평범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앞의 기준으로 저자는 살인으로 보는 악의 심리를 22단계로 나누었다.



악의 심리를 세분화하는 이유는 악을 저지른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악행을 한 사람이 교화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정확히 결정하여

적절한 치료를 하기 위함이자 그 사람을 받아들일 사회구성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함이다.



악의 심리 22단계를 모두 나열할 수 없지만,

정당방위에서 충동적인 살인,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조금 있거나 없는 상태에서 저지른 더 심각한 살인,

미리 악의를 가지고 살인하며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현저한 사람,

연속살인 및 다중살인,

연쇄살인자•고문자•사디스트로 크게 분류된다.

이를 보아 사이코패스와 악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듯하다.



이 책은 여러 단계에 해당하는 예시를 보여주며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예시들은 우리가 신문 기사에서 한 번씩 보는 치정문제가 얽혀있는 살인에서

가학적인 고문을 포함한 살인까지 아주 다양하다.



다양하고 방대한 살인에 대한 자료를 읽느라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많은 예시를 읽어본 결과

살인이 일어나는 이유는 유전과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유전적인 원인이 거의 없더라도 갑작스러운 사건에 의해서 공격적 성향이 생기기도 하며

어릴 적의 학대 같은 환경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원인을 말하는 것이 마치 범죄자에게 자신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면죄부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게끔 만든다.



뉴스 기사에서도 사람을 폭행하거나 살인한 범죄자가 자신이 어릴 적 가족에게 학대당했다던가

이혼가정에서 켰으며, 집이 가난했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었다며 자신이 평범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달라졌을 거라며

때로는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책에 나온 한 예시 덕분에 이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문제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빌리 싱클레어는 스무 살 때 강도살인을 저질러서 사형수로 7년 일반죄수로 28년을 살았다.

그러던 중 감옥에서 발행하는 신문의 편집 일을 담당하게 되었고,

앙골라 교도소에서 자행되던 '돈을 받고 석방을 시켜주는' 비리를 폭로하는 데 일조를 하였다.

일조하는 중에 돈을 주면 석방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제는 고령으로 정식 석방되어 텍사스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이후 법률회사에서 일하면서 앞의 비리나 부정을 똑같이 겪는 다른 재소자를 도와주고 있었다.



이러한 예시를 중간중간에 보여주어 범죄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반박한다. 이는 교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관련 법을 제정하는 등의 제도적 필요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범죄자가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마지막에 다다를수록 범죄의 발생원인을 뇌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뇌의 보상체계와 범죄를 연관시켰는데,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 저하나 충동 조절 장애 같은 뇌의 이상이 있거나

심장박동이 낮은 경우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보인다고 한다.



또한 일명 ‘전사 유전자’로 불리는 MAOA 유전자 가운데 변이형(MAOA-L)을 가진 사람이

공격적·충동적 행동을 더 많이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그러나 유전이나 뇌와 범죄를 직접적으로 연관 짓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범죄학이라는 학문이 만들어지는데 큰 기여를 한 생물학적 범죄라는 것이 있다.

이는 범죄의 행위의 원인을 개인의 신체적 생리적 특성에 두는 이론이다.

19세기에 널리 통용되었던 개념으로서 인종차별을 합리화하는 열쇠로 쓰이기도 했었다.



이런 과거의 행적 때문에 생물학적 범죄학은 유전, 신경과학과 함께 사회학적 요인을 함께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이유에서 매우 조심히 관련 연구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유전적 요인이 발현되려면 환경의 영향이 크다는 말도 덧붙이기도 했다.



내가 범죄학을 공부했을 당시 대부분 사회요인이나 개인의 심리 같은 부분을 범죄와 연관 지었는데

이 책은 생물학적 요인과 범죄의 밀접한 관계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서 신선했다.



더불어 저자는 이러한 생물학적 요인을 가진 사람이 처한 환경을 개설함으로써

범죄와 관련 있는 유전자의 발현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나는 출생 후 환경의 영향을 받는 요인을 심리적인 것만 생각했지만,

유전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앞의 연구 자료와 글쓴이의 주장은 나의 사고를 더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범죄의 다른 면까지 고려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범죄학의 다양한 해석을 경험하게 해 주었고,

범죄 연구에서 사회적·생물학적 요인의 균형적 탐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베아트리체가 어둠 속 단테를 위해 용기를 주었듯

나 또한 어둠 속에서 길을 찾게 해 준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