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이수정 저
『형벌이 효과적이려면 그것이 확실해야 하며,
그 확실성은 형벌의 강도보다 중요하다.
형벌이 가혹하더라도 그 집행이 불확실하면
범죄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中-
범죄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각 국가에서 쉽게 보이는 모습은 다르다.
연쇄살인의 경우 크게 환상형 연쇄살인, 사명형 연쇄살인, 쾌락형 연쇄살인, 권력 통제형 연쇄살인으로 나눈다(FBI - Serial Murder: Pathways for Investigations (2008)).
미국에서는 성적 쾌락이나 살인 자체에서 성적 쾌락을 갖는 쾌락형 연쇄살인범의 비율이 높은 반면
한국에서는 지배와 통제를 통해 심리적 만족을 얻는 권력/통제형 연쇄살인범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음주가 연관된 범죄나 불법 촬영과 같은 범죄가 높은 비울을 차지한다.
이처럼 각 국가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범죄가 다 다르며 각 국가의 사회 분위기, 문화와 범죄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범죄를 심도 있게 다루는 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이수정 범죄심리학자가 저자인 이 책이
얼마나 한국의 범죄를 깊이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이코패스, 성범죄, 정신질환, 성격장애, 충동조절장애 같은 일반적인 범죄 유형부터
한국형 범죄를 다룬 묻지마 범죄, 주취폭력 등을 다룬다.
나는 여러 목차 중 묻지마 범죄가 가장 인상 깊었다.
묻지마 범죄는 피해자들의 특징이 일관되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를 의미한다.
이는 사회 부적응, 사회에 대한 불만 및 분노, 범죄자의 개인적 문제에 의해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형태로 대부분 발생한다.
묻지마 범죄는 공공의 영역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깨는 심각한 범죄인데, 이는 누구나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심하면 죽임까지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인되어 있다.
내가 이 범죄에 주목한 것은 앞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묻지마 범죄’라고 하는 이름의 특성 때문이다.
묻지마 범죄의 가장 큰 동기는 절망과 분노이다.
그래서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것뿐이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기 위해
사회 전반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테러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묻지마라는 단어가 남용되면서
여러 범죄의 원인을 찾지 않고 묻지마 범죄로 분류되는 현상이 지속하여 생기고 있다.
범행 동기를 모르겠다는 이유 만으로 묻지마라는 수식어를 붙임으로 인해
범죄예방과 대책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범죄를 잘못된 유형에 포함시킴으로써
그 범죄에 대한 해결책과 이후의 범죄자 재사회화 등과 같은 정책들이 실패하게 되며,
이 피해는 사회 구성원들이 다 같이 떠안게 된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요즘 들어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하루에 몇십 건씩 올라오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범죄행위를
일반적인 폭력행위와 범죄와 같이 말하고 분류하는 움직임이 보였기 때문이다.
UN women에서는
여성 폭력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여성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폭력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미국은 여성 또는 성 정체성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생한 폭력을 성별 증오범죄라고 분류하고 있다.
부산에서 여성을 돌려 차 폭행한 어느 남성,
버스로 귀가하던 여학생을 살인한 남성,
머리가 숏컷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여성을 겨냥한 여성혐오범죄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언론 및 사법부, 입법부는 여성혐오범죄라는 단어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분류체계를 혼란스럽게 하여 이 범죄들이 재발하지 못하게 막는 것을 힘들게 하며
그 이상으로 여성혐오범죄가 기승하도록 만든다.
범죄에 대한 적절한 처벌과 교화 및 교육이 뒤따라야
사회 구성원들은 안전하고 평안하게 각자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가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며,
사회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의 신뢰 또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여러 범죄의 동기와 범죄자의 심리,
여러 범죄가 가지는 특성을 정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범죄자의 재사회화와 교육 및 훈련, 심리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 또한 이러한 조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후속조치를 받아들이는 범죄자와 아닌 범죄자 또한 나눌 필요가 있다.
일부의 범죄자는 적절한 교육과 교화를 통하여 사회구성원 속에 녹아드는 반면,
다른 범죄자는 교화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후자를 교화하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은 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의 기회를 뺏어버린다.
또한 자본을 불필요한 곳에 사용함으로써 막대한 사회비용 손실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사회에서의 영구적인 분리와 사회로의 귀환 중 무엇이 범죄자에게 필요한 조치인지 판단해야 하며, 이러한 판단을 정확히 하기 위해 여러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판단이 잘못되면 과도한 형 집행이나 부적절한 공권력 사용으로
법 및 사회적 프로그램에 불신이 생기며 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범죄의 정확한 동기파악 및 특성을 바탕으로 명확하게 분류를 해야 하며, 범죄자 개인에게 재사회화 프로그램 필요 유무를 엄밀히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