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례, 정말 잘못된 걸까?

법의 눈은 선한 의도를 먼저 보지 않는다

by 곽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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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먹는 급식, 이제는 국내산 농산물로 채웁시다.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학교에는 식재료비를 지원하겠습니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건강과 지역경제를 위해 만든 이 조례는
누가 봐도 좋은 정책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먹고, 지역 농가는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다.
선생님들도, 학부모도, 농민들도 모두 환영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발이 등장했다.
수입 농산물 유통업체가 나섰다.
그들은 이 조례가 수입산 농산물을 배제한다
국제무역협정(GATT)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순식간에 지역 신문엔
‘건강한 학교급식’ 논란이 아닌
‘조례가 국제조약 위반?’이라는 제목이 걸렸다.
지역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우리 학생들 잘 먹이겠다는데, 그게 왜 국제법 위반이라는 거죠?”

이 조례는 결국 법정 다툼으로 이어졌고,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헌법 제6조 제1항에 따라,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GATT와 충돌하는 조례는 효력이 없다.”
— 대법원 2005.9.9. 선고 2004추10


법의 눈은 선한 의도를 먼저 보지 않는다.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상위법과 충돌하면 설 자리를 잃는다.

당시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물었다.
“그래도 그 조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한 거였잖아요.”
맞다.
하지만 법은 “좋은 마음”보다 “정해진 질서”를 먼저 따진다.

조례는 지방의회가 만드는 법이지만,
그 위에는 헌법과 국제조약이 있다.
그리고 법은, 그 위계질서를 단호히 지켜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지방의 선택이, 국제 규범과 충돌할 때 우리는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지역의 건강, 자치, 농민의 생계, 학생의 안전이라는
구체적이고 따뜻한 공익
추상적이고 멀게 느껴지는 ‘자유무역의 원칙’ 앞에 설 자리를 잃는다면
그게 진짜 정의로운 결과일까?

국제조약은 한 나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위축시킬 때,
우리는 그 ‘질서’를 어떻게 다시 구성해야 할까?

법은 위계 속에서 판단하지만,
그 위계 안에서 숨은 작은 이익, 작지만 소중한 공공성
종종 눌려 사라지는 순간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이 판례는 조례가 국제조약에 어긋났다는 결론을 냈지만,
그 조례가 추구했던 가치 자체가 틀렸다는 판결은 아니었다.

법은 정답을 내리지만,
정의는 여전히 그 뒤에서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을 남긴다.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 틀렸던 걸까?

아니면, 그 선택을 담을 법의 그릇이 너무 작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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