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2005년 여름, 출근 준비 하는 내내 욕 나오는 기분이다. "씨 X 내 돈 내고, 국가 인재 키우겠다는데, 왜 지랄이지" 나도 모르게 툭 뱉고는 멈칫 놀란다. 이런 말조차 입 밖에 내면 안 된다. 어젯밤 TV시사 프로그램 속 기러기 아빠, 범죄자인 듯 예비 이혼 부부인 듯, 황량한 싸늘한 말투는 나의 기슴을 찔렀다.
아침 회의가 끝난다. 흩어지는 동료들 훑어보며 주섬주섬 업무 수첩을 접는다. 사무실 나와 전시실 입구 쪽 홀을 지나 건물 바깥으로 나온다. 캐나다 시간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빨리 통화해야지.' 오늘 할 일들이 나의 머릿속을 흘러 다닌다. 파란 하늘은 피어나는 잿빛 구름으로 서서히 지워진다. '어젯밤에도 통화 못 했는데' 구름을 뚫고 내려선 한 줄기 오전 햇살. 그 아래 붉은빛 장미꽃, 능소화 넝쿨 우거진 그늘 속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핸드폰을 꺼내든다. "띠리리~" 전화음, 나의 귓속을 파고든다. '아직 초저녁이니 안 자겠지'. 순간 "자기야" 부드러운 목소리, 아내의 미소 띤 얼굴이 보인다. 그녀의 부드러운 어투가 속상한 내 마음을 감싼다. "오늘 별일 없었나?" 두 딸과 와이프를 캐나다에 남겨두고, 기러기아빠 생활 2년 차. 매일 아침 혹은 밤에 전화 거는 게 의식이 되었다. 사랑의 증거 자료이다. 아내가 받자마자 이젠 낯선 사람이 된다. '빨리 전화 끊어야지'라는 초조함이 밀려온다. 할 일들이 폐차장에 잔뜩 쌓인 폐자재 쓰레기 더미처럼 느껴진다.
하루라도 통화하지 못하면 나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내와의 의미 없는 대화는 그 어떤 진실보다도 강하다. 성당 혼인 성사의 순결함. 그것이 나를 지배한다. '내가 바람피우나 봐라.' '내가 지하방 사나 봐라.' 나의 두 딸들에 대한 교육 열정을 한순간에 못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사회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