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일상 : 하루는 일출 후 끝난다.

모기

by fantasticbaby

책, 커피 믹서, 직접 만든 샌드위치 주섬주섬 챙겨 검은색 작은 가방에 차곡차곡 쌓을 듯 집어넣고 집을 나선다. 수십 년 근무했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친구 회사에서 또 몇 년간 조직 생활을 이어갔다. 운 좋게도 마지막으로 해오던 온라인플랫폼 사업을 들고 나왔다. 사업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나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독립한 직후부터 코로나가 유령처럼 주변을 맴돌고, 와이프는 항암 치료를 시작하였다. 와이프 항암 치료 4년간 나도 애를 많이 먹었다. 입, 퇴원을 함께 하고, 언젠가부터는 퇴원할 때 병원비를 천만 원씩 내어야 했다. 그것도 헛수고, 결국 와이프와 사별했다. 이어서 어머니 항암 과정을 겪고 올해 초 어머니 마저 돌아가셨다. 그 세월이 힘들었는지, 난 올해 개인 사업도 잠시 쉬기로 했다. 그야말로 평생 처음으로 하는 일 없는 은퇴 생활이다.


지금 나의 하루는, 낮에 시작하여 밤을 지나고, 다음날 일출을 보고서야 끝난다. 남들은 하루를 시작할 새벽이 지나고서야 나의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잠을 깨고 식사를 하고 준비하여 집을 나서는 시간이 오전 10시쯤이니, 그때부터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10:00

나는 최근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 고개를 돌리다 보면 귓속 깊은 곳에서 '수르르, 수르르' 하는 액체 굴러 다니는 소리를 듣곤 했다. 새벽녘 힘들게 의식 잃듯, 기절하듯 자다가, 한 번씩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거칠게 귓속을 후볐고, 급기야 통증과 함께, 귀 뒤쪽을 만지면 피부 밑 딱딱한 덩어리가 느껴졌다. '병원 가봐야겠다.'


주문진읍 이비인후과 찾아갔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던 신축 건물 7층, 깔끔한 외관에 명품관 들어서듯, 알 수 없는 자신감과 안도감을 느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오션뷰, '이런 경치가 있다니' 나도 모르게 창가 쪽으로 끌리듯 발걸음을 옮긴다. 강릉에서는 도통 말 붙일 상대가 없는 나, 진작부터 알던 사람을 만난 듯 간호원들에게 "이런 곳에서 근무하시면 행복하겠네요."라고 들뜬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사무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그녀들 반응, 대화는 금세 끊겨버린다.


병원을 나선 후 명주교육도서관으로 간다. 늘 그렇게 했다는 듯이. 강릉집에 있을 때는 카페 아니면 도서관 외에 갈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요즘처럼 책 많이 읽어본 적은 학교 졸업 후 처음이다. 나는 지금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또 스레드, 블로그에도 글을 쓰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작가도, 돈벌이도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아니 사실 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수십 년 전부터 들어왔다. 노후 준비 자금으로 십억이 필요하니 어쩌니라는 그들의 말. 실제 혼자 사는 나는, 한 달에 받는 국민연금 백몇십만원이면 큰 어려움 없다. 아! 그리고 나는 올해 말부터 온라인플랫폼 사업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작가로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다. 글쓰기는 와이프와 사별 후 나의 마음을 고치는 치료제일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니까, 언젠가 출판 작가로 등단할 거라고 믿고 있다.


저녁 18:00

나이 들어가니, 한 곳에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설 때는 나도 모르게 "에고, 에고"라는 노인성 헛말을 불쑥불쑥 내뱉는다. 그럴 때는 '운동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하는 건 없다. 와이프 항암 전에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북한산 산행을 했었건만, 지금은 등산은커녕 일단 '걷기부터 해야 한다.'라고 그것도 생각만 한다.


저녁 시간이 오면, 낮의 뜨거움, 부글부글 끓는 더위는 한풀 꺾인다. 걷기 운동이라도 하려고 집 앞 영진해변으로 간다. 해 지는 시간, 붉은빛 반사되어 하늘을 물들이는, 도로 옆 데크길 따라 걷다 보면, 시원한 바닷바람 속에, 나의 코를 깨우는 비린내를 먼저 알아챈다. '해초인가?', '생선인가?', '바다 냄새는 어디서 오는지?' 멀리 해안선 끝날 수평선을 따라 반짝이는 불빛. 바다는 어두워지고, 사라져 버렸을 것만 같은 흰구름은 서서히 잿빛으로 물들 뿐 없어지지는 않는다. 저 바다 아래,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알 수 없는 생명체, '그들도 살려는 움직임으로 아우성이겠지.' 깊은 바닷속 생명체는, '야행성인가, 주행성인가, ' '깊은 바닷속에는 낮과 밤이 있기는 한가?' '밤잠 제대로 잘 수 없는 건 뭐지?' 어지러운 생각들 끝에 나는 와이프를 떠올리다가 "노을 진 영진 밤바다, 낭만적이다."라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내뱉고야 만다.

새벽 02:00

오늘도 새벽 시간이 되어서야 침대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베개가 불편한지, 이불이 무거운지 몸만 뒤적이다가 겨우 잠들었다 싶으면, 어느새 다시 잠을 깬다. 잠자리에 눕기도 힘들지만, 피곤할수록 쉽게 잠들지 못하고 또 깊게 잠들지 못하니 '잠이 보배다'라는 말, 나에게 진실이다, 지금.


긴 새벽 시간, 의식이 돌아오면서 귓속에 울리는 "앵" 하는 소리, '모기다!' 순간적으로 소리 나는 곳을 손바닥으로 '짝'하고 내리치고는 그 충격에 놀라 잠을 깬다. 모기가 죽었는지 아닌지, 나와는 이제 무관하다. 다시 잠을 자고 싶지만 또다시 깨고, 또 자고 하다 보면 나지막하게 욕 한마디 던지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이런 모기 xx들!" 잠자기를 포기하고, 일출 장면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고, 집을 나서 해변가로 나간다. 벼르고 나가는 날에는, 예보에도 없던 구름이며 비까지 내리는 하늘도, 불쑥 찾아갈 때는 어김없이 볼 수 있는 눈부신 일출이다. 붉은빛 가득한, 사람 없는 바다 앞에 홀로 서 있으면,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바다 바람 부는 해안가에는 모기가 없다. '잠 못 자는 나는 야행성인가? 모기를 닮았나?' "해 다 떴네, 들어가 씻고, 나가야지"라고 말하고 돌아서지만, 나는 결국 다시 침대로 들어가 그리운 사람을 만나듯 잠으로 빠진다. 은퇴 후 또 다른 오늘, 나의 하루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