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냄새

by fantasticbaby

킁킁 '냄새 뭐지?' 비 쏟아붓는 며칠간 집에 갇혀 지냈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으면, 코를 파고드는 알 수 없는 악취 탓에 불쾌하다. '냄새 어디서 나지?''라는 생각에 집안 구석구석 살핀다.


(냄새 1) 타는 냄새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 벽면 나란히 놓은 퀸침대로 이미 방은 가득 찬다. 아내의 죽음 이후 내가 자는 방이다. 죄인 같은 마음으로 잠 못 드는 밤들을 그리움으로 채워온 시간이다. 벽 쪽 선반장 안 사기그릇, 찜통, 밀폐 용기들. '이것들을 어떻게 버리나.' 물건이 아닌 아내와의 사랑이고 추억이다. 그 옆 책상 위로 어지럽게 널부려져 있는 책들로 다가간다. 코를 자극하는 퀴퀴한 냄새 따라 잠시 허리를 숙였다. 그 밑 전기 콘센트에서는 뭔가 타는듯한 냄새가 풍긴다. 도서관 학창 시절, 갑자기 떠오르는 그녀. 수십 년 전 캠퍼스 커플로 만났던 여자. 동아리 모임 속 신입 회원이었던, 작은 키에 웃음 짓던 얼굴 보조개가 덩달아 예쁜 그녀. 수년간 연애 끝에 우리는 평생을 함께 살 것처럼 서로를 좋아 아니 사랑했었다. 그녀는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로 지방 발령을 받아 갔다. 결국 헤어졌다. '와이프 사별 후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건 뭔지 참!', '이 방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네.'


(냄새 2) 향수 내음


큰방이다. 향수 내음 가득하다. 와이프가 잠시 외출한 듯하다. 금방이라도 돌아올 생각으로 나선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향수 냄새가 이토록 진할 수는 없다. 이곳 강릉으로 이사 오고부터 마지막 1여 년 시간, 와이프의 항암 과정을 지켜보던 방이다. 이 서랍 저 서랍 열면 약봉지부터 눈에 들어온다. 와이프를 떠나보낸 후 나는 이 방에서 잘 수 없다. 잠자리 들면서부터 중간중간 깰 때마다, 잠시 물 한잔 마시러 일어날 때마다, 떠오르는 와이프이다. 그날 이후 그 모습 그대로 박제된 영혼이다. 와이프 항암 직후, "자기 아프니 뭔가 어릴 적 잘 가지고 놀던 장난감 망가진 것 같다."라고 했더니, 와이프가 말했다. "요즘은 안 가지고 놀더구먼." , "..." '이 방에서 나는 냄새 아니네'


***


(냄새 3) 악취


자기야, 기억해? 아침저녁 차가운 바람 불던 초겨울, 우린 병실에 있었지. 연말연시 휴가철 맞춰서 귀국하겠다던 두 딸들을 기다렸지. 이번엔 어딜 가볼까? 제주도 갈까? 아이들 있을 동안엔 자기도 조금 쉬어, 아이들하고 입원할게. 아니, 직장생활로 바빴을 텐데, 한국 온다고 좋아할 텐데, 엄마 입원할 때 같이 들어가라고 하면 안 되지. 혹시라도 굳이 걔네들이 들어가겠다고 먼저 말하면 몰라도. 그렇겠네. 그렇게 우린 즐거운 마음이었지.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아직 퇴원 못한다라는 말까지 듣고, 급기야 호스피스병동 알아봐야 했으니, 자기 마음 어떠했을지. 떠나는 나도 믿을 수 없었어. 그리고 아이들 급하게 한국 왔지. 하루 아니 이틀 봤었지. 그땐 나도 죽을 줄 몰랐어. 마지막날 새벽, 아니 숨쉬기조차 힘든 그날 밤, 난 자기와 두 딸에게 마지막 힘을 다해서 글을 썼어. 울고픈 아니 사실 눈앞을 가린 그 촉촉함 탓에 한자 한자 쓰기 힘들었어. 그리고 나를 위한 위령 미사 끝나는 50일째, 자기 곁을 떠나려고 했었지. 그런데 자기 슬퍼하는 모습에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어. 자기는 낮에도 밤에도, 강릉에서도 대구에서도, 늘 내 생각만 하더라. 나 살아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밥 한 끼 한 끼, 커피 한잔 한잔, 그 속에서 난 너를 지켜보고 있었지. 하루빨리 일상을 찾아가기를 기다렸지. 아니 새 사람 만나기를 기도 했었어. 그래야 나도 떠날 것 같았지. 언젠가부터 자기는 글쓰기에 집중하는 듯해서 안도했어. 이젠 자기도 마음 괜찮아지겠구나, 나도 곧 떠나겠구나라고. 그 이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벌써 1년 하고도 수개월, 자기 곁을 떠나지 못하는 나도 속 터질 듯 아파. 나의 영혼이 썩고 피멍이 들고 있어. 자기 이제 날 보내줄 수 없을까? 자기 곁을 지키는 나도 아픈 상처가 덧나고 있어. 내 마음속 상처, 그 냄새 너에게 닿으니, 너도 괴롭잖니! 그 마지막 사랑의 추억 아니 슬픔, 이젠 지우자. 자기가 날 보내줘야지. 이 냄새, 어찌 거실에서 이 냄새가 나는지 아니? 이젠 차 속에서도 도서관에서도 너를 따라다니는 냄새, 아니 네몸에 배인 냄새. 자기가 날 보내줘야 없어지지 않겠니. 나 없어도 행복해야지. 자기가 다른 여자 만나도 나는 행복해. 그래야 비로소 나도 떠날 수 있을 거야. 자기야 슬퍼하지 마. 냄새 없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