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글쓰기는, 치료제이다.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대구 떠난 지 두 달 만에 다시 왔다. 동대구역 걸어 나올 때, 습하고 무더운 공기는, 콧속을 지나 머릿속을 습기로 가득 채운다. 후끈 달아오르는 열기에 건물들도 지진을 만난 듯 흐물흐물 흐트러진다. 올해 초부터 홀로 계신 아버지, 주름진 얼굴은 여위어졌고 걷는 모습도 허리가 꺼꾸정하다. 한 번씩 대구 오면 생전 어머니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너그 아버지 요즘 살 빠지고, 기운 없어 노인 같아." 그럴 때면 나는, 아버지 얼굴을 슬쩍 훔쳐보고 "뭐 괜찮은데요."라고 했었다. 난 눈에 띄는 변화 알 수없었지만, 어머니 보시기에는 늙어가시는 게 실감되셨던듯하다. "그, 그간, 자, 잘, 지냈나?" 입술에는 늙은이 특유의 경련이 일었다. "녜, 덥지요?" 이제야 나도 불과 두 달 만에 보면서, 그 세월을 느낀다.
시간과 밀물 썰물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했던가! 차문을 열자, 후덥지근한 바람 실은 공기가 나를 덮친다. 눈부신 햇살, 덮칠 듯 다가와 순간 얼굴에서 터진다. "따갑다!" 청도 선산, 올해 초 돌아가신 어머니 모신곳이다. 차에서 내리자 눈에 들어오는 감나무, 사과나무, 보는 둥 마는 둥, 후덥지근하다. "아 덥네, 아직 아침 시간인데" 좁은 산길, 평소 오르던 길이건만, 무릎까지 올라오는 초록빛 이름 모를 풀들로 길 찾기도 쉽지 않다. '여기가 길 맞나?' 일 년에 몇 번씩 오는데도 이때쯤이면 길을 더듬어 올라간다. 나무 테이블이 보인다. 능소화 넝쿨이 기둥을 타고 올라가 그늘을 만들고 있다. 그늘이 땀을 식혀주지만, 마음까지는 식혀주지 않는다. 그 너머 외로운 잡초 풀숲이다. 그림같이 깔끔하게 벌초된, 잔디 깔린 선산만 봐왔건만, 지금은 듬성듬성 불쑥불쑥 자란 잡초들로 마음마저 메마른 사막 같다. 경계선을 따라 심어진 나무에는 울긋불긋 꽃들 피었건만, 땅속 한 줌 재가 되어 누워계신 어머니. '보고픈 어머니.' 인천교구묘원에 있을 와이프, 이곳에 함께 왔었건만, 그 흔적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있다.
오늘 강릉으로 간다. 와이프와 단 둘이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곳. 대구 시내 도로는 여전히 무더울 한낮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버스에 오르고서야 살갗에 와닿는 시원한 바람에 여유가 생긴다. '아버지 잘 지내셔야 하는데' 어머니, 와이프, 한분 한분 소중한 분들, 생전 모습 떠오른다. '와이프, 만약 그때 연명치료했다면, 지금도 중환자실 누워있을까?' '말 못 하고 숨만 내쉴지라도 와이프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숨 쉬는 소리 들을 수 있다면, 그 이마 손으로 쓸어낼 수만 있다면' 사별한 와이프 그립다. 고향 대구에서의 추억, 결혼을 약속하고 부모님들 함께 한 첫자리, 떨렸던 아니 행복했던 시간 속으로, 아련한 마음이 되어 달려간다. '그립다, 보고 싶다.' 아픔은 서러움이 되어, 어느덧 아련한 가슴 저림으로 떨려온다.
강릉을 떠날 때도 고통스럽고, 다시 돌아올 때는 더욱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기차는 동대구역을 출발하여, 포항 동해바다 향해 달려간다. 녹색빛 가득한 들판 '모내기 끝났나?' 강물은 제물에 희번득이고, 하늘 뭉개 구름은 산봉우리를 타고 솟아난다. 꺼무한 산허리만이, 헤매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 뒤돌아 사라진다. 작년 어머니 항암 치료 일정 따라 강릉을 오가며, 한 번은 동해 해변도로 따라, 또 한 번은 안동, 영주 내륙으로 다녔기에, 울진, 삼척, 가는 길목 아름다운 바닷풍경 떠오른다. 결혼하고 두 딸을 기르고, 와이프와 함께 차곡차곡 쌓아가던 행복 하나하나, 공기 빠진 풍선같이 쪼그라드니 허무하다. 어느덧 불쑥불쑥 보이는 파란색 동해바다. 가도 가도 끝없을듯하던 산과 들을 지나,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불쑥 나타난다. 회색빛 도시는 사람이 사는지 아닌지, 간혹 도로 위 차들이 오갈 뿐 인기척 찾을 수 없다.
곧 도착할, 사별한 와이프와 단 둘이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강릉집. 그곳에는 노랫가락도 없고, 만날 친구도, 연락 오거나, 끼니 챙겨줄 사람도 없다. 오로지 거친 파도 소리, 내 발목을 때리는 바닷바람 속 모래알, 미끄러지듯 갈매기 날갯짓 그리고 와이프와의 걸음 자국 나를 부르는 소리뿐이다. 강릉 가까워질수록 싫다. 또 얼마나 그리워할지, 그 시간으로 들어가기가 두렵다. 내 마음을 달래준 것은, 의사 처방약도, 위로를 건네는 친구도, 심지어 두 딸도 아닌, 자전적 글쓰기였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내 슬픔 분노 그리움을 종이에 옮기고, 와이프와의 결혼 생활을 정서적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해하게 되었다. 자전적 글쓰기 덕분에, 삶의 여정이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절묘하고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자전적 글쓰기가 치료제라고 확신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