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일기장

by 정인


"살아있는 것은 언제나 끔찍한 죄악이었다. 구원을 바라는 것조차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다."


중학교 때 썼던 일기장의 한 문장이다.


중2병이라 불리는 사춘기의 허세가 묻어난 듯한 문장이지만, 이런 생각을 했던 열넷 즈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인생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거라고는 죽음밖에 없던 없던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결정할 수가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만이 삶을 지배하던 때였다.


부모님은 내가 배가 불러 터진 게으른 종자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리 힘들까? 바깥세상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네게는 가족밖에 없다고 강조하는데 나는 왜 함께하는 게 괴로운가.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나. 벗어나면 행복해질 수는 있나. 부모님은 돈도 안 벌고 공부만 하면 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팔자 좋은 때라는데 나는 왜 비참할까. 이게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라면 희망은 없는 것 같아.


빨리 이 고통을 끝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죽는 건 또 왜 무서운지 모르겠어.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 내가 죽으면 다 좋아하지 않을까. 아까운 학원비 안 든다고 좋아할지도 몰라. 태어난 게 잘못이라서 괴로운가 봐. 부모님은 나 말고 더 잘난 자식을 낳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내가 없었다면 어머니는 아버지와 일찍이 이혼하고 더 좋은 사람과 살 수 있지 않을까. 정말 내가 태어나서 나는 내가 너무 싫어. 이런 마음들이 아주 짙게 묻어나는 페이지들을 읽을 때마다 그 당시 내가 조금 불쌍해졌다. 나는 아주 감성적인 아이였고, 부모님이 하는 말은 대부분 순순히 믿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모진 말을 할 때 더 죽고 싶었나 보다.


돌이켜보건대, 이때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이다. 자살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을 할 정도의 의지나 행동력이 내게는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김장비닐과 밧줄과 수면제를 수없이 떠올릴지라도, 그걸 사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적극성이 부재했기 때문에 지금 살아있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십 년이 지난 시점, 스물다섯의 일기에는 조금 체념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우울은 마치 파도와도 같다. 밀려오고 밀려 나간다. 나를 집어삼키고 침잠하게 한다. 우울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죽음을 다시 한번 등지고는 코밑을 훔치며 다음번 파도가 영영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 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우울증은 내게는 병이라기보다도 신체의 일부와도 같았다. 한시도 몸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아 우울증이 없는 상태를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살아졌다. 죽지 않으니 삶은 이어졌다. 그렇게 십년 후에도 나는 계속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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