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자기혐오

by 정인

자기혐오는 시간이 지나며 더 심화되었다. 고등학교를 가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가서 10년 전의 어린 나 자신을 목 졸라 죽여버리겠다는 상상을 매일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그보다 살아있는 나 자신을 가장 원망했다.


“내가 지금 이 고통을 겪는 게, 네가 어렸을 때 안 죽어서잖아. 지금은 죽는 과정이 무서워서 죽지도 못해. 제발 그때 좀 죽지 그랬어.”


그만큼 당시의 내게 고통은 영원할 것 같았다. 수능이 끝나면 입시가 끝난다는 걸 관념적으로는 알지만, 가정 내에서 겪는 이 힘듦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입시가 끝나고 대학에 가도 이 고통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겪는 고통은 단순 성적 관련뿐 아니라, 가정 내에서 존재가 끊임없이 공격당하고 배척당하고 거부당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이 더 컸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주입받던, “공부 못하면 인생의 실패자고 낙오자다. 평생 가난하게, 비참하게 살 거고 주변 모든 사람들은 너를 무시할 거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나는 스스로에게 적용했다. 부모님이 실제로 매일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도 스스로 되뇌었다. 그렇게 공부를 그럭저럭 열심히 했으나 고등학교를 들어가고 나서 부모님의 더 높아진 기대치를 마주한 나는 결국은 스스로 인정하게 됐다. 영원히 부모님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걸. 그리고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정말로 무가치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동생이랑 가끔 옛날 일을 떠올리며 함께 얘기한다. 고등학교 당시 동생은 복수심에 가득 차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복수는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거였다.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인 자식의 학벌이라는 엄마의 성적표에 낙제점을 매기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꽤 비슷하게 생각했었다. 내 인생은 내 거라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아서 할 수 있던 생각이었다. 내 인생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심지어 표정과 생각과 인간관계조차 검열받던 때였다. 그저 인생은 그냥 납작한 종이 위의 점수였고, 거기서 A를 받지 못하면 하자품이었다.


그 당시의 내게 하자품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하자품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수능이 끝나고 나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더욱 이질감을 느꼈다. 명문대를 가지 못한, 전문직이 되지 못할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모두가 새로운 출발이라 말하는 스무 살, 내 마음은 늘 무덤 속이었다. 하지만 관뚜껑이 닫히지 않으니 삶은 이어졌다. 스물둘, 셋, 넷, 다섯이 순서대로 지나가서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눈을 감았다 뜨니 스물여덟이었다. 이렇게 내가 오래 살 줄은 나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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