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이 되면서 결국 지방으로 대학을 갔다. 안 그래도 살아갈 자격이 없는 내게, 지방대라는 건 일종의 결격사유가 추가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내 가정사를 아는 친구가 말했다.
-네가 멀리 가서 기뻐. 집이랑 멀어져서 기뻐. 너는 네 가족들에게서 분리되어야 해.
그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집이 멀어진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저 입시에 실패한 나를 위로하는 말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의 울타리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면서부터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첫 번째는, 시도 때도 없는 폭력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폭력에 "왜?"라는 질문을 하고,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어머니는 감정 기복이 심하셨는데, 화가 나면 그 이유를 주변의 모든 것에게서 찾는 편이셨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낸 원인에게 화풀이하시곤 했다. 형제 중에서도 그건 대개 나였다. 순종적인 아이라 더 그랬을 것 같다. 실제로 엄마와 언쟁하는 일은 성인이 되기 전에는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무엇이 벌어지던 입을 닫고 견뎠다. 말 그대로 말하는 게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를 어머니에게 납득시킬 자신도 없었고, 그걸로 어머니의 화가 누그러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맞을 때도 소리 지르지 않고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견뎠다. 그러면 어머니는 때리다가 지쳐서 "넌 어쩜 애가 한마디도 안 하니! 답답해 죽겠다!"라고 소리 지르곤 하셨다. 그만큼 어머니가 폭력을 사용하실 때 반항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그걸 매우 당연하게 여기셨다. 나는 맞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대학교 1학년의 어느 방학, 어머니와 말다툼을 했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손을 올리려 했지만 이제 나에게는 그걸 막을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사건이 끝나면 도망갈 수 있는 기숙사도 있었다. 처음으로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 때리려는 것을 막았다. 한 번도 반항하지 않던 큰 딸의 첫 반항이었다. 자신의 폭력이 저지당하자 당황하신 어머니는 금방 다른 방법을 찾으셨다. 옆에 있던 큰 백팩을 내 머리 위로 뒤집어 씌우셨다. 시야가 차단된 나는 어머니의 손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가방을 벗는 사이에 때리고, 가방을 벗으면 다시 가방을 머리 위에 씌워서 벗는 그 잠깐 동안 더 때리셨다. 그런 일들이 몇 번 더 있고 나서야 어머니는 이제는 딸이 얌전히 맞고 있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셨다. 폭력의 빈도는 그러한 지리한 과정을 거쳐 점차적으로 줄게 되었다.
두 번째는, 내가 내 인생의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생 내 모든 것을 통제해 오던 곳에서 처음 독립했을 때, 엄청난 불안에 시달렸다. 여전히 '내가 왜 살아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학과 수업을 다녀오면 지겹게도 시간이 남아서 계속 그 답을 찾아 헤매었다. 인생에서 시간이 이렇게 넘쳐나는 건 처음이었다. 어차피 기숙사에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라고 닦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서투르게, 조각보를 만들듯이 이것저것을 작게 시도해 보며 내 시간을 채웠다. 갓 태어난 히드라가 촉수로 세상을 탐색하는 것처럼 봉사활동, 단기 아르바이트, 대외활동을 조금씩 해보았다. 아무도 그 시도를 평가하지 않았다. 면박을 주는 사람도,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에 대해 늘어놓는 사람도 없었다. 작은 기숙사방에 쳐들어와서 내 물건을 온통 뒤지며 뭔가를 찾아내려는 사람도 없었다. 놀랍게도 세상은 부모님이 겁을 준 것보다는 안전한 것 같았다. 그래서 주눅이 덜 들고, 표정이 밝아졌다. 어머니는 대학교를 간 후로 눈에 띄게 밝아진 나를 보고 당황한 눈치였다. 평생 음침하고, 무표정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당최 모르겠는 큰딸이 잘 웃는 건 퍽 신기한 일이었을 것이다.
1학년 2학기 때인가, 엄마가 전화했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는 “내가 바보라서 너를 때렸다”라고 말했다. 너를 너무 많이 때렸다고, 너에게 저지른 몰지각한 짓들을 용서하라고 했다. 사과하는 게 엄마한테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즈음 동생도 전화해서 "요즘 엄마 매일 울어. 언니를 너무 많이 때렸다고."라고 내게 말했다. 엄마에게 동생이 "나도 많이 맞았어."라고 말하자 엄마는 "아니야. 넌 별로 맞지도 않았어. 내가 네 언니를 얼마나 많이 때렸는지 아니."라고 소리 질렀다고 했다. 그 사과의 말을 들은 기분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 같이 자란 사람들 중에, 어머니한테 사과의 말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생각보다 난 운이 나쁘지 않나 보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해서 맞은 게 아니라는 걸, 때린 사람이 인정하는 건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