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후유증

by 정인

하지만 엄마의 사과와는 별개로, 물리적으로 집에서 멀어졌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순간순간 기억들이 토악질 같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한 번 살아나면 그 몇 년에 걸친 일련의 과정들이 다할 때까지 계속 재생이 되었다. 재생이 되는 내내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계속 울었다. 길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져도 그 기억의 재생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불법 프로그램의 광고 팝업이 검은 바탕화면을 가득 메우는 것처럼 기억들이 범람했다. 내 과거는 계속 지옥에서 기어올라와 현재 나의 목을 죄었다. 돌이켜보노라면, PTSD 증상 중 플래시백이 여기 해당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PTSD를 의심조차 하지않았다. 내게 PTSD는 재난 또는 전쟁, 그런 걸 대단한 것을 이겨내고 생존한 사람들한테나 붙는 진단명이었다.


그렇게 대학교 4년 내내, 조금씩 변화했지만 여전히 과거의 망령에 시달렸다. 사람 눈을 좀처럼 맞추기가 힘들고, 낯선 사람들과 있으면 식은땀이 죽죽 흐르는 대인기피 증상도 시시때때로 나타났다.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버림받을까 공포에 질리는 주제에,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감정도 자주 느꼈다. 하지만 내가 비정상적인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이유 모르게 심장이 뛰고 불안에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면 밤중에 기숙사 복도를 미친듯이 배회했다. 룸메이트와, 친구들과, 세상이 내가 비커 안의 용액에 섞이지 못하고 바닥에 가라앉은 불순물임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계속, 계속 하염엾이 밤을 걸었다.


신체적으로도 문제를 많이 겪었다. 성인이 돼서도 감각들을 통합하고, 몸을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당시 나는 사람들이 다들 나랑 비슷하게,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먼저, 몸이 몹시도 무감각해 복통과 허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적으면서도 놀랍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수업 중에 배가 너무 고프다고 친구를 재촉해서 서둘러 달려간 식당에서 정작 음식을 앞에 놓고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그제서야 배에서 울리는 소리가 허기가 아닌 복통이 원인인가 봐,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친구는 어이없어했다. 또, 손에 적절한 만큼의 힘을 주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비 오는 날 내가 받치는 우산은 늘 빙글빙글 휘청거리며 돌아 비를 좀처럼 막아주지 못했다. 또, 복도를 걷다가도 자주 넘어질 뻔해서 친구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팔이나 목 뒷덜미를 잡아 지탱해주었다. 그리고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은 학교에서 의식을 잃었다.


나 자신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왜 집을 벗어나서도 이런가. 알고 보니 내 가족이 문제였던 게 아니라, 정말로 나 자신이 문제가 많은 사람인 게 아닐까? 내 불행한 기질을 단지 가족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던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집을 벗어났는데도 나는 왜 계속, 끊임없이 괴로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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