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심리상담

by 정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주 어딘가를 떠돌던 내 영혼이 다시 세계에 속하게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건 심리상담이었다. 제대로 된 상담을 받기까지는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렸다. 가끔 너무 괴로우면, 일회성 전화상담을 신청해서 내 안에 있는 모든 눈물을 짜냈다. 하지만 상담을 지속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나는 변화에 회의적이었다. 내가 나를 바꿀 수 없는데, 타인이 해주는 상담이 나를 어떻게 바꿀 수가 있을까. 심리적인 고통 속에서 너무 오래 살면, 고통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사슬을 풀어주어도 도망은 커녕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처럼,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난 내가 잘못된 사람이어서 당연히 고통스러운 줄 알았다. 잘못 태어나서 잘못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살았다.


상담의 계기는 남동생과의 관계였다. 그 애가 늘 싫었다. 한 번도 좋아했던 적이 없다. 항상 남동생을 엄마 뱃속에 다시 넣어버리는 상상을 했다. 남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게 제멋대로였다. 그 애는 칭찬스티커를 모으면 장난감을 사줄게,라는 말에 어머니가 외출한 사이에 선반 꼭대기에서 스티커를 모조리 훔쳐다 붙여놓고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소리지르는 초등학생이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남동생은 이미 다섯 살 때, 엄마가 자신을 때릴 때 반대로 엄마를 때렸고, 그 후로 엄마는 남동생에게 손을 올리지 않았다. "넌 덜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라고 내게 말했던 엄마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남동생을 항상 가엾게 여기며 때리지 않았다. 쟤가 커서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라는 식이였다. 남자애가 여성스러워서 어쩌지, 집에서나 기세등등하지 나가면 쟤가 얼마나 소심한지 아니. 우리 집에서는 애매하게 착한 것 보다는 꾸준한 망나니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을 난 너무 늦게 알았다. 망나니에게는 아무도 기대하는 것이 없어 모두가 관대하기 때문이다.


남동생은 능숙한 거짓말과 성적 조작으로 살얼음판 같은 집에서 살아남았다. 중학교 때 남동생은 3년 내내 전교권 등수로 위조한 성적표를 들고 왔다. 아버지는 아주 흡족해하셨다. 당시 내 성적과는 아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남동생의 위조된 성적표를 보며 더더욱 본인이 옳음을 확신하셨다. 자신의 교육방식만 따르면 남동생처럼 성공하는데, 너 같이 반항하는 실패자들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하셨다. 그 실패자에 대한 응징도 수시로 잇따랐다. 아주 극명한 대비였다. 내 말을 듣고 성공한 애와, 내 말을 안 들어서 낙오된 애. 정작 나는 실질적으로 우리 집에서 성적이 가장 좋았다. 학창 시절 내내, 꾸준히. 그래서 남동생이 더 미웠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눈감아준 엄마도. 남동생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덜 괴로웠을 텐데. 쟤 때문에 내가 배로 힘들었어. 어른이 된 다음에 여동생에게 이런 마음을 토해내자 동생이 대꾸했다.


- 언니, 나도 성적표는 위조했어. 언니는 성적 가져와도 그냥 맞고 말 성적이지만, 나랑 쟤는 정말 맞아 죽을 성적이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남동생이 싫었다. 정작 남동생과 직접 대화할 때는 의외로 멀쩡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문제는 어머니와의 대화 도중 남동생이 언급될 때였다. 남동생 이름이 엄마 입에서 나오기만 하면 펄펄 끓는 벌건 쇳물이 내 가슴 속에 벌컥벌컥 엎질러지는 것 같았다. 눈물이 줄줄 나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지만 괴로움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남동생 얘기만 나오면 별 거 아닌거에도 눈이 뒤집혀 달려드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혀를 차셨다.


남동생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관대한 걸 무척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말을 하면 어지간하면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는 것도. 그래서 부모님께 거짓말을 해서 원하는 걸 가지는 일들도 있었다. 난 남동생의 거짓말이 너무 치가 떨렸다.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 순순히 넘어가는 부모님도 싫었다. "걔 거짓말하고 있다고!! 지금 쓰는 노트북 고장 안 났어! 그냥 새 것, 비싼 거 갖고 싶어서 거짓말하는 거라고!!" 소리를 지르자, 부모님은 왜 동생을 험담하냐며, 샘내지 말라고 나를 나무라셨다.


-넌 누나가 되어가지고, 동생을 아끼고 본을 보이진 못할 망정 왜 동생을 미워하냐!


내 편은 들어준 적도 없는 부모님은, 아들 편은 기가 막히게 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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