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상담은 10회 차 정도로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상담이 종료되기 일주일 전, 예상치 못한 일로 상담이 연장되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다를 게 없었다. 어머니는 외출하시고, 모두가 자신의 방에서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아버지가 갑자기 폭발하셨다. 이번에 분노의 화살이 돌아간 곳은 내가 아니었다. 너무나 뜬금없게도, 여동생과 강아지였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 둘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일로 화가 나신 아버지가 마룻바닥에 누워있는 강아지를 뻥 걷어차려 했고, 소스라치게 놀란 강아지는 가까스로 발길질을 피해 여동생 품으로 뛰어갔다. 여동생이 도망 온 강아지를 안고 영문을 모른 채 눈을 크게 뜨자, 아버지는 "왜 지랄 염병하냐! 네가 뭔데 나를 노려봐!"라면서 욕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의 주먹은 당장이라도 뻗을 수 있는 걸 가까스로 참는 듯 파들파들 떨렸다. 결국 아버지는 그날 여동생을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먹을 쥐고 분노로 떨고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뼛속 깊이 새겨진 공포가 올라왔다. 10년 전에 매일 겪었던 일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10년 전의 일들이란, 잘못한 게 딱히 없어도 아버지 기분이 나쁘면 다 내가 잘못한 거고, 무언가 수틀리면 내가 매를 버는 사람이 되고, 숨 쉬듯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였다. 물론 이 날의 아버지는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이 내가 아니었음에도 그 장면을 목도한 것만으로도 공포가 도무지 가시질 않았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사건 직후에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와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 달리는 차의 뒷좌석에서 나는 거의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죽은 줄 알았던 끔찍한 과거는 너무도 가까이에, 멀쩡히 살아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울어봤자 해결 안 되니까 그만 울어. 때리면 신고하면 되지. 다른 사람이 때려도 울고만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를 보며 생각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어머니를 직접 때린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아버지는 어머니한테 온갖 폭언, 무시, 조롱을 일삼았지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손을 올리는 순간 당장 이혼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때리면 신고하면 되는데 왜 우냐고? 매일 맞고, 부모님께 화풀이당하는 게 어떤 건지 어머니가 평생 겪어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맞으면서 크지 않았다. 그냥 자식들을 많이 때렸고, 남편이 자식들을 때리는 걸 자주 보았을 뿐이다.
나는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어머니가 맞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좋은 아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두들겨 맞으며 자란 것 역시 내가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다.
그냥 운이 안 좋았을 뿐인 거다. 나를 언제든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을 만나서 그냥 맞은 거다. 반대로 어머니는 그저 운이 좋아서, 때리지 않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맞지 않은 것이고. 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러한 결론을 도출하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왜 화가 났을까?" "내가 한 시간 전에 전화해서 네 아버지가 화가 났나 봐."라고, 이유 없이 폭발한 아버지의 분노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수십 년간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아버지의 감정을 "감정"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어내서라도, 그게 아무리 비합리적인 이유라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 "나 때문에 화가 났나 봐."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이유가 있어서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기분은 그날의 날씨 같은 것이었고, 모든 가족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나는 왜 아버지가 화가 난 이유를 우리가 스스로에게서 계속 찾고, 스스로 반성하고, 용서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우리 때문에 화가 났다고 어떻게 단정하는가, 다른 것 때문에 화난 것을 가족한테 푸는 것일 가능성이 높지 않겠냐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그리 귀담아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주 상담에서 상담사 선생님은 그동안의 힘든 일들에 대해 그냥 운이 안 좋았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내 말이 인상 깊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스스로를 잘 지키려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도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스스로에게 그동안 못 해줬던 말이었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상담의 막바지에 선생님은 내게 아버지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답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한다는 건 내게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이든 괜찮다고 몇 번 더 격려하셨지만 머릿속이 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떨군 나를 한참 바라보시더니 나를 대신해서 입을 여셨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에요." 나는 내 입으로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저 그 말을 들으면서 울었다.
그 사건 이후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10년 전의 일이 다시 벌어졌다고, 내 몸은 그때의 방어기제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표정과 목소리에서 감정을 지우고, 무감정하게 일상을 살았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건조하게 일정한 톤으로 기계와 같이 말했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갔다.
주말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들이쉬는 모든 공기에 우울이 섞이는 것만 같았고, 침대에 멍하게 누워있다가 울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하면 기분이 나아졌는지 떠올리려 애썼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길을 걷다가 아기 강아지를 보고 문득 입꼬리가 올라갔는데 그 안면근육의 움직임이 너무 어색한 나머지, 얼굴을 한참이나 더듬고 있었다. 고작 그 한 번의 사건으로 나는 구렁텅이에 다시 처박히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불안정해 보인다고, 상담을 연장하자고 말씀하셨다.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상담은 20회로 길어졌다.
이 무렵, 오랜만에 PTSD 재경험을 다시 겪었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어렸을 때부터 나를 죽고 싶게 만들었던 모든 장면이 눈앞에 재생이 되었다. 정말 생생하게, 중간에 멈춰지지도 않아서, 몇 시간 동안 고스란히 내가 지나쳐온 과거들을 다시 겪어야 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다. 그저 공포에 압도되어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상담 때 이걸 말씀드리니 선생님은 호흡법을 알려주셨다. 천천히 들이쉬고, 잠시 멈추고, 훨씬 천천히 내쉰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폐의 확장과 수축을 느끼며. 천천히, 더 천천히.
놀랍게도 이 주일쯤 지나니 또다시 멀쩡해졌다. 스스로의 회복력에 감탄했다. 고통은 영원할 것 같지만,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보면 백혈구와 신체 모든 세포는 충실히도 상처를 치유해 갔다. 나는 조금씩 부모님의 권위에 다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가 하던 방식으로, 동영상을 보내오며 주제와 느낀 점을 묻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려 드셨다. "너희 생각을 말해봐."라는 요구 아래에 무언가 대답을 하는 즉시 난도질 되고 짓이겨질 게 뻔했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겠다는 나에게 미친년이라고 했다. 그 사건으로부터 한 달 후 나는 아버지가 입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던, 지극히 평범한, 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색 반바지를 입었다. "시비 걸 테면 걸어보라지"라고 속으로 악다구니를 쓰며 떨어지지 않는 발을 간신히 끌고 현관을 나섰다. 당장이라도 뒤통수에 고함이 날아올 것만 같아 현관문이 쾅 닫혀 아빠의 시선이 차단될 때까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뒷목이 뻣뻣했다. 다행히도 별말은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