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덟 살의 나에게

by 정인

무척이나 많은 이야기를 적은 것 같지만, 여기 글로 옮긴 사건들은 내가 겪은 것들의 극히 일부이다. 나조차도 이제는 그 일들을 온전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사실 모든 것을 너무나 생생히 기억해 고통에 몸부림치던 때조차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고통을 온전히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경험이 매우 개인적임과 동시에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한테 맞았다고 하니, 지금은 연락이 끊긴 중학교 때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너 바보야? 엄마한테 다시는 때리지 말라고 약속을 받으면 되잖아. 나는 어렸을 때 때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그 이후로 다시는 맞아본 적 없어.


그 의기양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청소년기의 나는 타인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당하는 폭력이 그리 흔치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도무지 혼자 삼킬 수 없는 사건들은 오래된 친구에게 종종 토해냈으나, 가만히 들어주는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내가 토해놓은 것들이 스스로 부끄러워 점점 말하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기억은 생각보다도 말로 옮기기 힘든 것임을 나중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어가 아닌 감각과 이미지로 남는다. 당시 어머니가 무엇이라 소리쳤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문제지 위를 내리쬐는 눈부신 형광등 불빛, 어머니의 씩씩대는 숨소리, 내 목덜미를 타고 기어오르는 소름과 긴장해서 경직된 어깨의 팽팽함은 선명하다. 이 감각과 이미지들은 도무지 활자로 옮기기 힘들다. "내가 문제를 못 풀어서 어머니에게 맞았어."라는 이 짧은 문장은 그 순간의 숨 막히는 분위기와 불안과 공포를 담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글에 있는 경험들은 시간이 흐르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파편화된 나의 과거들을 건져 올린 것들의 일부이다. 글을 쓴 목적이 만약 과거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있었다면, 아마도 상담 치료를 받기 전에 글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가끔 상담을 처음 시작할 때 했던 문장완성검사를 들여다본다. 글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그 스무 개 남짓한 빈칸들은 온통 비명으로 젖어, 페이지 귀퉁이를 엄지와 검지로 비틀기만 한다면 고통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시절 글을 쓰려했다면 도축장에서나 맡을 수 있는 피비린내가 내내 코끝에서 진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더 정제된 지금의 형태로 기록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아주 먼 곳을 돌아왔다. 이 글을 완성하는 데는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정작 마무리를 앞두고 우울증이 심해져 2주 정도 글 다듬기를 쉬어야 했다. 그래도 아직 11월이다. 서른 살까지 끝내는 게 목표였는데, 정말 이루었구나 싶어 신기하다. 2년 전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시리즈의 가제는 [여덟 살의 나에게]였다. 그러니 처음 글을 시작했던 시점의 나는 분명 어린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을 테다.



여덟 살의 정인아.

있잖아, 믿기 어려울 거 알지만 네 생각보다 네 인생이 나쁘지 않을 거야.

부모님이 겁주는 것보다 세상은 덜 무서운 곳일 거야. 그러니 수학 문제 1개 따위에 네 인생이 언제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돼.

죽음은 네 생각보다는 먼 곳에 있을 거고, 좋은 친구들은 항상 네 옆에 있을 거야.

삶을 견뎌야 하는 기간은 길어도, 어느 순간부터는 흘려보낼 수 있을 거야.

삶을 살아가는 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순간이 올 거야.

내가 약속할게. 그럴 거야.

넌 많은 것들에 감사하는 인생을 살게 될 거야.

네 생각보다 넌 뭐든 잘 해내는 사람이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

그러니까 가능하면, 살아있어.

너무 힘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버틸 수 있다면 살아서 지금 내가 있는 서른까지 와. 나도 사실 믿기지 않지만, 지금 꽤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거든.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나보다 잘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그냥 살아보라는 이야기야.

살아.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몹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글은 아니었지만, 과연 이걸 다른 사람이 읽는 날이 올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가정사, 또는 힘든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내 인생을 글로 옮겨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나조차도 이 문서를 자주 열 수 없었다. 내게 그 시절에 대한 글을 쓰고, 이미 쓴 글을 퇴고하기 위해 읽는다는 것은 총상으로 이미 고깃덩어리가 된 장딴지를 핀셋으로 헤집는 과정이었다. 총탄 파편을 찾는 이 과정을 통해 결국 더 나아질 걸 알지만 당장의 고통에 눈앞이 하얘지는. 그래서 선뜻 시작하기 힘든.


이 글들에 오롯이 내 인생의 절반가량을 담았다. 가장 오래된 친구조차도 모르는, 아마도 형제들도 몰랐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던 일들과 생각들. 스스로 기억하지 못했으면 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나의 가장 깊은 비밀들. 내 어린 날들의 무수한 파편을 언어로 재창조하는 동안에 그동안 마음 한편에 만들었던 가묘들을 차례차례 정리했다. 내 빈 무덤들에 무성히 자라난 풀을 뜯고, 다듬고, 삽으로 평평하게 다졌다. 다시 무덤을 만들 일이 없길 바라며.


처음에는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였다. 많은 것을 견뎌낸 어린 날의 나를 치하하기 위해 시작한 글이었는데, 쓰다 보니 다른 사람 한 명쯤은 이 글을 읽고 조금은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트라우마에 관한 책과 경험들을 읽는 것들이 내 회복 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내 글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글들이 잘 쓴 글은 분명히 아니다. 아프다, 힘들다, 괴롭다의 동어반복으로 지면의 대부분을 채웠다. 하지만 내 미숙한 글로 한 사람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과거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로써, 과거 시리즈는 한 차례 끝이 났다.


하지만 내 삶은 이어지고 있고, 나는 여전히 우울증 투병 중이다.


저번 주 토요일에 정신과 진료가 있었다. 1년 넘게 뵙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지만, 선생님께 내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한 번도 설명드린 적이 없었다. 긴 이야기를 하기에 진료시간은 너무 짧고, 지금 와서 옛이야기를 해봤자 무슨 의미인가 싶고, 나는 여전히 방어적이라 내 이야기를 사람을 앞에 둔 채로 쉽게 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도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씩 진료실에 찾아오는 나를 "예전에는 죽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까지는 아닌 환자" 정도로 기억하고 계시지 않을까.


이번 진료에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어머니랑 갈등이 있을 때마다 수치심이 들고, 죽고 싶다고, "뭐라도 해보려고 인지행동치료부터 아이양육도서까지 온갖 심리치료서적을 탐독하고 있는데 제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트라우마에 관련한 심리학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몹시 반가웠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우스울 수 있겠지만, 나와 같은 사건들을 겪은 사례들을 보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란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아동학대를 겪었다."라고 밖에 말하고 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책 속에는 그러한 케이스가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 학대피해자들이 겪는 증상과 내 증상들이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며 내가 겪는 온갖 심리적, 신체적 증상들이 내가 잘못 태어나서가 아니라 PTSD 증상임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런 의미에서 [몸은 기억한다], [트라우마] 등의 책들은 내 회복의 일부에 도움을 줬지만, 요즘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오히려 상처가 계속 벌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덜 불안해지려면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해서 미리 대처해야 한다"라는 내 방어기제 특성상 마음이 힘들수록 책을 더 다양게 많이 읽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 기점부터는 내가 혼자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의사 선생님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트라우마가 있다고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 없었지만, 선생님은 무언가 짐작하신 듯했다. 심리치료 관련 서적을 당장 그만 읽으라는 처방을 하셨다. 오히려 그 책들의 사례들을 읽는 게 재경험의 촉발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하시며, 화상환부에 나으라고 입김을 후후 불어봤자 더 아프기만 하겠냐고 하셨다. 그러시며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수많은 상담기법 중에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가장 인격적인 치료와, 그 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트라우마 치료기관을 소개해주셨다.


다른 방법이 있다니, 당장의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월요일이 되자마자 당장 그 기관에 전화해서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잡았다. 새로운 가능성에 다시 가슴이 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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