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병원

by 정인

다시 정신과를 가게 된 것은 상담사 선생님의 권유로 인해서였다. 내가 트라우마 재경험으로 인해 극심한 공포와 패닉을 겪는 것을 지켜보시던 선생님은 정신과를 가보는게 어떻겠느냐 권하셨다. 나는 이전에 정신과에 내원해서 몇 가지 우울증 약을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약의 극심한 부작용과 담당의의 권위적인 상담으로 두 달 만에 치료를 그만두었다. 약 부작용으로 인한 턱근육 강직으로 입이 잘 벌어지지 않고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도, 내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그런 부작용은 없다고 하셨다. 언제까지 이 약을 복용해야하냐는 질문에는 평생,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약 변경이나 도움을 요청해도 의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젖은 휴지만큼이나 심약해져있던 나는 정신과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발길을 끊었다.


그래서, 처음에 선생님이 병원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했을 때 싫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용기를 내어 정신과를 갔지만, 도움은커녕 더 힘들어졌던 경험을 이미 한 터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가 지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재차 설득하셨다. 계속 괜찮다고 거절하는데도 선생님은 완강히 설득하려 하셨다. 강요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 거절이 수용되지 않았다. 싫은데 왜 존중해주시지 않는거지?



-싫어요! 싫다고요! 병원 싫어요!



처음으로 상담 중 악다구니를 썼다. 격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10초쯤 있다가 내 상태를 알아차렸다.



-세상에, 선생님, 제가 이렇게 뭘 싫다고 소리 지르는 건 처음이에요. 병원 가기가 정말 싫었나 봐요.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은 내가 감정을 바로 알아챘다는 사실을 칭찬해주신 다음, 정신과에 대한 본인의 긍정적인 경험을 얘기해주시고 정신과 교수님 몇 분을 추천해 주셨다. 싫으면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다는 말과 함께.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시작도 못 해보는 건 너무 아깝지 않겠어요. 저는 정인씨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러시고는 추천하는 병원과 교수님들의 이름을 몇 개 적어서 건네주셨다.



-안 가도 괜찮아요. 나중에라도 도움을 받고 싶으면 가봐요.



망설이다가 그 말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상담도 생각지도 않은 계기로 시작해서 크게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까, 일단 가기나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첫 진료 날, 잔뜩 긴장했다.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말할까.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난부터 하면 어떡하지. 우울하다고,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기가 무서워. 불안과 공포에 파리하게 질린 채 진료실 손잡이를 당겼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무 일도 없었다. 처음 본 의사선생님은 내 상태에 관해서 물어보셨고, 내가 겪은 여러 약물 부작용들을 들으시더니 다른 약을 최소 용량에서부터 조금씩 시도해 보자고 말씀하셨다. 진료는 5분만에 끝났다. 수납을 마치고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서면서, 아무 일 없이 멀쩡하게 끝난 진료에 어안이 벙벙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이전 정신과 경험이 좋지 않아서. 그 이유만으로 그동안 진료를 안 받고 있었다니. 바보 같은 나와 내 치료욕구를 짓밟아 놓은 예전 내 담당의가 원망스러웠다.


그 후로도 약 부작용들을 다양하게 겪었다. 내 몸은 대개의 사람들보다 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약을 시작할 때 항상 1/3, 1/2로 나눠서 시작해도 온갖 부작용들을 겪었다.(물론 서방정 등 나눌 수 없는 약들은 어쩔 수 없이 1개를 다 복용했다) 하단에 내가 겪은 부작용들을 간단하게 나열해보겠다.



*아빌리파이 – 감각이상(저릿함, 소름끼침), 극도의 불안, 심계항진과 극심한 진정작용, 전신 근육 수축

*렉사프로 - 극심한 입마름과 진정작용

*브린텔릭스 - 점진적 체중증가

*탄산리튬 - 입을 벌릴 수 없을 정도의 턱근육 강직, 강직으로 인한 극심한 근육 통증

*트라조돈 - 감정둔마, 두통

*프로작 - 150mg으로 복용중. (300mg의 용량에서 극도의 불안, 심계항진이 반복되어 증량을 못하고있다...)



이 많은 약들을 거쳐, 결국에는 내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을 바꿀 때마다 아직도 무섭다. 이번 약은 또 무슨 부작용이 있을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 내가 겪는 부작용들은 기나긴 약물 복약설명서의 끄트머리에도 적혀있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제 부작용이 생겨도 의사 선생님이 내 부작용을 주의깊게 듣고, 다른 기전의 약으로 바꾸길 원하는지를 물어보고, 또 다른 약을 시도해보자고 함께 고민해주실 것을 안다.






이제 상담은 끝났지만, 의사선생님은 여전히 더 나은 삶을 위한 나의 여정에 함께 해주시고 있다. 내 상태를 관찰하며, 약물 외에도 내게 필요한 것들-치료의지, 치료기법 등-을 제시해주신다. 나는 치료의지가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치료목표를 높게 잡지도 않는 편이다. 그럭저럭 살아있을 수 있는 정도의 정신상태면 충분하다. 안주하려는 내게 의사선생님은 계속 더 나은 삶이 있을 수 있다고 일깨워주려 노력하신다.


두 달 전 정신과 진료에서 내 상태가 몹시 안 좋아보이자 선생님이 직장을 잠시 쉬는 건 어떠냐고 권하셨다.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직장을 쉬다니, 안 될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단 한 달도 공부나 일을 하지 않고 쉬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병가라니, 죽을 병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텐데. 선생님이 과하게 걱정하시는 것 같아서, 안심시켜드리고 싶어서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6개월쯤 지나면 괜찮아질거에요. 항상 그래요.


-그러고 또 반복될 거 잖아요. 평생 그러고 살 수는 없어요.



선생님의 얼굴이 더 심각해지셨다. 선생님은 자꾸 ‘완치’라는 개념을 거론하신다. 내 치료목표에 한계를 짓지 않으신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거북하고 이상하다. 나에게 우울증 완치란, 수능 전국 1등 같은 느낌이다. 애초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까마득한 곳이다.


‘평생 이렇게 살았는데요, 원래는 일 년 내내 우울했지만, 앞으로는 일년의 절반은 괜찮고 나머지 절반만 좀 괴로운 상태로 살 예정이었는데요. 평생 이러고 살 수는 없다고요? 그래도 저는 지금 제 생애 최고로 좋은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힘들긴 해도 예전에 비하면 괜찮아요. 그러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꿀꺽 삼켰다.



-그냥, 제 기질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원래 우울한 사람이고, 어렸을 때도 우울했던 것 같은데, 그냥 그래서 그런게 아닐까요. 선생님은 올해 초에 했던 TCI결과지를 넘겨보시면서 눈썹을 들어올리셨다.



-물론 정인씨의 TCI 결과지 상 기질에 인내심이라던지, 그런게 없는건 맞지만, 제 경험상 TCI 결과지는 기질보다도 본인의 심리적인 상황을 훨씬 많이 반영하게돼요. 상태가 좋아지면 수치가 확 바뀌거든요.



결국 일을 당장 쉬지 못하면 상담이라도 다시 시작해보라는 말과 함께, 주중에 통 4시간 이상 잠들지 못하는 뇌를 쉬게 하기 위해 졸음을 부르는 저녁약이 처방되었다.


진료를 다녀오면 늘 생각이 많아진다. 난 왜 내 우울증은 나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정신과약은 왜 내게 치료약이 아닌 당장의 통증을 달래기 위한 진통제 같은 개념이었을까? 왜 죽지는 않을 것 같은 상태를 치료 목표로 잡고 혼자 만족하고 있었을까? 내가 내 상태에 만족하고 있었던걸까, 체념하고 있었던걸까?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진료시간동안 나누는 몇 마디의 문답은 내 사고의 틀을 조금씩 부순다. 선생님은 나조차 몰랐던, 내가 내 주변에 동그랗게 그어놓은 한계를 발견하시고 조금이라도 넓혀주려 노력하신다. 나를 들여다보며 조언해주는 전문가가 있다는 든든함이란. 좋은 정신과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건 삶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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