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기억들도 많았다. 부모님과 좋았던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물론 나쁠 때는 바닥이 도무지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대개는 평범한 여느 가족처럼 늘 사이가 나쁘지만도, 좋지만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욱 부모님을 미워하면서도 애정을 갈구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폭력의 고리가 끊어진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가족 모두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다. 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30년간 주 6일 근무를 쉬지 않고 하셨으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가며 삼 남매를 힘껏 키워내셨다. 주말이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서울랜드에 갔고, 을왕리를 가고, 서른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곳을 무수히 여행했다. 예순이 되신 지금도, 아버지는 주 6일 근무를 하신다. 직장인으로서 그 책임감에 존경심이 든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부모님이 이렇게 벌어서 너 키우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고 생색을 내실 때는 정말 싸늘하게 마음이 식는다. 가계를 부양하기 위해 성실히 근무하는 것과, 자식들이 건강한 성인이 되도록 충실히 양육하는 것과는 영역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마음대로 안 되는 자식 양육이 힘드셨을 것이다. 부모님이 행하셨던 폭력과 별개로 그 막막함과 두려움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이유들이 폭력을 결코 합리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가끔 옛 기억들에 화가 난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벌써 10년 전이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쌓아온 시간들은 옛 일들을 조금은 상쇄시킨다. 요즘 어머니는 내가 말이 없어지면,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시고는 산책을 같이 나가자고 말씀하신다. 내가 무언가에 화가 나거나 감정을 추스르는 게 힘들면 속이 가라앉을 때까지 입으로 내지 않는 걸 잘 아시기 때문이다.
하루는 옛 기억이 또 되살아나, 십 년 전의 어머니에게 혼자 화가 나있었다. 퇴근 후 강아지 산책을 가려하는데, 어머니가 같이 나가자고 하셨다. 썩 달갑지는 않지만 거절하기도 애매해 그래,라고 답을 하고 함께 집을 나섰다. 가을이었다. 여름의 초록을 가을이 서서히 노랗게 물들이는. 하늘은 어느새 저 높이 멀어져 있고, 코끝으로는 서늘한 바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말이 없는 내게 어머니는 조잘조잘 말을 거셨다. 성가심을 참고 발을 옮기는데 갑자기 기시감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몇 년 전에 겪었다는 느낌. 발에 차이는 낙엽과 귓가에 울리는 조곤조곤한 어머니의 목소리. 팔을 덮은 바람막이의 미끈한 감촉과 시원한 날씨에 신난 강아지들의 흥분한 숨소리.
기이한 경험이었다. 트라우마가 이런 식으로 불러와질 때는 많았는데, 그와는 아주 동떨어진 기억이어서 더 그랬다. 몇 년 전의 풍경이 갑자기 눈앞에서 겹쳐왔다...
그때도 가을이었다. 지독한 우울증으로 자살사고가 가장 심했을 때였다. 도저히 죽고 싶다고 어머니 앞에서 말할 수가 없어서 내 앞으로 든 생명보험이 있냐고 물어봤다. 자살해도 돈이 나오냐고. 어머니는 조금 놀라신 것 같지만 딱히 큰 반응을 보이진 않으셨다. 다만, 서서히 말라비틀어지는 딸을 억지로 데리고 매일 산책을 나가셨다. “엄마는 왜 언니만 챙겨. 계속 같이 산책 나가고.”라는 여동생의 투정에 어머니는 “네 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그래.”라고 대답을 하셨다.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부단히 반대하던 어머니지만, 나를 살리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셨다. 나의 가장 메마른 가을을 채워주려 노력하셨다. 그리고 그 노력들을 느끼면서 난 그해 겨울을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 계절의 바람이 불었다. 어떤 순간들은 지나가고 나서 더 잘 보이는 법이다. 시들어가는 자식을 살리려 어떻게든 데리고 나와 공원을 걸으시는 어머니의 잔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어머니 때문에 죽고 싶다고 느꼈던 날들도 많았지만, 결국 어머니는 나를 살게 하려 노력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 날 어머니를 어느 정도는 용서하게 되었다. 그날만 해도, 감정을 삼키기 어려워하는 나를 도우려 산책을 나간 것이었으니까. 우리에게는 십 년 전 기억 말고도 많은 날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있을 거니까. 싸워도 이제는 화해할 수 있고, 서로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십 년 전의 어머니를 완전히 이해하고 용서하지는 못해도, 이제 내게 지금의 어머니를 계속 미워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