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기

by 정인

상담을 받으면서 당초의 목적이었던 동생에 대한 인지도 성공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상황과 고통에 몰입하지 않고, 언어로 감정을 묘사하는 방법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남동생을 아주 오랫동안 미워했었다. 내가 내내 얻어맞는 동안, 남동생은 별로 맞지도 않고 자랐다. 나에게는 남동생도 하나의 가해자고, 방관자였다. 전교권으로 성적 조작을 했던 남동생을 생각하노라면 "나를 지옥에 밀어 넣고 너만 살아남으면 다야?"라는 어린 나의 울음 섞인 원망이 들렸다. 하지만 남동생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나는 요즘도 뒤에서 소리가 들리면 몸이 자동으로 움츠러들어."


그 말에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발소리, 문소리를 포함한 수많은 인기척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도, 여동생도 모두 겪는 증상이었다. 근데 무의식 중에 남동생은 그런 증상을 겪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남동생은 나만큼 많이 맞지 않았으니까. 나보다는 남동생이 편하게 살았으니까.


그 당시 폭력의 정도를 비율로 나눠보자면, 나 70 여동생 25 남동생 5 정도였다. 어쨌든, 폭력을 나만큼 많이 경험하지 않았으니 남동생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 애도 괜찮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트라우마는 직접적인 폭력을 당한 사람만이 얻는 게 아니다. 맞던, 맞지 않던 그 위협적인 환경에 고스란히 같이 노출되어 있는 사람도 피해자다. 그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눈치를 봐야 하고, 다른 사람이 맞는 걸 보면서 내 순서가 언제 돌아올지도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덜 힘들고 덜 아팠다고 안 괴로웠던 게 아니다.


그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서 입양아 학대 살인사건을 떠올렸다. 뉴스에서는 사망한 아이뿐 아니라 학대한 부모의 친딸 역시 학대 피해자라고 말했었다. 굳이 대입하자면, 내 남동생은 그 친딸의 위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동생을 덜 원망하게 됐다. 우리 모두가 폭력의 피해자였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미처 보지 못한 남동생의 힘듦을 지금에서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때리는 사람에게 반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 공격성이 보다 비난하기 쉬운 남동생을 향했다는 것도 알겠다. 처음부터 내가 원망할 대상은 그 애가 아니었다. 그런 결론에 다다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후로는 남동생을 떠올리며 갑작스럽게 분노하는 일이 줄었다. 놀랍게도 인지를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걸 그만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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