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중반쯤, 스스로가 우주 한가운데를 떠다니는 아르마딜로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맞지도 않는 우주비행사 헬멧을 쓰고, 칠흑 같은 우주를 부유하는 아르마딜로. 초원 한가운데도 아니고, 눈을 떠보니 끝없는 무중력의 공간에 혼자 있었다. 스스로 왜 여기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그냥 떠 있는 것뿐이었다. 무기력한 채로, 언젠가 다가올 끝을 기다리며.
초등학교쯤부터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우리 집은 아파트 꼭대기 층이어서, 창가에 서면 땅 위의 모든 게 레고 같이 아주 작아 보였다. 창틀을 부여잡고 고개를 아래로 쭉 뺄 때마다 언젠가 할머니가 지나가듯 말했던, "애가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나무에 걸려서 살았다더라."라는 문장이 귀를 맴돌았다. 아파트 베란다 아래에는 잘 가꾸어진 화단이 있었다. 높이 솟은 나무들과 무성한 풀들, 푹신해 보이는 검은흙. 햇빛 좋은 날 여기서 떨어지면 이불을 빨랫줄에 널 듯 나무에 걸리려나, 아니면 죽으려나. 지상을 자주 내려다보며 꽤 오래 궁금해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교육에 열성적인 분이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자식들을 대한민국 최고 대학에 자식을 입학시킬 것을 목표하셨고 그 목표에 순조로이 자녀가 도달할 수 있도록 수많은 지원을 하셨다. 학창 시절 동안 부모님이 해주신 일들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동네로 이사해서, 한 달에 몇백만 원씩 교육비를 쓰는 것. 학창 시절 십 년을 유압기로 눌러 납작하게 응축시킨 이 문장은 내가 자란 환경에 관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교육열이 높은 동네. 다른 지역 학교의 전교 1등이 와도 겨우 중위권을 한다는 곳이었다. 선행학습을 3, 4년 정도는 해야 기본은 한다고 하는 곳. 자녀들의 성적에 관해 부모님 간의 미묘한 알력이 존재하는 곳. 그런 지역에서 자랐다는 사실.
두 번째는 평범한 직장인의 월급을 훌쩍 넘는 교육비. 물려받은 부가 크지 않은 이상, 부모님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돈은 물처럼 새어 나가고, 당연하게도 자녀의 성적에 대한 보상 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언젠가부터 나의 성적은 부모님의 투자 성적이 되었다.
글 초입부에 미리 말해야 할 것은, 아마도 나는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착하고 똑똑하고 다정하고 어른스러운, 드라마에 나오는 아이와는 지구와 명왕성의 거리만큼이나 멀었다.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고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또래보다는 조금은 늦됐다. 신체 협응력이 발달하지 않아 툭하면 넘어지거나 부딪히기 일쑤였고, 가위질 같은 소근육 운동을 어려워했다. 유약하면서도 고집이 셌고, 겉으로는 순종적이면서도 속으로는 반항심이 가득했다. 이상할 만치 원칙주의자였고 거짓말을 못 했고, 예민하면서 이기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했다. 누군가가 해주는 칭찬에 항상 목이 말랐다. 분명 나는 순한 것과는 거리가 세상에서 가장 먼,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였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