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전 아침 식사는 늘 모든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유대인들의 식사 시간 교육에 관해 읽으시고는 감명을 받으신 후, 아침 식사 자리를 밥상머리 교육의 장으로 삼으셨다. 매일 새벽 배달되는 종이신문을 먼저 읽으시고 그날 교육할 만한 주제가 있는 기사를 오려서 자녀를 읽히셨다. 그리고 "주제"와 "배운 점"을 물어보셨다. 그 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주제"라는 건 어느 기사든 항상 일관되었다.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름뱅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 "계층 사회" 등이 아버지가 원하는 정답이었다. 실제 그 기사의 주제가 그렇든 그렇지 않던 상관없었다.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답을 내면 불 같이 화를 내셨기 때문에 나와 형제들은 아버지가 원하는 정답을 맞혀야 했다.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하면 혼나지 않고 학교를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왜 기사의 주제와 형식에 상관없이 아버지 머릿속에 있는 주제만을 말해야 할까. 내가 기사를 읽고 정말 느낀 감상을 말하면 왜 혼이 날까. 아버지는 거짓말을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혼나지 않으려 거짓말을 하는 상황이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맞지 않으려 매일 거짓말을 하는 내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어느 날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는 아버지가 원하시는 주제가 아닌, 그 기사의 온전한 주제를 말했다. 아마 꽤 정확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이어서 당시 다독상이나 독후감 우수상 정도는 수시로 수상했었으니까.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삶" "바둑에 담겨있는 삶의 철학" "동물들의 생태" 같은 주제를 말하자, 아버지는 다시 생각해 보라 하셨다. 그럼 난 눈을 내리깐 채 종이가 뚫어지게 기사를 쳐다보다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분노하시며 동생들도 다 아는 걸 왜 너는 모르냐고 소리치셨다. 난 왜 나도 아는 걸 아버지는 모르시나 반문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항상 닫았고, 아버지는 소리 지르시면서 주먹을 휘두르셨던 것 같다.
사실은 아버지가 소리를 지르시든, 폭력을 행사하시든, 조용히 계시는 날이든 내게는 똑같았다. 거짓말을 했던 날들도, 하지 않기로 결심한 날 이후도, 아침 식탁은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식구에게 가시방석이었다. 아버지한테 거짓말을 하던, 스스로에게 진실되던 어느 쪽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