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상담실로 뛰어가면서 그 생각을 했다. 오늘은 대체 뭘 얘기하지? 4번의 상담을 통해 예상보다 빠르게 당장의 고통이 사그라들며 어디로 가야 할지 미궁에 빠졌다. 보통 심리상담은 10회 이상 진행하게 되지만, 이곳을 방문한 주 이유인 어머니와의 관계 설정 문제가 일시적으로 봉합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6회 이상 상담에서는 무엇을 다루어야 하나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긴 했다. 없을 리는 없다. 다만 이걸 상담에서 다룰 수 있는 건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너무나 모호하고, 내게는 삶의 명제에 가까운 거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간식은 스트링 치즈와 청귤차였다. 어깨너머로 보는 선생님의 냉장고는 항상 가득 차 있었지만, 선생님이 간식을 내주실 때마다 식량창고를 조용히 축내는 쥐가 된 듯한 기분이 종종 들었다. 그래도 간식을 거절하는 법은 없다. 치즈는 항상 옳다.
-엄마랑은 잘 지내요. 제가 좀 싸가지 없어진 걸 제외하면요.
치즈를 우물거리면서 근황을 꺼냈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또 징징거리지 뭐예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고,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무의식 중에 엉뚱한 행동을 한다고요. 자기는 아무것도 혼자 못한다고요. 평소라면 그런 말을 듣고 저는 제가 뭔가를 해줘야 하는 기분이 들었을 거예요. 아, 힘들다, 그래도 어떡해, 돌봐줘야지, 생각하면서 어색하게 위로해 줬겠죠. 하지만 어제는 "그러게, 엄마가 나한테 예전에 그랬잖아. 정신 차리고 다니라고. 기억을 하려는 시도를 안 하니까 기억이 안 나는 거 아냐. 기억을 하려고 계속 노력을 해야지."라고 죄책감 없이 말했어요. 어머니가 좀 서운하셨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그런데, 저라고 언제까지 어머니의 하소연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어머니가 실제로 힘드신 걸 수도 있지만, 항상 써왔던 전략을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런 식으로 대응을 하게 되면, 어머니가 마음에 짐을 지우는 전략이 더 이상 정인 씨에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시게 되면, 점차 빈도가 줄어들 거예요. 그리고 정인 씨도 아직은 처음이니까, 조금 미숙하게 반응할 수도 있어요. 갓 걸음마를 배운 아기가 어떻게 걷죠?
-비틀거리면서요. 넘어지기도 하면서요.
-맞아요. 미숙하죠. 그래도 연습을 하면 점점 잘 걷게 되죠. 정인 씨가 어머니의 전략에 대처하는 경험이 더 쌓이고 나면, 때로는 "엄마 또 징징댄다."라면서 놀리거나, "다 알지만 내가 오늘은 넘어가줄게." 등 어머니의 투정을 그냥 수용해주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자연스럽게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하소연에 내가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으로 충분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식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죄책감을 지우는 경우가 꽤 흔한 것 같아요.
-무척요. 생각보다 매우 교묘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답니다. 만약에 아이가 마트에서 여러 가지 장난감을 다 사달라고 떼를 쓰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죠. 어머니는 "네가 이렇게 떼를 써서 엄마 마음이 아파."라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이 말이 어떤 것 같아요?
무척 온건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머니가 나를 양육할 때 그 정도로만 훈계를 했으면 더 바랄 게 없었을 것 같은데.
-괜... 찮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철이 없다고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았잖아요. 화내지 않고 "나" 기준으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말을 했으니까요.
-그렇죠. 겉으로는 굉장히 교양 있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건 아이의 무의식에 죄책감을 주입하는 문장이에요.
아하.
-"네가 한 행동" 때문에 "내 마음"이 아파. 그러니까 네가 나를 아프게 했어. 이런 문맥이 내포되어 있군요?
-맞아요. 아이는 엄마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어도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는구나, 나는 나쁜 아이야, 이런 감정을 느끼죠.
-죄책감이 따라오겠네요.
- 아이의 욕구와 행동을 분리시키는 게 필요해요. 아이의 욕구는 "원하는 걸 가지고 싶다."라고 행동은 "떼를 쓴다"죠. 그러면 욕구에는 공감을 해주되, 행동을 교정해 주면 돼요. 엄마도 사고 싶은 게 엄청 많아, 백화점 가면 예쁜 옷들을 보면 엄청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엄마도 원하는 옷을 다 살 수는 없어서, 백화점에 놓고 뒤돌아 올 때 많이 아쉬워. 그래서 지금 다 가지고 싶은 네 마음이 너무 이해 가. 장난감도 엄청 반짝반짝하고 예쁘잖아. 그런데 현실적으로 다 살 수는 없어. 하나만 사야 해. 떼를 쓴다고 원하는 걸 살 수 없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 고르고 다음 주에 올 때 하나 더 사는 거야.라는 식으로요. 아이의 욕구는 성인의 욕구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단지 그걸 얻기 위한 행동이 적절하지 못한 거죠. 우리는 행동만 교정해 주면 돼요.
음. 사실 지나치게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방식은 좋은 방식 같았다. 저걸 다 가지고 싶은 네가 이상한 애야,라고 자연스러운 욕구를 부정하고 아이를 유별난 애로 만들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수치심을 느낄 테다. 새로운 정보는 항상 흥미롭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의외의 방법, 다른 사람의 욕구를 비난하지 않는다,라는 좋은 대처를 머릿속 구석에 저장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에 관해 다룰 수도 있을까요? 사실 엄마와의 문제는 주로 상처받은 단편적인 사건에 대한 건데... 아버지는 제 삶에 전반적으로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셨거든요. 제 가치관 같은 거예요.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망설여졌던 이유 중 하나는, 아버지와 관계회복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봐였다.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이 필요 없다. 심리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이 아주 안전하고 만족스럽다. 아버지가 던지는 말은 아무리 힘이 있어도 내가 있는 곳까지 오지 못한다. 화살이 날아가다가 결국은 땅에 떨어지듯, 아버지와의 거리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게 유지하면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상담을 진행하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선생님이 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하실까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정작 선생님의 눈을 맞추자 그러한 것을 강요하지 않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버지라... 좋죠.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보겠어요?
-제 삶은...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게 가장 큰 명제예요. 아버지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 도 있겠네요. 이성을 대할 때 이러한 부분이 더 크게 나타나요.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자리에서, 저는 끊임없이 그 사람에서 아버지와 비슷한 부분을 찾아요. 그런데 사람이면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을 수가 없잖아요. 결국 저는 그 사람에게서 아버지를 발견해내고, 관계는 좋게 진행되지 않아요.
-그 아버지가 정인 씨의 삶에 미치신 영향에는 뭐가 포함되어 있을까요?
이전에 글로 적어놓은 게 있었는데 당장 떠오르진 않아서,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말을 이었다.
-아무도 너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난 너를 밀어버릴 거고, 너는 혼자서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 그런 거요. 아무도 믿지 않는 것. 믿으면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저는 결혼을 해도 남편을 믿지 않을 거예요. 언제 아빠처럼 돌변할지 알 수 없잖아요. 그리고 난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리고 돈... 돈이 없으면 다 쓸모가 없다. 그래서 제가 돈에 엄청 집착하는 게 있어요. 계속, 계속 돈을 벌어야 해요. 그리고 절대 나를 포기하면서 아이를 양육하지 않겠다,라는 것도 있죠. 내 일을 미뤄두고 아이를 양육해 봤자,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을 받으며 하대하는 것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럼 아버지가 주신 영향 중에서 긍정적인 것을 생각해 볼까요?
그건 명확하다.
-독립성이요. 무엇이든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경제관념도 있겠네요.
엇, 그런 게 있구나.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중에 좋은 것도 있긴 있구나.
선생님은 자신도 나와 비슷한 방어기제가 있었다고 말씀하시며 "절대 다른 사람을 나 보다 소중히 여기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이상하게도 상담 선생님이 내 감정에 그렇다고, 맞다고 긍정하시면 반발심이 든다. 이건 올해 초 다른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할 때 여실히 느꼈던 부분이다. 나는 내 말이 다 맞다고 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사람이 나에게 원하는 게 있을 것만 같아 불편하다. 그게 상담선생님이라도 말이다. 되려 나를 타박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뭐라는 거야. 정말 싫다'와 '나를 생각해 줘서 기쁘다'라는 감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상담 선생님은 내 감정에 대해 네가 느끼는 감정이 맞다,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시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감정의 갈피를 잘 잡지 못하면, '죄책감' 수치심' '무능력함' 등의 단어로 감정을 좀 더 구체화하도록 도와주시고, 그리고 다른 내담자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신다. 난 내 마음이 불편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사람도 비슷하구나, 내 마음이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수긍을 하게 된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문장에서 '아버지처럼'이 무슨 의미일까요?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 비난하지 않겠다, 그런 거요.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지 않겠다. 아버지는 장애인 비하 발언을 자주 하셨거든요. 그리고 범죄를 당하는 이유는 가난한 동네에 살기 때문이다, 그런 발언도요. 아무리 어려도 그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았어요. 그래서 반대로 나는 최대한 도덕적으로 살아야지, 최소한 그러한 생각이 들어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나왔다.
선생님, 그런데 제가 도덕적으로 결벽증이 있나 싶기도 해요. 제 기준에서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이 불편해요. 그러면서도, 넌 깨끗해서 저 사람들을 싫어하냐?라는 목소리도 안에서 들리고요. 예를 들면, 사회적 약자를 개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집단으로, 그러니까... 단체로 보며 판단하는 사람이 싫어요.
내가 정확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인상을 쓰자, 선생님은 적절한 말을 골라주셨다,
-그런 사람을 보면 실망을 하나요?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 대상으로 보는 게 싫다는 말이죠?
-맞아요.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던 정치인 때문이라고 얘기를 하는 사람도 싫고요.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예요.
-남 탓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군요.
-네. 때로는 그냥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도 있는 법인데, 요즘은 모든 데서 책임을 찾더라고요.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도 불편한 것 같아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도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섬뜩해요.
선생님은 내가 언급한 섬뜩하다는 표현에 집중하셨다.
-그 섬뜩하다는 느낌이 어떤 느낌일까요?
그건 내게 너무 익숙한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느낄 수 있는.
-뭔가가 가슴을 떠밀어서 테이블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랑 확 멀어지는 느낌이에요. 심장도 쿵 떨어지고요. 등에서 소름이 돋아요. 그 느낌이 너무 불편해요. 하지만 그 주제가 지나가고 나면, 또 평소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어요. 근데 다른 사람도 다 이러지 않을까요?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이 불편할 수 있어요. 저도, 만약에 휠체어를 탄 보행장애인 앞에서 누가 그 사람을 욕하면 마음이 굉장히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 거 같아요.
-불편한 상황인 건... 이해가 가는데 왜 이렇게 무서울까요? 그 순간에 드는 감정은 공포에 가까워요. 무섭고, 등골이 서늘하고, 섬뜩해요. 섬뜩하다는 말 밖에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어요.
내 신체 반응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가 나를 공격할 리 없는 안전한 상황인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포스럽다고 내 몸이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테이블 반대편에 앉은 그 사람이 무서운 건 아닌데? 이상해, 이건 비정상적이야, 정상적이지 않아. 혼란에 빠진 채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선생님이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정인 씨가 느끼는 그 감각은 몸의 영역이라 그래요. 트라우마가 뇌에 영향을 준다는 건 그런 거예요. 어떤 사건들은 뇌의 신경회로에 영향을 미쳐요. 정인 씨의 경우엔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남 탓을 하는, 그런 사람을 봤을 때 떠올리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몸이 공포에 질리는 거예요.
그 뒤로 뇌에 관한 설명이 천천히 이어졌다.
-뇌의 가장 안 쪽에는 뇌간과 편도체가 있어요. 그 바깥에는 변연계가 있고요. 머리의 가장 밖은 대뇌피질과 두개골로 구성되어 있죠. 보통은 가장 안 쪽에 있는게 제일 중요한 법이에요. 인간의 뇌는 안에서부터 성장을 시작해요. 어렸을 때는 편도체가 활발하게 기능해요. 편도체는 공포와 불안을 학습하는 역할을 하죠. 아까 든 예를 잠깐 가져오자면, 보행장애인 앞에서 장애인 욕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아마도 휠체어를 밀어주며 그 예의 없는 사람을 쏘아볼 거예요. 이건 제가 어른이니까 할 수 있는 거죠. 시비가 걸려도 대체 뭐가 문제냐고 쏘아붙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이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겠어요?
-아무것도 못해요. 할 수 없어요.
-아이는 그냥 그 상황이 공포스럽죠. 상황에 대처할 수 없으니까 그래요. 그래서 편도체는 아주 어렸을 때에, 무서운 것을 보면 도망간다, 그러한 것들을 학습을 해요. 아주 생존에 가까운, 본능적인 영역인거죠. 어린 애가 늑대를 보면, 뭔지 몰라도 도망가려고 할거에요. DNA단위에 새겨진 기억들과 기능들이 있는거죠. 아마 어렸을 때 정인 씨가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공포, 그런 것들이 편도체에 저장이 되어서 지금까지 작동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근데 정인 씨가 다 자라고 나서도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자극이 오면 편도체가 솥뚜껑만 봐도 자라인 줄 알고 흠칫 놀라는 거죠. 그 몸의 감각에게도 우리는 말을 걸 수 있어요. 이제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지 않아도, 어른이기 때문에 이제 생각하고 적절히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해볼래요?
놀랍게도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내 감각들은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서로 비난하고 서로를 탓하며 싸우는 상황에서 내 조그만 편도체는 상황 파악을 하진 못하더라도 위험을 감지하고, 비슷한 게 감지될 때마다 내게 신호를 주려 했나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음. 괜찮아진 거 같아요. 이제 그런 상황이 돼도 무섭진 않을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하진 않아도 불편한 티를 내지 않거든요. 근데 그게 되게... 제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같아요. 나만 깨끗한 척하는 사람 같고... 좀 제가 되게 별로인 거 같아요. 가식적인 사람인 것 같아요.
-하지만, 자신의 모든 마음을 다 말하지 않는 건 사회생활을 할 때 꼭 필요해요. 아무렇게나 어디든, 누구에게든, 상황 판단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고 다니는 사람은 나중에 곤경에 처할 수도 있겠죠. 그런 사람을 우리는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다고 해요.
오. 이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이건 사회적으로 내가 학습한 부분인가 보다.
-나중에 세련되게 말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힐 수 있어요.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만나고 싶은 사람한테는 "있잖아, 내가 너를 정말 아껴서 하는 말인데" 이런 식으로 충고를 할 수도 있는거죠. 보통 스무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는 안 해요. 스무 살은 대뇌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뭔가 잘못됐다면 적절히 행동을 수정할 수 있어요. 뇌는 스무 살 중후반까지도 자라거든요.
-하지만 세 살 버릇이 여든 갈 수 있는 이유는, 생각을 하지 않고 본능적인 감각으로만 존재하는 편도체 때문이군요.
-눈에 보이지 않고, 몸으로만 느껴지는 영역이니까요. 그럴 때마다 그 감각들에게 지금이 무서운 상황이 아니라고, 이제 성인이라 도망가는 것 말고도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 된답니다. 자, 그러면 다시 정리를 해봅시다. 우리가 오늘 했던 이야기는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가 아니라 "나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약한 사람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싶다."라는 얘기였죠. 그쵸?
모호함을 구체화시키는 것.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던 미지의 무언가를 빛이 있는 곳으로 끌어와 인지하는 것. 그래서 공포스럽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오늘의 수업에서 몸의 감각에 집중한다는 건 굉장히 신기한 느낌이었다. 사실 난 내 몸의 감각들이 불편할 때가 아주 많았다. 대체 왜 이렇게 작동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내 감각들. 조금씩 다루는 연습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상담실을 나서며 선생님이 마지막에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스스로를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고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나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