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콩으로 태어났지만 팥이 되겠다
문을 열고 급하게 상담소 안으로 뛰어든 나를 보며 선생님이 웃으며 무엇을 마시겠냐고 물어보셨다. 저녁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편이지만, 이 날의 나는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겠다 말씀드렸다. 몰아치는 업무들로 파김치가 되어있던 차라 음료를 기다리며 대기실 의자 위로 흐물흐물 늘어졌다.
-공부는 어때요. 잘 되어가요?
-아뇨. 때려치웠어요.
예전에는 하기 싫다고 때려치우는 내가 의지박약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럴만한 일이 생겨서 그럴 뿐이다. 때려치울만하니까 때려치우겠지. 직장도 멀쩡히 다니고 있는데, 이 정도면 삶의 의지를 가지고 잘 사는 거 아닌가, 생각하며 문득 올려다본 상담실의 천장이 새하얬다.
-지난주 금요일에 동생 웨딩드레스를 어머니와 같이 보러 가려고 연차를 냈어요. 아침 8시에 어머니가 왜 출근을 안 하냐고 깨우시더라고요. 잠결에 연차를 냈다고 중얼거리면서 다시 잤어요.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안 계셔서 설마 출근한 거 아니겠지,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일정을 다 잊어버리고 출근 중이셨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동생 웨딩드레스 보러 가는 날이라고 말하자마자 고함이 쏟아진 거죠. "야, 넌 왜 그걸 지금 말해!"라고요. 아까 내가 8시에 널 깨울 때 말했어야지! 나는데... 어이가 없어서 지금 왜 내 탓을 하냐고, 당연히 엄마가 알 줄 알았지, 이게 어떻게 내 탓이냐고 마주 소리 질렀어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어떻게 내가 알 줄 안다고 말할 수 있어! 나 기억력 안 좋은 거 몰라?!"라고 우기시면서 자기도 잘못이 50%는 있지만 제 잘못이 50%라고 하시더라고요. 원래 뭐든 잘못되면 주변 사람 탓을 하시는 게 습관이신 분이지만 그래도 울컥 눈물이 났어요. 어머니한테 남이 어떻게 다 챙겨줘야 하냐고, 그나마 내가 일찍 말해줘서 중간에 돌아올 수 있는걸 다행으로 여겨라, 지금 나한테 화내는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니냐, 엄마가 달력에 적든 일정을 따로 챙기든 했었어야 한다고 또박또박 말했어요. 어머니는 절대 자기 잘못이라고는 안 하시더라고요. 자기가 비서가 필요하다고 볼멘소리를 하시길래 "나는 할 말 다했고 이제 전화 끊겠다"라고 전화를 끊었죠. 저 진짜 하고 싶은 말 다 했어요, 선생님.
-많이 발전했네요.
-그렇죠. 원래는 돌아서면 "그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을 텐데, 돌이켜봐도 더 할 말이 생각이 안 날 정도더라고요.
-잘했어요. 이젠 얼지 않고 정인 씨의 의견을 말할 수 있군요. 그리고 어머니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정인 씨의 입장을 말하고 단호하게 전화를 끊는 것까지, 아주 잘했어요. 어머니의 반응을 감당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것까지 아주 완벽해요.
-알아요. 저 정말 잘했어요.
난 울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고 나서 동생 드레스 고르고 나왔는데 옆에서 점심 뭐 먹어야 할지 알아봐야겠네~혼자 혼잣말로 이러시는 거예요. 원래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그 말 듣자마자 바로 꺼버렸어요. 저보고 들으라고 하는 게 보여서요. 나름의 소극적인 거부였죠. 그랬더니 나중에 제 팔을 잡으며 식당을 알아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정색하면서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동생부부한테 알아보라고 말씀하시라고 했어요. 제가 뭘 고르든 다 퇴짜 놓고 불평하고 할게 뻔했거든요. 뭘 이런 데를 골랐느니, 왜 이걸 돈 주고 먹느냐니, 맛이 없다느니, 비싸다느니 하시겠죠. 그 근처에 먹을 식당도 별로 없었어요. 어머니가 좋아할 만한 맛있는 메뉴, 고급스러운 분위기, 저렴한 가격을 다 충족시킬만한 곳은 세상에 없어요. 동생네 부부가 고른 식당도 매운탕칼국수, 설렁탕, 뭐 이런 것들이었는데 어머니 마음에 당연히 차지 않는 메뉴들이었어요. 근데 동생네 부부한테는 말을 못 하니까 훨씬 식당 고르기도 쉽더라고요. 그렇게 점심을 먹고 그날 정신과를 가서 약을 탔어요. 그러고 집에 돌아오는데... 몸이 무너질 것 같은 거예요. 몰랐는데 제가 정말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래도 달라진 점이 있었다.
-이 전에 어머니랑 외출했을 때 제가 세상과 뚝 분리된 느낌이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제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투명도 50% 정도로 제 영혼의 절반쯤은 세상에 남겨둔 느낌? 대신 좀 많이 피곤했지만... 그리고 제 나름대로 화내는 아이, 경계하는 아이, 자책하는 아이를 분리해서 다들 오늘 고생했다고 말해줬어요. 다 제 역할을 아주 잘해줬거든요. 물론 효과가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상담 전까지 임시방편이지만 뭐라도 필요해서... 어머니는 난폭운전자 같아요. 기분이 안 좋다고 아무 사람이나 들이받는데, 그게 주로 저인 거죠.
내 비유에 선생님이 유쾌하게 웃으셨다. 나도 웃었다. 내가 생각해도 꽤 적절한 비유였다. 난폭운전자가 나를 치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저 불운한 교통사고일 뿐이다.
-정인 씨를 들이받고는 네가 왜 조심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건가요?
-아뇨, 그보다는... 네가 왜 내게 조심하라고 알려주지 않았고, 네 위치를 적극적으로 알려주지 않아서 내가 사고를 내게 만드냐고 비난하시는 편에 가깝죠.
뜨거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도 나름 잘 대처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리 큰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 일이 있던 이후로 다 그만두고 싶어요. 자격증 준비를 그만둔 것도 그래서 예요. 솔직히 예전이라면 죽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을 거 같은데 이젠 아니에요. 그냥 10년만 침대에 누워있고 싶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숨만 쉬고 싶어요... 왤까요?
-그래도 죽고 싶다는 데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데까지 왔군요. 10년만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라니, 많이 지쳤나 봐요. 좀 쉬어도 되죠.
그래. 그러고 보니 정말 장족의 발전이긴 했다. 이제 이 딴 걸로 죽고 싶지 않다니.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는데... 대학교 방학 때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첫날 1부터 10까지 열심히 외웠어요. 어머니 앞에서 오늘 이걸 공부했다고 숫자를 종알거렸죠. 그랬더니 어머니가 "그거 남들 다 할 줄 아는 거잖아, 남들 못하는 걸 해야지"라고 면박을 주시더라고요. 정작 본인은 일본어 한 마디도 못하시면서... 그때도 지금이랑 비슷하게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그날이 제 인생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는 마지막 날이었죠. 다시는, 내 평생에 다시는,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상황이 딱히 비슷하진 않지만 그때의 기분과 묘하게 비슷하네요. 제가 저 자격증을 공부할 일은 다시는 없을 거예요. 평생. 그런 기분이 들어요.
커피를 내려놓고 티슈로 젖은 눈가를 훔치며 한숨을 푹 쉬었다.
-선생님, 저는 정말이지, 남 탓하는 게 질려요. 가만 보면 가족들 모두가 남의 탓만 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남동생이 취업을 하게 됐는데, 취업하면서 자기가 지금 마땅찮은 기업에 일하러 가는 건 엄마 탓이라고 개소리를 해서 또 화가 났어요. 왜 아무도 본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안 하는 거죠? 걘 스물일곱이에요. 돈을 벌어도 한참 전에 벌었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면 남동생은 항상 어머니 탓을 했어요. 아버지도 모든 걸 어머니 탓으로 돌렸고요. 그리고 어머니는 모든 걸 제 탓을 하시죠...
-자기 잘못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건, 분명 성숙한 감정 처리 방법이 아니죠. 정인 씨의 가족분들은 감정 처리에 미숙한 부분들이 있어요.
-전 남 탓을 하는 게 지겨워요 정말... 지쳐요.
선생님은 지친다고 중얼거리는 내 사고의 방향에 조용히 드리프트를 거셨다.
-남동생이 어머니 탓을 해서 화가 났다고 했죠? 왜 화가 나나요?
-남동생이 어머니를 착취하고 있으니까요.
-남동생이 어머니를 착취하는 게 왜 화가 나죠? 정인 씨가 어머니에게 받은 만큼 남동생이 돌려주고 있으면 오히려 고소해할 수도 있을 텐데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렇게도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얼이 빠진 내게 선생님은 재차 물어보셨다.
-어머니는 본인이 뿌린 대로 거두시는 거예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남 탓을 하시는 걸 보고 남동생은 그대로 습득을 해서 어머니를 공격하는 거죠. 정인 씨 입장에서는 그걸 남동생이 대신 복수해 준다고 여길수도 있겠죠. 그게 왜 불편할까요?
-그러게요.
-정인 씨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어머니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요. 인정받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그 아이는 저번주 금요일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무너져요. 지치죠.
선생님은 동그란 안경 너머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자꾸 가족으로부터 자극을 받죠... 교과서적으로도 사실 가족으로부터 분리하는 게 정인 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혼자 있으면 또 외로워요. 같이 있으면 미칠 것 같고요.
-마음이 양 극단에 있군요. 하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예요. 스스로에게서 물을 긷어 올릴 수 있는 순간...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에게 만족한다는 건가요?
-아뇨. 그것보다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태가 언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예요.
선생님께 이 순간 솔직하게 말씀은 못 드렸지만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외로움을 한참 뛰어넘은 지경이었다. 혼자 살면, 내가 죽은 채로 발견될까 봐 무섭다. 예전에는 죽는 게 무섭지가 않아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죽는 게 무서워서 혼자 사는 게 무섭다. 자살충동이 있을 때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면 물리적으로든 뭐로든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다. 하지만 혼자 살 때는 오롯이 혼자서 그 충동에 대적해야 하는데, 내게는 그 과정들이 너무나 어려웠다. 혼자 살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을 당시 방 안의 행거를 볼 때마다 목을 맨 내 모습을 떠올렸다. 혼자 방에 있어도 혼자가 아니었다. 죽은 내가 옷걸이에 대롱대롱 걸린 채 넌 결국 이렇게 될 거야,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 목소리와 매일 싸우던 어느 날, 행거 밑에 내가 그린 그림을 놓아두기 시작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그림을 보았다. 하루에도 몇십 번, 몇 백번 그림을 눈에 담았다. 네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죽어야 할까, 넌 의외로 살 만 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살아,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돌이켜보면 그 그림은 정말 별게 아니었데, 난 그저 내가 살아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언젠가 정말 그런 날이 올까요?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은 날.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날. 우울하지 않은 미래.
-그럼요.
선생님의 말투에는 확신이 묻어났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요. 정인 씨가 그걸 위해서 노력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시간적, 금전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죠. 결국 정인 씨는 다음 세대에게 정인 씨가 받은 것보다 더 나은 삶을 물려줄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은 선생님이 자라온 환경을 이야기해 주셨다. 부모님이 한 번도 돈이 부족하다고 압박을 주신 적은 없지만, 비싼 등록금 때문에 사립대는 꿈도 못 꾸고 국립대나 교대만 선택할 수 있고, 장학금을 받아오지 않으면 부모님께 죄송해하던 시절을. 선생님 동생이 본인 아들이 너무 여유 있게, 느긋하게 공부한다고 분통을 터뜨릴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저걸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산 거야. 우리가 살아왔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절박했고, 삶에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후대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잖아. 저 아이는 우리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고, 살 거야. 넌 힘껏 노력해서 여유 있게 숨 쉴 수 있는 삶을 네 아들에게 물려준 거야. 자랑스럽게 여겨도 돼.
저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자식이 본인보다 팔자가 좋다고 빈정거리는 게 아니라, 기뻐할 수도 있는 거구나. 가슴이 울렁거렸다.
-직장에서 처음 만나는 상사가 참 중요하죠. 그 선배한테 배운 걸 후배들한테 그대로 하게 되어있거든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병원에 입사해서 만났던 선배들이 생각났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내가 무엇을 물어도 한 번도 화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도 후배가 생겼을 때, 속이 답답해도 "내가 선배들한테서 받은 친절을 후배에게 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되풀이해서 가르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선배한테 설사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도 우리는 후배들한테 그 부당한 대우를 그대로 하지 않아도 돼요. 대신 내가 받고 싶었던 존중을 줄 수 있어요.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해 직장문화가 바뀌는 거예요.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 깊은 바닥이 녹은 마쉬멜로우처럼 몽글몽글해졌다. 선의의 순환이란 이런 것일까. 난 무심한 호의와 작은 선의가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얘기는 들어보셨죠.
-네.
-아마도 정인 씨의 부모님들도 좋은 가정환경은 아니었을 거예요. 팥에서 콩이 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아마 콩 심은 데 콩이 난 거겠죠.
-어머니는 부모님과 초등학교 이후로 같이 산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외조부님들은 일을 하시느라 너무 바빠서 자식들을 방치하셨거든요. 어머니는 그래서 자식들을 자기 손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으셨고요.
-그걸 투사적 욕망이라고 하죠. 또 정인 씨의 어머니는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능력이 있으신 분이었잖아요. 본인 선택이시긴 하지만 그걸 다 버리고 자식을 키우는데 집중하신다는 선택을 하시며 보상 욕구가 커지셨을 거예요.
자식에게 보상을 바라는 부모가 싫다. 멋대로 낳아 놓고, 왜 네 인생이 내 맘대로 되지 않냐고, 왜 넌 네 환경에 감사해하지 않냐고 윽박지르는 부모가 싫다. 자식들에게 사랑을 조건부로 줘놓고는, 자식들 더러 너희는 왜 부모를 당연하게 돌보고 사랑하지 않냐고 비난하는 게 끔찍하다.
-그래도 중요한 건, 내가 받은 걸 그대로 물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내가 콩을 받아도, 자식한테는 팥을 물려줄 수 있어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내가 간절히 필요하고 원했던 것을 자식들에게 줄 수 있어요.
선생님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정인 씨, 저는 마흔까지의 얼굴은 부모님이 주신 거지만, 마흔 이후의 얼굴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을 참 좋아해요. 우리가 스무 살까지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을 마흔 살까지 충분히 개선시키고 나아지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마흔 살부터는 오롯이 본인의 삶이고 책임인 거죠. 그래서 우리는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주어진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내 삶을 내가 책임지기 위해서.
뒤이어서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미 몇 번 말했었지만, 정인 씨는 이전 상담을 해본 경험 때문인지 변하는 속도가 무척 빠른편이에요.
지난 9번 상담 중에 4번은 그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칭찬을 그리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편이라 잊고 있었다. 세상에는 본인이 기분이 좋으면 칭찬을 했다가도, 기분이 나쁘면 악담을 퍼부어대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칭찬도, 악담도 잊어버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또한 상담선생님이시니 의욕을 북돋아주시기 위해 칭찬은 예의상 하시는 것이라 생각해 무심코 넘긴 것도 있었다. 본인 내담자에게 유난히 속도가 느리다고 면박주는 선생님은 아마도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가요?
내가 원하는 만큼 빠르게 변화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생각했다. 분명 이전 상담에서 다 정리한 감정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때로 불쑥불쑥 올라와서 나를 괴롭힐 때마다, 내가 배운 걸 소화하는데 오래걸리는구나 싶었다.
-그럼요. 본인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빠르기도 하거니와, 변화도 정말 빨라요. 다들 머리로 알아도 행동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거든요. 하지만 정인 씨는 벌써 어머니의 전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거리를 둘 수 있잖아요.
근거를 가져다붙이니 꽤 말이 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여전히 괴로워요.
죽을 것 같아서 월요일이 되자마자 상담소에 연거푸 3번 전화해서 가장 빠른 예약을 잡았던 세 달 전을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상담으로 고통이 경감되지는 않았다. 고통의 정도는 같지만 방향은 달라졌다. 전에는 자괴감과 양가감정, 자책으로 괴로웠다면 지금은 어머니와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려는 과정이 괴롭다. 혼자만 고통스럽고, 가족은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 와중에 혼자만 노력하는 기분이 싫다. 이전과는 다른 우울과 무력감이 나를 좀먹고 있다.
-음, 고통에만 집중하면 달라진 게 별로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다른 쪽을 볼까요?
내 얼굴에 아마도 침통한 표정이 떠오른 모양인지, 선생님은 상냥하게 위로하셨다.
-처음 정인 씨가 왔을 때와 지금을 봤을 때 많은 게 달라졌죠. 이제 정인 씨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요. 드럼통이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드럼통은 점점 빠르게 굴러갈 거예요. 내리막길이면 더더 욱요.
-관성으로요?
-그리고 가속도도 붙죠. 그 드럼통을 멈추는 건 정말 힘들 거예요. 손을 대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하지만 정인 씨는 이미 그 드럼통을 한 번 멈춘 거예요. 그것뿐인가요. 이번에 드럼통의 방향을 살짝 바꿨잖아요.
아마 드럼통은 가족 문제에 대한 내 반응 패턴이겠지.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힘든 게 당연한 거예요. 이번 한 번은 그래서 더 힘들었을 수 있어요. 정인 씨는 이제 엄청난 속도로 굴러가던 드럼통을 멈추고, 다른 방향으로 굴리기 시작할 거예요. 처음 굴리기 시작할 때는 무척 무겁게 느껴질 수 있어요. 온 힘을 다해 밀어야겠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아요. 두 번째부터는 좀더 쉬울거에요. 그렇게 힘들어도 원하는 방향으로 굴리다 보면 어느샌가 정인 씨가 괴롭지 않아도,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정인씨가 향하고 싶은 방향으로 드럼통이 구르고 있을 거예요.
당장은 힘들어도, 언젠간 힘들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내가 노력하는 건 지금 당장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한 게 아니다. 미래의 나를 위한 안배이다. 미래의 내가 지금보다 덜 힘들도록,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확신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날 집에 와서 동생에게 전화해서 더듬더듬 말했다.
-있잖아, 선생님이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법이지만, 콩이 "난 팥이 될 거야!!"라고 엄청 노력하면 팥이 될 수 있댔어. 그리고 내 자식들이 팥이 될 수 있도록 좋은 것만 물려줄 수 있댔어. 부모한테 좋지 않은 걸 받아도 내가 노력하면 그걸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아도 된댔어. 자식들은 우리 같이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댔어. 그러니까 너도, 나도, 노력해 보자.
그렇게 말하면서 조금 울음이 났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