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꾸 내 무덤을 파는가
8회기 내용을 기록하지는 않아서, 2주일이 지난 지금 간단하게만 정리해 본다.
이번 상담 회기의 주제는 '너무 열심히 사는 나'에 대한 것이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자격증을 따려고 1-2주 동안 한껏 무리하고, 이후에 2주를 몸져눕는 나만의 연간 행사가 또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가 꽂힌 건 투운사, 그러니 투자자사운용사였다. 공무원이 따봤자 조금도 쓸 곳이 없는 자격증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성취감을 얻기 위해, 불안에서 도망치기 위해 2,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2주 안에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다. 하루에 최소한 100p이상을 봐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긴장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면서도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미리 기뻤다. 노력하면 이뤄낼 수 있는 것, 그게 내 삶의 명제였기 때문이다.
2년 전에 획득한 사회복지사 1급은 우울증 약 부작용으로 약제를 바꾸는 중에 하루에 커피 한 잔만 마시며 2주 만에 땄다. 작년의 한국사 1급은 퇴근하고 나서 저녁도 거르고 매일 6시간씩 공부해서 1주일이 걸렸다. 작년 6월부터 9월까지는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으로 하루에 4시간을 겨우 잤던 상황에서 주 4회 수영과 PT 등 운동을 마치고 밤 10시나 되어야 집에 들어왔다. 집 와서도 강아지 산책을 한 시간을 더 시키고 나서야 잠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지속할 수 없는 삶이었다. 당시 정신과 선생님은 내가 조증이 아닌지 의심하셨다.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진 않아요?
-아뇨. 못 자서 죽을 것 같아요. 주말에 13시간 이상 몰아서 자긴 하지만, 주중에 너무 힘들어요.
-힘들면 그만하면 되잖아요.
-제가 벌여 놓은 일이잖아요. 해야 하는 일은 해야죠.
이러한 과도하게 몰두하는 시간 뒤에는 항상 건강 악화라는 대가가 따랐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앞으로의 생명력을 미리 당겨 쓴 것 마냥 최소 2주 정도는 시름시름 앓아누웠다. 난 나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고, 그 상황을 극복하는데서 성취감을 느끼는 성향이 있었다.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이 대가더라도 달가웠다. 하지만 내 안의 목소리가 말했다.
-너 제정신이야? 이게 사람 할 짓이니? 왜 괜한 일을 벌여? 왜 사서 일을 만들고 네 무덤을 네가 파니?
선생님은 내 안의 현실감각을 대기실로 내보내고, 그냥 열심히 하는 나를 들여다보라고 하셨다. 그 과정이 참 지난했는데, "자기가 열심히 하는데서 자부심을 느끼나 봐요."라고 내가 말했더니 선생님은 분석하는 녀석도 대기실로 추방하셨다. 그렇게 몇 개의 껍질을 벗겨내고 나서야 열심히 사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나는 생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작 2-3년 전에 태어난 친구다. 그 친구에게 말을 거는데도 한참 걸렸다.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내달라 하는 일이 쉬울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말을 건 끝에, 하루 아메리카노 한 잔만으로 연명하면서도 퇴근하고 꼬박꼬박 스타벅스에 가서 앉아서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성실해야 돼,라고 하는데요.
-음. 그거 말고도 더 있을까요?
-사람은 계속 배워야 해. 노력해야 해. 멈추면 안 돼. 그런 말을 해요. 그런데 다 맞는 말이긴 하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무리해서 한다면, 문제가 되는 거죠. 그 가치관들이 혹시 부모님이나 사회로부터 받은 걸까요?
-아마도 부모님이겠죠?
-그 가치관 중에서 얼마큼 부모님이 주신 걸까요?
-80% 정도요.
-그럼 그만큼을 다시 부모님께 돌려드립시다. 정인 씨가 열심히 사는 건 좋죠. 하지만 손을 떨 정도로 불안해하며 지금 시작한 공부는 정인 씨의 커리어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자격증이 주식이나 자산 증식에는 도움이 될까요?
-아뇨. 정말 쓸데없어요. 그냥 자기만족으로 하는 거예요.
-온갖 자격증이 100개 있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 방 벽에 잔뜩 자격증을 붙여놓고 혼자 기뻐해요. 하지만 그 자격증들이 실질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많이 아쉬울 거예요. 지금 정인 씨는 목적 없이, 단순히 자격증을 취득하는 기쁨 하나만으로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라 생각해요. 불안해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잡은 거예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불안에 쫓기지 않아도 돼요.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한다면, 정인 씨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또는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세요. 차곡차곡 쌓아서 정인 씨를 더 멋지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들로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또 불안해요. 제가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어서 습관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졸업하자마자 당장 일할 수 있었어야 했어요. 저도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었다면... 이러지 않았겠죠.
숨을 깊게 쉬었다.
-남동생은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에요. 방세, 생활비, 대학원 학비를 부모님이 모조리 지원해주고 있어요. 스물일곱인데도 아직도 취업도 안 했죠. 취업할 생각도 없어요, 걘. 돈 버는 게 적성에 안 맞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화가 났어요. 돈 벌고 싶어서 버는 사람이 어딨 나요. 다들 해야 하니까 하는 건데, 그 애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 안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걔가 너무 싫고, 일하기 싫다고 말하는 남동생을 욕하지만, 가끔은 걔가 참 부러워요.
-맞는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여우와 신 포도 같은 거일수 있겠네요.
-아마 맞을 거예요. 분명 저 포도는 달 건데, 제 손에 들어 올리는 없으니까요. 포도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을 보면서 화를 내는 거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생각했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열심히 돈을 벌지 않아도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이직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렇지?
미리 말하자면 자격증을 따는 건,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벼락같은 충동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일로 그만두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