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도 엄마랑 똑같은 사람이구나. 이거밖에 안되는구는 사람이구나.
그 간의 근황 이야기부터 웃으면서 상담을 시작했지만, 막상 상담실 소파에 앉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일요일에 소개팅을 했거든요. 그에 관해서 금요일에 어머니와 싸웠어요. 저는 정말... 어머니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서른에 부모와 같이 사는 여자라면 있을 법한 아주 지루한 이야기였다. (나만 이런 게 아니겠지 제발)
남자 소개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안 하면 하루 종일 "네가 뭐가 부족해서" "주변에 남자 소개 해달라고 좀 해봐." "네 친구들은 소개도 안 시켜주고 뭐 하니" 하면서 저를 들들 볶아요. 그래, 불안하실 수 있죠.
그래서 저번에는 조금 더 정보를 드렸어요. 불안해하시지 말란 차원에서요. 평일에 퇴근하고 나간 소개팅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결국 그게 잘 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옷을 그렇게 대충 입고 나가서" "너 하고 나가는 거보니까 대충 눈치는 챘는데 너무 성의가 없더라" "누가 피곤하게 평일에 약속을 잡냐." "그 남자가 싫다고 직접 말했냐. 아니면 네가 다시 연락해 봐라"라고 속된 말로 지랄을 하는 거죠. 소개팅은 단순히 서로 어떤지 보러 나가는 건데, 왜 인연이 아닌 게 다 제 귀책이죠? 왜 제가 평일에 약속을 잡아서, 왜 제가 옷을 대충 입어서, 왜 제가 더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 사람을 사귀지 못한 건가요? 저 혼자 약속을 잡았나요? 아니에요. 직장이 가까워서 퇴근 후에 보기로 한 거였고, 옷은 겨울 한파 때문에 패딩은 입고 나갔지만, 직장 동료가 예쁘게 하고 왔다고 칭찬을 했었어요... 저는 너무 지겨워요. 어머니한테 소개팅은 선자리가 아니다,라고 해도 금방 다시 남자남자 염불만 외시고, 제가 왜 그러냐고 하면, 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대요. 본인도 행복한 결혼생활이랑은 오억광년 쯤 거리가 있으시면서 딸은 이미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뭘 더 행복하게 살란 건지...
그래서 소개팅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안 하면 남자 좀 만나라고 지랄이고, 평일에 소개팅했다고 말하면 네가 성의가 없어서 망한 거라고 지랄인 거죠. 이번 소개팅은 어차피 일요일이니까 별 태클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친구랑 주말에 1박 2일로 놀고 일요일 저녁에 소개팅을 잡았다고 했더니, 대뜸 저보고 경우가 없다고 정색하는 거예요. 저는 그 말 한마디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길 한복판에서 소리를 질렀어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돌아볼 정도로요.
감정이 격앙돼서 씩씩거렸다. 다시 감정이 올라오며 눈물도 났다.
-주말 저녁 소개팅을 저 혼자 잡은 것도 아닌데, 그게 상식이 없고, 예의가 없는 건가요? 고작 그런 걸로 딸을 비방하는 어머니가 경우 없으신 건 아니고요?... 근데 그게 강아지 산책 중이었어요. 너무 후회가 돼요. 이렇게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게 오랜만이라... 제가 어머니가 화를 내는 것처럼 화를 낸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알았어요. 둘이서 각자 강아지 한 마리씩 데리고 있었는데 제가 산책시키는 강아지는 뒤에 오는 가족을 기다리는 습관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머니 말을 더 듣고 싶지도 않아서 소리를 빽 지르고 성큼성큼 걸었어요. 강아지가 "난 엄마 기다릴 건데."라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도 질질 잡아끌고 걸었어요.
이쯤 되자 눈물이 줄줄줄 흘렀다.
어머니는 경우 없다는 말을 제가 이해 못 한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이유를 덧붙이시더라고요. 피곤한데 좋은 말이 나오겠냐, 그것도 성의가 없는 거다, 뭐든 성의가 있어야 잘 되는 법인데,라고 하시는데. 성의요? 그럼 소개팅 잡히면 그전 약속 아무것도 안 잡고 그 소개팅 위해서 집에 누워만 있어야 하나요? 둘 다 평일 내내 일하는 직장인이라서 주말에 약속을 잡았는데, 소개팅 하나 때문에 주말을 날려요? 제정신인가요?
어머니는 아주 오래전부터 비꼬면서 빈정거리면서 비난을 하시는 유구하신 방식이 있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그걸 사용하더라고요. "그럼 하루에 세 번 소개팅하는 내 친구는 찢어 죽일 년이야?"라고 소리를 질렀죠. 그랬더니 엄마는 "아니, 걔는 능력자지."라고 대답하고는 어떻게 찢어 죽일 년이라니,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 나는 그런 말은 입에도 담아본 적이 없다며 제가 험한 말을 한 거에만 포커스를 맞추면서 중얼거리시더라고요. 딸이 화가 난 이유는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고, 본인 앞에서 험한 말한 거만 충격이에요? 그런 말, 다 어머니한테 배운 거예요. 초등학생 때부터 뭔 년이란 년은 다 들었거든요. 미친년, 바보 등신아, 병신 같은 년, 정신머리가 나가 빠진 년, 다 들었는데 저런 말을 본인이 한 적 없는 것처럼 구시는 게 우스웠어요. 그리고 한참을 씩씩대다가 엄마한테 또 외쳤죠. 엄마는 그냥 딸한테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 "잘 됐으면 좋겠네." "잘 다녀와."라고 말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그 와중에 제 강아지가 계속 뒤를 돌아보다가 어머니가 줄을 잡은 강아지와 줄이 꼬였어요. 저는 여전히 화가 나있었고 강아지한테 소리를 질렀죠. "넌 똑바로 걷지도 못해?" 세상에... 그건 엄마가 저한테 하던 말이었어요. 예전에 학교는 키높이순으로 번호를 매겼는데, 저는 반에서 두 번째로 키가 작았거든요. 그런데도 엄마는 항상 길을 걸을 때 성큼성큼 가면서 저보고 늦장 부린다고 소리를 엄청 지르셨거든요. 제가 그 말을 강아지한테 똑같이 한 거예요. 어머니가 "왜 강아지한테 화풀이야. 그럴 거면 목줄 나한테 줘."라고 하는 말에 더 화가 났죠. 어머니는 그 어린 나에게 그렇게 욕하고 때리고 함부로 했으면서, 내가 강아지한테 소리 지르는 건 또 강아지가 불쌍해 보였나 봐요. 어렸을 때의 딸은 불쌍하지도 않고, 강아지만 불쌍한가요? 그 길로 강아지를 아예 안아 들고 집으로 뛰어왔어요. 뛰어오는 내내 울었고, 집에 도착해서도 울었어요. 강아지는 죄가 없었는데. 영문도 몰랐는데. 걘 그냥 평소에 그랬듯 뒤에 오는 가족을 기다리고 싶었을 뿐인데, 산책하려고 집을 나섰다가 하루 종일 질질 끌려 다니다가 집에 오다니. 결국 나도 엄마랑 똑같은 사람이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약자한테 화풀이하는 비겁한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이거밖에 안되는 사람이구나. 자괴감이 들었어요. 강아지에게 사과하면서 몇 시간을 내리 울었죠.
쏜살같이 이야기를 다 하고 양손에 얼굴을 묻은 내게 선생님이 차분히 물어보셨다.
-정인 씨의 마음에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정인 씨가 있고, 어머니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정인 씨가 있네요. 오늘은 어떤 걸 다뤄볼까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후자요. 사실 전자는... 어머니는 원래 저러신 분이니까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냥 최근에 가드를 좀 내리고 있다가 한 방 훅 얻어맞으니까 놀래서 화가 많이 난 거죠... 하지만 후자는... 어떻게 제가 그럴 수 있었을까요? 약자한테,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강아지도 애랑 똑같거든요. 어떻게 넌 그걸 다 당해봤으면서, 강아지에게 그렇게 굴 수 있어?라는 목소리가 들리죠. 피해자가 아니라면 차라리 그런 생각은 안 할 것 같은데 정말... 내가 어떻게 같은 방식으로 다른 약자한테 가해를 할 수가 있을까요? 제가 절대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혹시 마음속에 "넌 엄마랑 똑같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마음도 있나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엄마랑 저는 달라요. 저는 노력하고 있어요. 시행착오를 무수히 겪고 있지만, 제가 바라는 삶을 살고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 다시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상담을 오는 것도 그 과정의 일환이에요.
-그래요. 그럼 그 마음도 잠깐 소파에 앉혀두고 우리는 속상한 마음을 들여다봅시다.
심호흡을 했다.
-그 친구를 느껴봐요. 어때요?
-슬퍼요. 자괴감이 들어요.
-만약 그 마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되고 싶어 하는 방향이랑 자꾸 멀어질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에게 더 실망을 하게 되고, 자존감이 낮아져요. 위축될 것 같아요.
-그 마음은 정인 씨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위축되어서 살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네요. 그 마음이 정인 씨를 불편하게 하지만, 잘 일하는 것 같아요?
-네.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마음은 언제나 필요하니까요.
-다만 그게 너무 고통스럽군요. 지금 거의 일주일이 지난 상황에서도 무척 고통스러워 보여요. 어떻게 보면, 더 쉬운 방식도 있어요. 남 탓을 하는 거예요. "엄마 때문에 내가 강아지한테 화를 냈잖아!"라고 생각하는 식이죠.
-정말... 부모님이 많이 하시던 방식이긴 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발전이 없잖아요. 저는 제가 원하는 모습이 되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건 제가 원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어머니와 유사한 행동으로 화를 내며 자괴감을 느끼는 마음이 언제 생겼나 물어보셨다.
-그 마음은 얼마나 오래됐나요?
-5, 6년쯤 된 것 같아요. 첫 남자친구한테 제가 화를 낼 때 종종 엄마가 하던 식으로 빈정거렸거든요. 그 순한 애가 참다가 '빈정거리지 마.'라고 이야기할 정도로요. 그러고 나서 늘 밤에 잠을 들 때 괴로웠죠.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너도 별 수 없구나. 너도 엄마랑 같은 사람이야, 라고요. 항상 스스로를 손톱도 없고 발톱도 없어서 아무도 공격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사랑하는 사람만 물어뜯고 있더라고요.
가장 좋아하는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내가 너무 싫었다.
-사실 그 친구는 경제적으로는 아니어도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랐었어요. 크게 앞 날에 대한 걱정이 없었고, 유쾌하고, 무슨 말이든 곡해해 듣지 않았죠. 저는 그 친구를 보면서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렸어요. 저는 하루 종일 불안에 시달리면서, 하루가 끝나고 두 손을 내려다보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는 죄책감을 느끼네요. 그런 게 즐겁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요.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겠어요... 그때는 항상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았어요.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이유도 없었어요. 정서적 빈곤, 그게 너무 박탈감이 들 때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습지만, 이십 대 중반에 이제 살 만큼 다 살았고, 이제 내 인생에서 할 건 다 해본 것 같았어요. 더 이상 세상에 궁금한 게 없어서 더 살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당시 저는 고작 짧은 인생 내내 공부만 했거든요.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해본 게 없지만, 으레 남은 인생도 지금까지와 재미도 없고 비슷하게 괴롭겠거니 싶어서...
-슬퍼하는 그때의 정인 씨 옆에서 있어주세요. 스스로 뭘 할 수 있는지, 그동안 뭘 해냈는지 보여주세요.
넌 유럽에도 갈 거야. 작년에도 갔었는데 올해도 갈 거야. 적당한 동료들과 적당히 잘 지낼 거고, 매해 도전할 것들이 생길 거고, 아주 재밌게 지낼 거야. 올해 여름엔 다이빙을 해볼거야. 네 생각처럼 책상에만 처박혀있다가 인생이 끝나지 않아. 쓸모없는 것들을 잔뜩 해보자. 세상에는 네가 아직 모르는 정말 많은 것이 있단다.
내가 고개를 잠자코 끄덕이자 선생님이 말을 이으셨다.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밤에 잠 못 자고 슬퍼하던 정인 씨를를 그곳에서 나오게 합시다. 그때의 상처를 없애버려요.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바닷가에서 불로 태워버려요.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상처받았던 때를 기억하고, 나중에 그 방식을 쓴 답니다. 신체적 폭력으로 가장 상처받은 사람은 주먹을 휘두르고, 언어적 폭력으로 상처받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해서 상처를 주는 식으로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일까요?
-네.
-그러면 바닷가로 데려와볼까요.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크게 불을 피워요. 그리고 스스로 어머니와 같은 행동을 해서 속상하고 슬픈 마음을 태워버립시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들에 상처받았던 어린 정인 씨도 다 데리고 와봅시다.
정말 웃기게도,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어린 날의 무수한 내가 어딘가에서 봇물처럼 튀어나왔다. 마치 <벼랑 위의 포뇨>의 분홍 물고기들이 끝도 없이 바다에서 헤엄쳐 다니는 것처럼 수많은 어린 내가 튀어나와 모래사장에 서 있는 채로 영문도 모르고 눈만 멀거니 껌뻑였다. 한밤중에 불은, 어두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어린 날의 나도, 무수한 밤동안 자괴감으로 잠 못 이루던 나도, 상담실에서 소파에 앉아있는 나도 불이 그때의 고통들을 천천히 살라먹는 걸 보았다. 고통들은 갓 베어낸 나무처럼 처음에는 불이 붙지는 않았지만, 그것마저 괜찮았다. 분위기는 마치 축제 같았다.
-그 아이들에게서 이제 유리조각을 하나씩 빼내어주세요.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의 숫자에, 나는 조개구이집에서 바닥에 둘 법한 깡통을 하나 들고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자, 여기에 유리조각을 넣으면 돼. 아주 오랫동안 유리조각이 박혀있었을 아이들은 순순히 유리조각을 내어주었다. 깡통의 양철 바닥과 유리조각이 부딪혀 쨍강거리는 소리가 났다. 깡통이 가득 차오를 때쯤, 불을 다시 보았다. 불은 한참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문득 말을 꺼냈다.
-선생님, 지금 생각해 보니, 이 유리조각은 원래 제 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원래 내 것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버리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그동안 상담을 진행하며 숱한 상처와 감정들을 심상적으로 없애는 방식을 썼지만, 종종 내 방어기제를 처리할 때는 거부감도 들었다. 때문에 이렇게 홀가분하게 내다 버릴 수 있다는 것에서 이 것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불은 더 높아지고, 분위기는 더 무르익어갔다. 모닥불에 얼굴이 익어서 뜨뜻해지기 시작했다.
-유리조각이 박혀있는 채로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안을 수 없어요. 안으면 어떻게 될까요?
-유리조각이 그 사람한테도 박혀요.
-그러니 우리에게 유리 조각이 박혀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걸 빼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죠.
선생님이 조용히 물으셨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어머니도 어머니의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유리조각을 받아서, 정인 씨에게 주셨을 텐데요.
-어머니의 부모님은 아닐 걸요.
-그럼 정인 씨의 아버지에게서?
-네. 아마도요.
-그렇군요. 그냥, 정인 씨가 어머니의 유리조각도 빼 줄 생각이 있나 물어보고 싶었어요. 꼭 하진 않아도 돼요.
그 말에 다시 눈물이 뻥 터졌다. 인상을 쓰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내가 어머니의 유리조각을 빼 준다고 상상을 한 들, 그게 실제로 어머니의 상처들을 치유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상처까지 보듬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싫어요. 그건 어머니 거예요. 어머니는 성인이시잖아요. 어머니가 알아서 하셔야죠.
-그래도 괜찮아요.
상처들을 없애는 과정은 자주 경험했지만 이렇게 상처받은 나를 모조리 다 꺼내서 함께 치료하는 건 처음이다. 불이 꺼지기 전에 선생님은 기념사진을 찍으라 하셨다. 모든 상처받은 내가 불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생인 나도, 다 자란 나도, 모두 말갛게 웃는 얼굴이다. 사상 담을 마무리하면서 선생님은 격려를 잊지 않으셨다.
-정인 씨가 말해줘서 기뻐요. 강아지에게 함부로 했다는 게, 사실은 말하기 참 어려운 일 일수 있는데, 말을 꺼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일이죠.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사실은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급하게 상담 일자를 당겨야했나 싶기도 해서 금요일 저녁에 급하게 전화를 드릴 뻔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냥 수요일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본인이 얼마나 강한지 이제는 아는거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 난 강하니까. 다시는.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