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부모님의 온실

by 정인

분명 부모님은 자식들을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셨지만, 정작 나는 부모님이 나를 공격한다고 느꼈다. 어머니는 나를 비난할 때는 모든 걸 걸고넘어졌다. 내가 외적으로 아버지를 가장 빼닮은 자식이라 더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투신 후에는 내 걸음걸이 하나까지 아버지를 비춰보며 어쩜 걷는 모양새까지 아버지를 닮았냐고 빈정거리셨다. 평소에는 옷 가게를 가서 옷을 하나를 사도 "넌 어떻게 옷을 골라도 이상한 걸 고르니. 넌 정말 이상한 애야."라고 핀잔을 주셨다. 그래서 어린 나는 뭔가를 선택하는 걸 참 어려워했다. 나의 모든 선택에는 항상 어머니의 피드백이 따라붙었는데 무심코 던지는 그 한마디가 내 마음에 비수같이 꽂혔다.


나의 주 양육자는 할머니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돌봐주셨다. 대개의 조부모님이 그렇듯 할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어른의 존재는 내게 매우 컸다. 어린 나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어머니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딸이 자신보다도 할머니와 정서적 유대관계가 잘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조금은 고깝게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수학 문제를 틀리면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어머니, 얘가 멍청해서 수학 문제도 못 풀어서 제가 너무 화나요."라고 말했다. 어린 나는 그게 화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통화 하나로 어머니는 두 가지의 결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는데, 하나는 전화를 받은 할머니가 무척이나 속상해하시는 것이었고, 둘은 할머니가 내가 혼나고 있는 상황에 슬퍼하시는 걸 보면서 그 배로 절망하는 나를 보실 수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한테 전화하지 말라며 우는 내 모습을 보며 "네가 잘하면 내가 전화를 안 하잖아."라고 의기양양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건 어느새 엄마가 언제든 협박할 수 있는 약점임을 학습했다. 그로 인해 생겼던 두 가지 방어기제 중 첫 번째는, 말할 때 "나의 욕구"를 앞에 세우지 않는 것이었다. 아파트 앞의 과일 트럭에서 어머니가 먹고 싶은 과일을 골라보라고 할 때였다. 가판에 깔린 많은 과일 중 알이 작은 연두색 포도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태어나서 처음 본, 미술작품의 정물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청포도에 눈을 떼지 못하고 "친구들은 포도를 먹고 싶어 할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 대답을 들은 과일 장수 아저씨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던 기억이 난다.


-네 친구들이? 네가 먹고 싶은 게 아니고?


속내를 간파당한 나는 얼굴을 붉혔다. 내가 과일을 사 가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포도를 먹고 싶어 할 리가 없었다. 그냥, 나는 그 작은 선택을 할 때조차 나를 앞에 내세우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선택한 것에 거절이나 비난을 당하면 몹시 상처받았지만, "친구"가 원할 거라는 추측을 무시당하는 것 정도는 괜찮았으니까.


두 번째는, 무언가에 대해 표현할 때 두루뭉술하게 뭉개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나의 어떠한 것도 공격하지 않기를 바랐다. 어떤 것도 특정하지 못하면 비난하기도 애매해진다는 것을 나는 몹시 일찍 깨달았다. 내 친구들도 종종 나와 함께 비난의 도마 위에 올라 가차 없는 칼질을 당하곤 했기에 친구들에 대해 얘기할 때도 이름을 말하지 않고 묘사하는 실력이 늘었다. 중학교 때쯤에서는 친구 한 명을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애" "아빠가 대기업을 다니는 애" "강아지를 키우는 애" "수학 학원 같이 다니는 애" 등 여러 명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어머니는 너는 친구가 스무 명은 되는 듯하다며 어처구니없어하셨지만,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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