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식으로 많은 것을 숨기고 살았다. 겉으로는 부모님이 하라는 걸 나름 다 하는, 모범생까지는 아니어도 적당히 순종하는 삶이었지만 그래서 더 숨겨야 하는 게 많았다. 멍 때리면서 끄적이는 그림이라든지, 한 장 짜리 소설이라든지, 일본어 노래 가사를 적는 노트라든지, 그러한 것들. 어머니가 허락한 공부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 즐거운 것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무언가 숨기는 데는 능숙하지만, 거짓말에는 하나도 소질이 없었다. 다시 말하면, 숨겨놨던 것을 들키는 순간 어떠한 설명이든 변명이든 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오면 나는 뱀 앞의 들쥐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내가 어떤 말도 하지 않으니, 어머니는 답답해하시며 스스로 내가 숨긴 것을 찾아내시곤 하셨다. 아주 다양한 방법이 있었는데, 작게는 가방을 뒤지는 것부터, 거대한 책장 하나에서 책을 모조리 꺼내어 책들 사이에 내가 숨겨놓은 게 없는지 샅샅이 탐색하는 것부터, 나중에는 새벽 4시 정도에 잠든 나를 깨워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내는 것까지 수단을 가리지 않으셨다.
당시 문제를 풀다가 지루하면 노트 뒤에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나중에 들켜서 혼나지 않도록 책 사이에 한 장씩 끼워서 숨겨놓았다.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그걸 몽땅 찾아내셨다. 한 번은, 주말에 학원을 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내 낙서들이 모두 벽에 붙어있었다. 어머니는 노한 목소리로 "네가 봐도 잘 그렸니? 너 미대 갈 거야? 이렇게 그리면서?"라고 화를 내셨고, 난 매우 수치스러웠다. 내가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것도 아니고, 노트 구석에 낙서 같은 그림을 한 것으로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그러다가 진짜 미대 간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그만해"라고 어머니를 뜯어말리셨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내 약점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도 내 약점을 잡아서 이용한다는 데서 꽤나 비슷했다. 중학교 때 친구 2명으로 구성된 소그룹에 끼었다가, 특정 친구와 더 친해진 것을 다른 애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나는 당시 과외선생님한테 이 일을 털어놓았고, 결국 이 일은 어머니를 거쳐 아버지의 귀까지 들어갔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을 들으신 아버지는 따돌림이라고 판단하시고는 내가 공부를 못해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라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셨다. "전교 1등 해봐라. 애들이 왕따 시키던? 같이 어울리려고 난리겠지."라고 비아냥대면서 웃으셨다. 정작 나는 당시에 공부를 꽤 잘하는 축임에도, 전교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고 있어야 했다. 몇 년 후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를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걸 보시고 "왕따 당하다가가 애들이 돈 보고 놀아주니까 좋냐?"라고 비웃으셨다.
애들한테 돈을 주면, 바깥으로 나돈다는 아버지의 철학 아래 나는 달에 몇백만 원을 학원비로 납부하면서도 정작 용돈이 한 푼도 없어서 수중에 돈이라고는 명절에 할머니가 가끔 호주머니에 넣어주시는 몇만 원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카페를 가도 커피 한잔 마실 돈이 없었고, 돈가스집을 가도 늘 3,500원짜리 타코야끼를 시키고 친구들이 남기는 돈가스 조각을 얻어먹었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사업 역시 순탄치 않아서 집이 어렵던 시기였음에도 아버지는 친구들이 너랑 돈 보고 놀아준다는 식으로 나를 비웃는 걸 좋아하셨다. 돈이라도 있었으면 억울하지 않을 텐데, 아르바이트도 못해서 돈도 없고 비아냥만 당하는 동안 조금은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