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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Dec 01. 2019

한나에게


를 낳은 날 새벽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수유를 하러 와도 좋다는 전화가 걸려오기 까지 신생아실에서 자고 있을 네가 깨기를 기다렸던 새벽에 엄마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옥시토신이 분비돼서 사흘 간은 통증이나 피로를 덜 느끼게 된다는 걸 나중에 알기 까지, 나는 그게  새롭게 배태된 순전한 모성인 줄로만 알았다. 뜻하지 않게 생긴 아기, 자궁이 열린 다음 진행된 기록적인 순산, 밤을 꼴딱 새어도 좋을 만큼 활력이 넘쳤던 첫 이틀 밤. 엄마 마음을 갖는다는 거, 생각보다 참 쉽다고 여겼다. 억지로 한 일은 하나도 없어서, 너는 낳았다기 보다는 나를 통해 세상으로 나온 아기였다.

내가 머무는 일상에 네가 생겨난 것은, 사과가 놓인 정물이 사과와 배가 놓인 정물로 바뀌는 일처럼 그리 간단하지 만은 않았다. 침대 옆에 아기 침대가 놓이고 엄마와 아빠 사이에 네가 존재하는 명확한 변화와 보채는 너를 안고 소고기 대신 북어로 국을 끓이는 저녁의 사정과  두 세시간을 우습게 건너 뛰는 단순한 일과 속에서도 엄마로서 경험하는 마음 만은 복잡했다. 나는 왜 쉴 수가 없는 걸까? 왜로 시작하는 질문은  늘 같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엄마라서 그렇다. 엄마니까 그래야 한다.

아빠와 네가 곤한 숨소리를 내며 잠든 깊은 새벽, 네가 깨지 않도록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안고 있을 때면, 엄마된 내가 느끼는 것은 불경스럽게도 박탈감이다. 투정부리는 너를 달래거나 애써 잠들었던 너를 깨워가면서 차려놓은 저녁상에서 아빠가 밥을 먹는 것에 안도하며 다음 차례로 너에게 젖을 물릴 때, 배가 고픈 나는 소외감을 느낀다. 너를 안고 지금 막 지은 노래를 불러주고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속삭일 때, 가볍게 코까지 골며 해빙하듯 잠이 드는 네 모습을 볼 때, 싸르르한 통증과 함께 젖이 시원하게 빨려나가고 너는 나를 꼭 붙들고 젖을 삼킬 때- 네가 표현하는 무수한 행복 앞에서 엄마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막연해진다. 성인의 엄지손가락 길이도 되지 않은 손으로 꼭 붙든 사람이 겨우 나이기에. 네가 짓는 표정을 하던 때로 엄마는 돌아갈 수 없고, 너로 인해 목구멍이 뿌듯해지는 나로는 네가 아직 와보지 못했다는 거리감을 응시하느라 한밤 내 엄마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미스러운 오점이 되어 명멸한다. 이렇게 불온한 마음이 지배하는 가운데 들여다보는 너의 얼굴은 한치의 의심 없이 무고해서 발음할 수 없는 자음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아린다.

태어난지 칠십여일이 지난 요즈음, 엄마는 첫날처럼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젯밤 아홉시에 엄마 품에 안겼던 네가 오늘 새벽 다섯 시가 다 되어서 침대에 등을 대고 눕는 동안 엄마는 약 50분을 잤다. 다섯 시에 잠든 너는 여섯 시에 깨어나 다시 울었다. 너를 달래서 재우자 일곱시에 일어나 배가 고프다고 울었다. 창밖의 어둠이 점차 걷히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벌을 서는 기분이 들었다. 네가 고의적으로 나를 괴롭힌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마터면 '조용히 해.'라고 소리칠 뻔 했다. '잠 좀 자.'라고 했다가, 세상의 모든 동그라미를 모아 만든 것 같은 네 얼굴을 보고는 '잠이 안 오니?'라고 어루만졌다가, 분출할 수 없는 어둠을 미명과 함께 목젖 아래로 삼키자 죄책감이 올라왔다.

엄마가 어렸을 적, 그래도 너보다는 많이 컸을 무렵에 접했던 모성은 고작 이런 게 아니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죽은 엄마의 품에 생명을 건진 아기가 흠결 없이 안겨 있었다. 땅이 꺼지면 죽은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가 있었다. 열차가 탈선해도, 버스가 충돌해도, 용암이 흘러 온 마을을 집어 삼켜도 죽은 엄마와 산 아기, 혹은 먼저 죽은 엄마와 그 다음에 죽은 아기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감히 엄마가 되어서 잠 따위를 이기지 못하는 걸까?모성은 숭고한 것이라는데 어째서 원초적 욕구 위에 군림하지 못하는 걸까?

퇴원하던 날, 신생아실 앞에서 너를 넘겨 받고 돌아올 때, 엄마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많은 사람이 지나갔는데 그곳으로 지나간 엄마들은 숭고해졌다. 나는 너를 안아들고 왼쪽으로 갔다. 모퉁이를 돌았더니 그곳에 부덕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있었다. 나는 암록색 옷을 입고 있었지만, 거울을 비춰보자 검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옷장을 열어봤더니 가진 옷 전부가 검은색이 아니면 흰색으로 변해있었다. 처음에 나는 흰색 옷을 꺼내 입었다. 그런데 금세 때가 타서 검어졌다. 다음부터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랬더니 오른편 사람들이 흰옷을 들고 내게로 와 말했다. 엄마는 위대하다. 위대한 엄마는 착하고 강하다.

엄마는 그 말이 싫었다. 이제부터 사람보다는 도구로서 존재하라는 주문을 듣는 것 같아 싫었다. 엄마가 아닌 여자는 아름다워야 하고 엄마가 된 여자는 숭고해야한다면, 지상의 많은 여자가 시험대에 올라야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약하고 악했다. 약하고 악한 채로 칠십일 째 엄마였다.

숫제 하나의 점이었던 너는 칠십일 째에 엄마라고 오인할 만한 옹알이를 했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려는 너는 태어났을 때 보다 두 배 이상 무거워졌고 제법 목을 가누며 침을 많이 흘리고 사물을 꼭 쥘 정도로 소근육이 발달했다. 네가 커가는 속도에 매일 따라잡히며 엄마로서의 삶에 적응해나가는 나는 위태로움으로 너를 키운다.

불완전하고 미약하며 원초적 욕구에 흔들리면서, 너를 재우기 위해 밤을 새운다. 여전히 약하고 남몰래 악한 채로 끼니를 거르고 통증을 견딘다. 너를 지키는 것 보다 아슬아슬하게 내가 지녀야 할 모성을 지킨다. 이렇게 작은 것들로만 이루어진 엄마 안에서 폐 호흡을 하는 세계로 내려오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가 싹을 틔우듯 커가는 네가 위대한 아기다. 시원한 흥분이 척추를 일깨워 쉬지 않았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은 밤에는 너를 내려 놓지 못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게 된다. 잠이 든 채로 웃었다 얼굴을 찡그렸다 마침내는 파문이 일지 않는 물의 고요한 표면으로 다가서는 너의 수면을 바라보며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마는 나는 아직 작은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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