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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Dec 24. 2020

금연 구역은 사라져야 한다.

출입문을 나설 때마다 담배 연기를 마주친다. 분리 수거장에서도, 어린이집과 교문 앞에서도, 횡단보도나 버스 정류장에서도. 어떤 이는 혐연권을 주장하듯 기침을 하며 지나간다. 저주의 말을 퍼붓기도 한다. 길 위의 흡연자들은 산책로의 하루살이 떼처럼, 감당해야 할 골칫거리로 여겨진다. 


흡연자들이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흡연 구역이 태부족하기 때문이다. 금연 구역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흡연 구역이라고 적힌 곳은 찾기 힘들다. 금연 구역을 늘리고 벌금을 올리는 것은 별 실효성이 없다.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꾸준히 목격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흡연 구역을 늘려야 하는 이유는, 공공 장소에서의 흡연은 불쾌한 배설 행위이기 때문이다. 건물 벽에 금연 구역이라는 경고문을 써 붙이는 것은, 담벼락에 소변 금지라는 글자를 적어 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무엇이 강력히 금지된다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성행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과거에 노상 방뇨 금지가 활발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길가 수풀에 바짓춤을 내리고 배뇨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쉽게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나라에는 화장실이 많다. 지하철, 공원, 산책로 등에는 화장실이 있다. 가게에도 화장실이 있다. 관리 실태는 제각각이지만 심각할 정도로 비위생적인 곳은 많지 않다. 화장실은 배설을 하는 공간이다. 도시에 화장실이 많다고 해서 도시가 배설물로 장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설물은 적절히 통제되고 관리된다.


마찬가지로 흡연 구역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흡연 구역을 늘리는 것은 비 흡연 구역의 금연화를 인식시키는 힘이 있다.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의 배설 행위가 위법인 것처럼, 흡연 구역이 아닌 곳에서의 흡연은 시민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것이라는 시민 의식이 도시의 인프라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도 길 위의 흡연자로 인해 길을 돌아간다. 르네상스 시대에 똥과 오물을 피해서 길을 밟게 했던 하이힐처럼 마스크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걷는 하이힐이 되었다. 모두들 마스크를 끼고 있는 가운데, 마스크를 벗고 가래침을 뱉어 가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본다. 언젠가 그 당연한 배설 행위가 흡연 구역 속으로 사라지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말을 건넨다. 죄송하지만 금연 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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