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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Oct 24. 2022

폭력을 대하는 윤리의 폭력성에 대하여

[리뷰] 김혜진의『딸에 대하여』(줄거리 포함)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성소수자와 성정체성을 다룬 문학이 지닌 경향은 ‘퀴어’에 가해지는 세계의 압력이었다. 이들 작품은 제법 진지하게 그 실태를 고발하거나(한정현), 짐짓 태연하고도 유쾌하게 성소수자의 세계를 그려내 그들의 사랑이 지닌 일반성을 강조하거나(박상영, 김지연), 적나라하게 폭로함으로써 젠더에 관한 통념에의 불순종을 드러내거나(김봉곤), 조심스럽고 사려 깊은 방식으로 공격이 대상이 되는 사랑을 그려내 그 사랑이 지닌 연약함과 애틋함에 공감을 이끌어 내거나(윤이형, 최은영), 탐미주의적인 서사에 천착하여 정치적 묵상을 배격하고, 위악의 행태를 취함으로써 소수자의 사랑에 매겨지는 페널티를 곱씹게 만드는, 윤리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천선란) 등 방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이들 작품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바는 성소수자에 대한 세계의 폭력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는 독보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레즈비언 커플로 등장하는 딸은, 대학 측의 부당해고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와 투쟁을 벌이며 그 과정에서 ‘일반적인’ 시민의 무자비한 폭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화자는 이러한 딸을 둔 어머니이며, 그녀는 딸과 딸을 둘러싼 세계를 통해 자신의 윤리관에 엄청난 도전을 받는다. 기독교 신자이며, ‘일반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을 지닌 어머니에게 딸이 얻고자 하는 이해와 수용은 어떤 면에서 포용에 관한 폭력적 요구이며 자신이 고수하는 기독교 윤리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착취가 되기도 한다.


어머니는 딸에게 자신의 일에만 몰두할 것을, 남의 일에 나서지 말 것을 주문한다. 하지만 딸은 동성애자라는 의혹으로 인해 대학으로부터 부당한 처우를 받은 강사의 일은 자신의 일과도 같다고 선언한다. 어머니는 그러한 딸이 도무지 자신을 닮지 않았다고 여긴다. 자신 명의의 재산이 있지만, 감성에 젖어 그것을 담보로 딸에게 돈을 마련해 주지 않는 현실 감각을 지녔으며,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생계를 위해 요양원에서 보호사로 일하는 근면 성실함과 생활력, 이웃의 가정 폭력에 간섭하지 않는, 근본적인 냉소와 순응이 그녀가 삶을 살아 나가는 기본적인 태도인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어떠한 투쟁을 멈출 수 없다. 그녀가 일하는 요양 병원에 입원한 젠이라는 여성 운동가의 존엄이 무참히 훼손되는 것에 괴로움을 느끼며부터다. 결국에 그녀는 그녀 내면의 윤리적 요구에 따라 젠을 책임지게 된다. 그녀는 젠에게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딸의 노년이 오버랩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냥 모른 척하라는 요양원 측의 주문에 그녀가 따르지 않은 것은, 젠의 일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두 축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머니와 딸 모두 저마다 선량하며 건전하다는 아이러니이다. 어머니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딸이 사실은 자신을 꼭 닮았고, 젠을 한 사람의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타인들이 불편해 하는 어머니의 올곧은 행동은 다름 아닌 그녀의 딸이 벌이는 투쟁과 몹시 흡사하다는 발견이다.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이 우리에게 안겨 주는 윤리적 과제는 배제와 포용에 관한 공동체적 인식이다.


어머니가 젠의 장례를 치르며 딸의 연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때에, 그러나 여전히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때에, 독자 역시 이 어려운 물음에 내 놓을 답을 위해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나의 윤리가 반대편의 입장에서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저편의 폭력이 어쩌면 사고의 사각지대에 놓인 윤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불가능할 것 같던 화해의 무대로 공동체를 호출하는 가설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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