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서른인가? 아니면 스물아홉이거나 서른하나인가? 그렇다면 이 글을 읽어보라. 29에서 31까지의 평균값 30에 속하는 그대를 위한 정보가 여기 있다. 그대의 서른은 어떻게 왔는가. 혹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오지 않았는가?
이것은 최승자 시인의 《삼십 세》에 등장하는 서른의 정의이다. 정확하다. 서른 살이나 먹고 죽는 건 어째 창피스럽다. 서른 살이나 먹고도 꿈과 희망을 품기에도 어쩐지 창피스럽다. 혹은 아직은 야망을 버리지 못한다. 실상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저렇게’ 살 대안이 마땅히 보이지 않고 바꿀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품는 건 성격 정도이다. 하지만 성격 하나 바꾸기가 또 만만한 일인가. 서른의 목표는 ‘어른’이지만 어른이 되는 꿈에서도 “또 하루 멀어져” 갈 뿐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서른은 되었다. 하지만 ‘어른’은 그저 늙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니 다만 어른인 체 살아갈 뿐이다. 그것을 여기에서는 〔서른통〕이라 명명하기로 한다.
증상
막연히 어른이 될 줄로만 알았다. 공자는 서른을 자립의 나이라 하여 ‘이립’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른이 되어 찾아온 것은 늘어난 살, 성인 여드름, 눈가의 주름 같은 3차 성징과 배우자감으로서의 낮은 등급과, 부채의 역습과 가족들의 타박이었다.
어, 이상하다. 서른이면 거뜬히 경제적·심정적으로 자립해야 할 나이인데. 서른이면 월세 없는 집에서 살 줄 알았는데. 서른이면 제법 똑똑해질 줄 알았는데. 회사에서도 대접받는 멋진 ‘커리어 우먼’쯤 될 줄 알았는데. 나의 서른은, 나와 너무나 다른 외양의 여배우가 상 받는 모습을 꾀죄죄한 몰골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고작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내리는 눈을 원망하면서.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꿨지만 서른의 1월 1일에도 칫솔모가 약간 벌어진 스물아홉 살의 칫솔로 아주 오랫동안 이를 닦았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드라마는 없을 것이다, 생각했다. 마땅히 어른이어야 하지만 드라마틱하게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서른통〕이 낳은 결론은 한 가지였다. 판타지는 없어. 현실만이 있을 뿐.
진단
감기의 진행이 맑은 콧물에서 급성 부비동 염을 동반한 코 막힘, 며칠간의 시름시름, 그리고 누런 콧물과 가래와 잦은 기침이 막바지에 들어 지속되다가 콧구멍으로 숨을 쉴 수 있다는 마땅한 권리에 대한 감격으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라면 〔서른통〕의 병증도 이와 유사하게 진행된다.
스물아홉은 감기 초기, 서른은 감기 중반, 서른하나는 감기로부터의 해방기에 빗댈 수 있다. 해방을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운동이 필요하다. 마음속 의존을 몰아내는 자주 독립운동인 것이다. 따라서 서른은 주권 회복기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치유를, 누군가는 치료를 필요로 한다.
처방
●도서
■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갤리온』, 2008, 김혜남)
저자는 의대에서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現정신과 소장이다. 그녀는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외에도 후속작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와 《어른으로 산다는 것》을 통해 일관되게 ‘어른이 되는 법’을 조언한다. 저자는 이러한 계통의 책을 지속적으로 저술한다. 그녀의 저서는 꾸준히 팔린다. 이 현상의 원인을 청춘들 가까이에 ‘어른’이 부재하기 때문이라 저자는 짚어낸다. 그녀의 지적은 상당 부분 옳으며 조언 또한 상당 부분 실용성 있다. 더 많은 저서가 있지만 그 중에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제 1순위로 꼽는다. 이 책안에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논점이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책은 ‘부연’이나 ‘중언’에 가깝다. 직장 내 인간관계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 서른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걷는 나무』, 2010, 김선경)
저자 김선경은 경제학을 전공하고 출판계에 입문했다. 잡지기자로 일하며 깨달았던 것들을 정가 1만3천원이라는 가격에 제공한다. 경험의 팁을 이 정도로 얻을 수 있다는 것, 독자로서는 상당한 호사다. 이것은 일종의 인생 지침서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지침의 화법에는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오냐오냐’, 다른 하나는 ‘예끼 이놈’ 남은 하나는 ‘관세음보살(혹은 아멘)’이다. 이 책은 그 중간에 있다. 덮어놓고 등 두드리며 달래지도 않고, 실천해 볼 도리 없는 경전을 내밀며 득도를 권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철들라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내가 겪어보니까 이러는 편이 좋은 것 같더라’ 라는 온건한 권유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에너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냉탕과 열탕 사이의 중간 지점에 이 책은 있다. 그것은 당신의 체온과 유사할 것이다. 당신은 언제 가장 활력을 느끼는가. 열이 날 때인가, 추위를 느낄 때인가.
■ 분홍리본의 시절 (『창비』, 2007, 권여선)
이것은 단편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은 (두 번째 소설집《내 정원의 붉은 열매》와 관련하여) 어떠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주인공이 스물아홉이거나 가족과 애정관계에 갈등을 겪고 있는 보통의 여성이 화자라는 점이다. 그래서 ‘스물아홉 즈음의 보통의 여성’이 읽는다면 “맞아, 맞아.”하고 얌전히 남의 흉을 잘도 보는 이 ‘언니’의 소설집을 단숨에 읽어버리게 된다. 더 많은 소설이 실려 있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권여선은 1996년 제 2회 ‘상상문학상’으로 등단했으나 밝게 조명받지 못하다가 2008년 ‘사랑을 믿다’로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후 꾸준히 계간지에 작품을 기고하고 있다. 혹자는 그녀를 두고 ‘기억술의 대가’라고 표현한다. 비상할 정도로 딱 그 순간의 감정과 서사를 포착해 낸다. 저자의 주특기는 여성의 심리통찰이지만 남자가 화자일 때도 ‘스물아홉 즈음의 보통의 여성’독자는 “맞아, 맞아.”하며 읽어나가게 만드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권여선이 쓴 글이라면 (특히 단편은) 무엇을 읽어도 재미를 보장한다. 때로는 찡한 공감과 위로를 얻을 것이다.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29歲の誕生日,あと1年で死のうと決めた. (『예담』, 2012, 하야마 아마리)
“나이 마흔이 되면 죽을 생각이다. 마흔까지는 이태도 남지 않았다.(《다크》, 기리노 나쓰오)”를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일본 ‘제 1회 감동대상’ 수상작이다.
스물아홉 생일에 1년 후 죽기로 결심한 여성이 라스베이거스에 가기 위해 호스티스 등, 별의 별 직업을 마다 않고 도전해나가며 삶의 용기를 얻어낸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 줄거리다.
본문 일부를 소개한다.
「그저 바쁘기만 한 생활이었다면 일찌감치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너무도 선명하고 절대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면 할수록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힘이 솟았다. 더 좋은 것은 이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면 고독이니 뭐니 하는 나약한 감상에 빠져들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그러다 라스베이거스라는 시한부 목표가 생겼고, 오로지 그 목표만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 모두가 스스로 정해 버린 시한부 목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뜻밖의 변화를 불러오는 데드라인> 중에서」 - 출처 : 알라딘
●영화
■ 싱글즈 Singles (2003, 권칠인 감독 作)
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원판 절판, 현재는『문예출판사』, 카마타 토시오)》를 원작으로 한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싱글즈이다. 주인공은 29세 직장여성과 그의 주변 사람들이다. 영화는 그녀가 “용돈 대신 월급이란 걸 받아본 순간부터”시작된 고군분투기이다. 회사로부터 좌천당하고 남자친구에게 방금 실연당한 결혼 적령기 여성, 나난 (장진영). 숱하게 남자를 갈아 치울 만큼 편력이 심했지만 정작 성희롱을 참지 못해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온 동미 (엄정화). 그리고 그 두 사람과 관계되는 두 남자, 수헌(김주혁)과 정준(이범수). 서른을 바라보는 그들의 인생은 녹록치 않다고 영화는 말하려 한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나는 그 주장을 알아들은 체 했다. 그때 나의 나이 고작 스물 한 살. 당연히 실감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들 하지 (만, 아마 나는 다를거야)’ 하고 짐짓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을 뿐. 그러나 ‘삼포세대’가 사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그들의 삶은 비범하다. 이들은 연애를 하고 프러포즈를 받고 심지어 뱃속에 든 아기까지 있다. 스물아홉에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의 나의 실감은 이러했다. ‘아니 저들은 너무 화려하잖아!’
■ 스물아홉 살 The age of twenty-nine (2011, 전화성 감독 作)
29살의 남자가 면접을 본다. 면접관이 질문을 한다. “졸업 후 시간이 꽤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취업이 안 됐나?” 남자는 면접에서 떨어진다. 29살의 여자(남자 주인공의 연인)가 상사에게 불려간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속도가 느려.” 상사는 여자의 문제점에 대해 묻는다. 여자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그렇게 자신이 없어 되겠어?” 여자는 동료들끼리 모여 상사의 험담을 조금 나눈 후 퇴근 후 남자친구를 만난다. 면접에서 떨어진 남자는 여자가 일하는 콜센터에 입사하겠다고 말한다. 여자는 남자가 변변한 직장도 없이, 늦은 나이에 자신이 일하는 콜센터 신입으로 들어오는 게 부끄럽다. 남자는 여자를 아는 체 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곳에 입사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면 이 영화를 보길 권한다. 특히 그대가 29세에서 31세까지의 평균값 서른에 속한다면 틀림없이 “공감가는 영화를 보았다.”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별첨 : 주의사항
1. 서른통은 거울을 보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들여다보던 습관에서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라. 내가 아닌 세계를 보라. 세계가 얼마나 치열하게 저마다의 통증을 극복해내는지 알 수가 있다.
2. 정상頂上이 아니라고 해서 정상正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판타지와 결별하라. 그대는 현재 충분히 정상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플롯이 있다.
3. 정말로 정상正常이 아니라고 해도 염려할 것은 없다.
:“특이하다”거나 “이상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편인가. 세상과 같아지기 위해 눈치를 보고 있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비록 모든 사회에서 환영받거나 통용되지는 못하겠지만 어딘가에서 당신은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이 아닌 특별하거나 이상적인 사람일 수 있다. 그러니 그저 그대로의 자신이 돼라.
4. 판결을 보류하라.
: 서른쯤 되면 독심술이라는 심술을 부리기 쉽다. 자신만의 율법을 완성하고 자신만의 판례들을 채워나간다. 재판을 멈춰라. 사람에 대한 판결은 아무리 늦어도 늦지 않다. 법치국가를 원하는가? 치안확보가 우선인가? 당신의 세상이 후진 국가이길 원하는 게 아니라면 마흔이 되든, 예순이 되든 삭제하지 말아야 할 조항이다.
5. 위의 주의사항을 모두 잊어라.
무엇보다 사람이다. 외로움을 버텨내고 사람을 외면하다가 우정이 시시하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때, 그에 온당한 해방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당신의 영지가 얼마나 확장되었는지 관찰해 보라.
예후
아직 성장 판이 닫히지 않았길 바라며 ‘서른 넘으면 다 그런 거’를 좇아가는 것. 일과 마음 씀씀이의 생산량을 늘리려 버둥대는 것. 그것이 〔서른통〕을 겪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당신이 나보다는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약간의 통증은 느낄 것이지만 그대는 잘 이겨낼 것이다. 걱정되는 일들을 시작하라. 걱정할 일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는 동안 통증은 차차 완화되어 간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진심으로 바란다.
*『이코노믹 컬쳐』 2013년 2월호.
* 추천작 목록을 2020년으로 갱신하여 새로 써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