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아이의 시간,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중

울음으로 시작한 영어 수업, 셋째 날에 생긴 변화

by 유경진 Cindy

둘째 아이는 여행 내내

‘왜 갑자기 우리가 필리핀으로 가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둥절한 상태였다.

그래도 10일간의 여행을 하며

6년 전, 두 달 동안의 여행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되었고

그 덕분인지 아주 작은 호기심 하나가

아이 마음속에 슬쩍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

그 생각만으로도 아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사춘기라 부르기엔 아직 이르지만

이미 아이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 질문의 초입에 서 있는 상태다.

그런 아이에게 낯선 나라, 낯선 학교, 낯선 언어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여행을 거치며 아이는 어느 정도 이 상황을 받아들인 듯했다.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자기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친구들 단톡방에 “나 이제 곧 필리핀으로 떠나~~”

라는 메시지를 남긴 걸 보았다.

그 모습이 괜히 마음에 오래 남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유학 준비의 첫 번째 단추를 끼웠다. 영어 공부였다.

필리핀 튜터와 줌으로 수업을 시작했고 레벨 테스트 날부터 수업 이틀째까지

아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고,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눈물을 흘렸다. 수업이 끝난 뒤 울음을 멈추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좀 무서워.”

그 눈물은

때로는 엄마 눈치를 보며 흘린 것이었고

때로는 답답함에서 터진 것이었고

때로는 누나의 말 한마디에 서운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3일째 되던 날. 그날은 잊을 수가 없다.

아이의 태도가 분명히 달라졌다.

울음도 멈췄고 수업 중간에 엄마를 찾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수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혼자 해냈다.

나는 일부러 수업을 보지 않았다.

도움을 주지도 않았고 옆에서 지켜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게 아이에게는 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오히려 아이에게는 자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침마다 어제 배운 내용을 함께 복습하고

오늘 할 내용을 미리 예습한 것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전보다 훨씬 수월해 보였다.

낯선 질문 앞에서도 이전처럼 얼어붙지 않았다.

여전히 쉽지는 않았겠지만 힘들어 보이면서도

“그래도 해냈다”는 표정은 분명히 있었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아이 안에 분명한 자신감 하나가

조용히 자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목소리였다.

작게 웅얼거리듯 말하던 아이가 점점 목소리를 키우고 있었다.

조금 더 또렷하게 말하려 애쓰는 모습.

그 모습이 괜히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아마 아이 스스로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아주 조금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셀프 칭찬 어마무시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렇게 우리는 앞으로 3주 더 해내야 한다.

그래야 필리핀에 갔을 때 조금 덜 어색하고 조금 덜 두렵고

조금 덜 힘들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이 작은 한 걸음이

그 시작이었기를 바라며 오늘도 큰 소리 대신

조용히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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