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 건강·공부·서류·짐으로 채워진 하루들
필리핀에 가기 전, 우리가 하는 일은 아주 거창하지 않다.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단순하지도 않은, 작은 루틴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
아이들도, 나도 일단 건강부터 챙긴다.
맛있는 음식을 잘 먹고, 영양제도 빠뜨리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집밥으로 삼시 세 끼를 채운다.
떠나기 전이라고 특별한 걸 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시간이 조금은 단단하게 느껴진다.
사실 필리핀에 가서 새벽부터 도시락을 싸야 한다는
그 압박감을 미리 경험해보는 연습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침마다 아이들은 필리핀 선생님과 영어 튜터 수업을 한다.
그리고 나도 시작했다.
3년을 살았지만 영어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공부한다.
아이들만 보내는 게 아니라 같이 가는 거니까. 보호자인 내가 못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아이들은 복습학습 중이다
중학교 3학년인 첫째는 중학교 2학년 과정을,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는 초등학교 4학년 과정을 전 과목 문제집으로 다시 다진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한 번 더 정리하는 시간이다.
첫째는 현재 중학교 검정고시를 끝낸 상태지만,
필리핀에 가면 어차피 현지 학교 공부를 해야 하기에 선행보다는 복습이 더 맞을 것 같다.
유치원 막내는 영어 알파벳, 한글, 수학.
아주 작은 목표지만 하나씩 세워 천천히 준비하고 있다.
사실 막내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글 공부도 마쳐야 하고, 영어 알파벳도 배워야 한다.
쉽지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하면 될 거라는 희망은 가지고 있다.
첫째도, 둘째도 그랬듯이 말이다.
나는 요즘 사업과 병행하며 해외 이주 준비를 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해외 유학을 알리고,
필리핀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하나씩 정리한다.
필리핀 사립학교 제출 서류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일단 기본 서류를 영문으로 발급받고 아포스티유까지 해두었다.
아이들이 미성년자이다 보니 공인인증이 필요한 서류도 있어
은행을 몇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짐은 생각보다 말을 듣지 않는다. 쌌다가 풀고, 다시 싸기를 반복한다.
일단 세 박스는 배편으로 먼저 보내려 한다.
가자마자 써야 하는 물건과 조금 늦게 써도 되는 물건을
구분하는 일은 늘 어렵다. 그래도 이번 주 안에는 끝내야 한다.
설 전에 컨테이너에 실어야하기 때문이다
우린 아직 떠나지는 않았다.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설레서 그런 걸까.
우리는 이미 조금씩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밤마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본다.
그럼에도 이곳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기억되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여행 준비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연습을 한다.
삼남매가 곧 바다를 건너기 위한 워밍업.
오늘도 하나 끝냈다. (건강하게 맛난 고기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