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으로 떠나기로 선택한 이유
사실 그보다 훨씬 전,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남편은 중등 컴퓨터와 수학을, 나는 유치원 교사였다.
그곳의 아이들은 선교사 자녀들이었다.
각 나라로 흩어져 부모를 따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한국 교육과정을 배우기 위해 이 학교에 모였다.
이곳의 아이들에게 언어는 정체성이라기보다 하나의 도구에 가까워 보였다.
태어나고 자란 나라도 자신을 규정하는 기준이라기보다는 배경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해석이고, 선교사 자녀들 모두가 여기에 동의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놀이터에서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이도 언어도 다른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자라온 나라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섞어 쓰며 대화했다.
그 모습은 내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언어에 더 익숙한 아이들,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전혀 다른 문화와 감각을 지닌 아이들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며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가르치고 싶다기보다, 배움을 경험으로 바꿔주고 싶었다.
설명으로 아는 세상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혀 아는 세상,
정답을 찾는 교실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교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익숙함 밖에 서보라는 의미로, 첫째와 둘째와 함께 6년 전 두 달을 살아보았다.
두 달을 산다고 해서 아이들이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았다.
영어가 늘지도 않았고, 성격이 바뀌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낯선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졌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도 한 박자 덜 망설였고, 세상을 조금 덜 경계했다.
길게 살아보기 위해서는 워밍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10일간의 여행을 통해 그때의 추억을 다시 꺼내보고,
그땐 없었던 막내에게도 같은 시간을 건네는 준비가 되기를 바랐다.
6년 전의 여행이었지만 아이들은 공간을 구석구석 기억하고 있었다.
즐겨 먹었던 음식, 탔던 긴 파란색 미끄럼틀, 그림을 그리던 화실까지.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그 공간에 다시 서기만 하면 없었던 기억까지 함께 되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번 선택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결심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세상이 생각보다 넓고 사람이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다.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많은 것들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니던 학교를 정리해야 하고, 나는 사업 전반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이번 선택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우리가 왜 이 길을 택했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는 다시 떠나려 한다.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기 위해서. 삼남매, 곧 바다를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