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골을 찾기 위한, 아주 느린 창간사
어릴 때 저는 시골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서울 출신이라, 친구들이 여름방학에 다녀온 시골 이야기를 할 때면
제 차례가 오지 않기만 바라보곤 했습니다.
논두렁, 개울, 외갓집 마당 같은 단어들은
제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시골은
살아본 적 없는데도 이상하게 그리운 곳,
조금은 환상에 가까운 장소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저는 여전히 그때의 향수 때문에 여행지를 고를 때면
자연스럽게 ‘지방’을 향해 움직입니다.
복잡한 대도시보다
군 단위, 작은 도시, 면 단위 마을이 더 궁금해졌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런 동네들로 가끔 여행을 떠났습니다.
관광지 입구를 조금만 벗어나면
문 닫은 상가, 학생이 거의 없는 학교,
하루 몇 번밖에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풍경 한가운데에서도
오늘도 가게 문을 여는 사람,
아예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전혀 다른 삶을 실험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뉴스에서 보던 “지방소멸 위기”라는 말 뒤에는
언제나 이런 버티는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나니,
이 풍경들을 그냥 제 머릿속에만 두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름은 <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입니다.
저는 시골에 뿌리를 둔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여행을 다니며 이런 동네들을 따라 떠도는 히치하이커입니다.
이 연재는 거창한 연구나 분석보다는,
여행자이자 관찰자로서
제가 마주친 버티는 사람들, 동네의 작은 실험들을
지도 위 좌표 찍듯이 기록해 두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이건 지방을 공부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언젠가 제 삶을 오래 두고 싶은 한 곳,
“지방”이 아닌, 제가 “나만의 시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한
아주 긴 탐색이기도 합니다.
<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는
각 호마다 하나의 동네를 고릅니다.
그 동네에서 만난 사람, 공간, 협동조합, 청년센터, 작은 가게 같은 것들 중
몇 개만 골라 조용히 소개할 생각입니다.
한 지역을 완전히 설명하려는 욕심보다는,
“이 동네에는 이런 좌표들이 있다”
정도만 찍어두는 느린 지도에 가깝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삶의 다음 자리를 상상해 보고 싶을 때,
이 지도가 한 번쯤 펼쳐볼 만한 참고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 역시
이 지도 위 어딘가를
“여기가 제 시골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지도는 남해군에서 시작합니다.
폐교 위기였던 학교 옆에서 자라난 협동조합,
도시 밖 한 칸의 삶을 실험하는 촌,
소멸을 기록하는 출판사,
도심 한복판 한옥에 들어선 청년센터.
다음 글에서는
제가 남해에서 찍어 온 네 개의 좌표 이야기를
차근차근 펼쳐 보이겠습니다.
히치하이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