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맨의 두 좌표: 청년 거실 '바라'와 도시 실험 숙소 '팜프라촌'
친구들이 저를 ‘남해맨’이라고 종종 부릅니다.
남해에 자주 가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이야기 끝은 늘 남해 자랑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몇 년 사이 저는 남해를 세 번 다녀왔습니다.
한 번은 벤치마킹 출장으로,
한 번은 그해 여름휴가로,
그리고 작년 가을에는 엄마와 함께 다시 남해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 첫 번째 동그라미는
다른 어디보다 자연스럽게 남해군에 찍히게 됐습니다. 이 글은 그 남해에서 기억에 남은 네 개의 좌표 가운데,
먼저 두 곳에 대한 짧은 기록입니다.
남해와의 첫 만남은 여행이 아니라 일정표에서 시작됐습니다.
청년협의체 활동으로 다른 지역 벤치마킹하는 일정을 짜다가
동료의 제안으로 목적지를 남해로 정했습니다.
그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남해읍 골목 끝에 자리한 한옥 남해청년센터 ‘바라’였습니다.
‘ㅁ’자 구조의 오래된 한옥 한 채를
통째로 청년센터로 쓰고 있다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센터 안에서는 남해청년센터와 청년네트워크 담당자들이 남해 청년들의 일과 고민,
지역 안팎을 잇는 프로젝트들을 차분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해 목표 가운데 하나가 “타 지역과의 교류 4회”였는데,
우리가 방문한 날이 바로 그 첫 번째 자리였다고 합니다.
“올해 타 지역 교류 목표가 네 번인데, 이번이 그 첫 번째라 고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일정을 무리하게 부탁한 건 아닐까 하던 미안함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참여도였습니다.
"축구 한 번 하겠다고 공지하면 남해군 청년 서른 명은 모인다"
는 이야기는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어서 오래 남았습니다.
큰 건물 안의 한 칸을 빌려 쓰는 청년센터에 익숙한 제게,
한옥 한 채를 온전히 청년들의 거실로 쓰는 ‘바라’는 지금도 부러운 좌표입니다.
벤치마킹 일정 동안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머물렀던 숙소이자
메인 좌표는 팜프라촌이었습니다.
팜프라촌이 자리한 두모마을은
조용한 산골 같으면서도, 걸어서 10분만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동네였습니다.
편의점도 없는 작은 마을이었고,
5월에 도착한 그곳은 물이 가득 찬 논 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느껴졌습니다.
체크인하던 첫 밤, 논에서 울려 퍼지는 수많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며
“오늘 잠이 오긴 할까?”
싶었지만, 도시의 소음과는 다른 자연의 소리 속에서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마을 곳곳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번지며
저를 일찍 깨웠습니다.
‘팜프라’라는 이름은 Farm(팜)과 Infrastructure(인프라)를 합친 말이라고 합니다.
농촌이라는 공간 위에 사람들이 살아보고 머물 수 있는 새로운 인프라를 깔아 보겠다는 뜻이
이름 안에 담겨 있습니다.
팜프라촌이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곳이 무턱대고 시골로 내려오기 전에
먼저 한 번 실험적으로 살아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삶의 100칸 중 한 칸쯤을 3일, 1주일, 1개월 동안 이곳에 옮겨 두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를 몸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저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음 날, 팜프라촌 스태프와 마을을 산책하며
두모마을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말 속에서 마을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인 저에게도
이 동네를 함께 좋아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작년 가을, 엄마와 다시 남해를 찾았을 때도
숙소는 당연히 다시 팜프라촌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해에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두 좌표는
한옥 청년센터 ‘바라’와 두모마을의 팜프라촌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그리고 화면 너머에서 먼저 걷고 있던
‘해변의 카카카’ 이야기를 이어서 적어 보려고 합니다.
히치하이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