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 VOL.1-2 <남해>

남해: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의 삶을 바꾸는 동네의 힘

by 히치하이커

3. 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


두 번째 남해는 그해 여름휴가였습니다. 벤치마킹 보고서를 정리하던 중 알게 된 곳,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는 상주중학교와 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상주은모래해변에서 보이는 중학교. 제주도에서도 바다 바로 앞에 학교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존재 자체가 낭만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동네는 멋진 해변을 갖고 있지만 제주 중문관광단지, 부산 해운대 지역처럼 번화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작은 가게들만 있는 조용한 동네입니다. 그런 동네에서 학교마저 사라진다면 점점 소멸은 가속화될 거라고 누구든 생각할 겁니다.


지방소멸과 폐교 위기 속에서, 이 학교는 2010년경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학부모·교사·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 2016년, 상주중학교는 해양·생태 중심의 기숙형 대안학교로 전환하며 활로를 모색했고, 이 과정에서 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이 설립되었습니다.


상주로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과 오래 살아온 지역 주민들이 함께 엮여 지금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실제 성과로도 이어졌습니다. 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은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과 마을자원을 활용한 로컬 비즈니스로 지역공동체와 지역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7월, ‘협동조합의 날’ 기념식에서 경남도지사상을 수상했습니다.


상주에 도착해 마을을 걸어보면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을빵집을 중심으로 학교·마을·가게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 여름휴가 중 상주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마을빵집 빵을 한 조각 베어 물었던 순간이 또렷합니다.


동네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 안에서 사람들의 온기와 이야기 소리가 소음이라기보다 활력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제가 이런 이야기들을 알고 있기에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맛있는 빵만으로 감동하고 즐거워하겠지만, 저에게는 이 동네 주민들의 숭고함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멋진 일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은 할 수 없다고 말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월터 배젓-

단순히 빵 하나를 먹는 시간이 아니라, 이 동네를 함께 꾸려 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조금이나마 곁에서 함께 나누는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에게 상주동고동락협동조합은 결국 이렇게 정리되는 곳입니다.


언젠가 다시 남해를 찾게 된다면, 그때도 이 마을빵집에 다시 들러 그날 미처 먹어보지 못했던 다른 빵들도 꼭 한 번 더 맛보고 싶습니다.



4. 해변의 카카카


마지막 좌표인 해변의 카카카는

제가 남해에서 직접 만나 본 사람들은 아닙니다. 첫 남해 여행을 다녀온 뒤,

동네를 더 알고 싶어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해변의 카카카’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됐습니다. 영상 속에는 남해에서의 일상, 바닷가 공기, 전시와 책 작업, 무인도 영화제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보고 있는데도

“이 사람들은 이 동네를 오래 두고 바라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기사와 자료를 통해 알게 된 건,

이들이 남해에서 다큐멘터리, 로컬 투어, 그리고 책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 등을 기획하며

‘지방소멸’이라는 말을 사람들의 얼굴과 일상으로 풀어 보려 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들이 2019년 남명초등학교에서 개최한 ‘제1회 남해 무인도 영화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제는 지역, 방언, 촌(村)이라는 세 섹션을 통해 젊은 시각으로 지방 소멸 이슈를 재해석했으며, 연계 포럼의 주제 중 하나가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종종 지방을 여행하던 중 남는 시간에 영화를 보기 위해 2시간을 운전해서 극장을 찾아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작은영화관'이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문예회관에서 영화를 관람했다는 나주 지인들의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직접 문화 기획을 통해 영화제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달랐습니다. 이는 저에게도 큰 도전을 주는 떨림이었습니다.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이라는 책에는 이주민과 주민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책의 제목이 ‘소멸하지 않는 방법’이었다면 희망과 위로만 초점을 두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소멸하는 방법’이라는 제목 아래 담백하게 남해의 이야기를 기술하고 있어, 저는 이 기록이야말로 사라져가는 남해의 이야기를 숭고하게 채우고 있다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해변의 카카카에서 발간한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 2'


지금은 ‘카카카 친구들’이라는 이름의 기획사를 세우고

서면에 작업 공간을 두며, 마을 백일장, 활동가 교육 같은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가끔 남해에 가서 조금 보고, 조금 적고,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라면,

해변의 카카카는 그 동네에 머물면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사라질지 모른다”는 말 뒤에 가려진 남해를 기록해 온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남해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11월 지금 이 순간의 남해는 2024년 행정안전부 기준, 남해군의 인구는 39,832명으로 이미 4만 명대가 무너진 상황입니다.


작년 엄마와 단 둘이 첫 여행을 떠났을 때, 지나가는 사람도 편의점도 드문 동네를 보면서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지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삭막한 인구 통계 속에서도, 남해는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난 9월 7일, 상주 두모마을 서울농장에서는 청년의 날을 맞아 ‘남해감각’ 행사가 열렸습니다.

남해청년센터 ‘바라’와 남해군, 그리고 팜프라촌이 함께 준비한 자리였습니다.


저 역시 협의체 활동을 하며 청년의 날 행사를 기획할 때, 모객의 안전성 때문에 결국 시내권이나 번화가를 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팜프라촌이 위치한 두모마을은 읍내와 차로 18km나 떨어진, 상권이 없는 곳입니다.

세 번이나 남해를 여행했고 같은 행사를 기획해 본 사람으로서, 이곳에서 행사를 연다는 것은*'대단하다, 그리고 자신 있다'는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남해에서 살아가는 청년들과 이곳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두모마을에 모여, 하루를 함께 보내며 남해라는 동네를 각자의 방식으로 느끼고 나누는 시간일거라고 사진을 보면서 상상합니다.

이처럼 모객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지역의 본질적인 좌표를 지켜내는 힘이 바로 남해의 매력입니다.


또한 팜프라촌이 주최하고 남해관광문화재단이 후원하는 ‘NAMHAE 250KM 트레일러닝 프로젝트’ 역시 2025년 11월 23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는데, 남해의 산과 바다를 250km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제안하며, 자연·사람·지역이 연결되는 새로운 여행 문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711885_525222_89.jpg

멀리서나마 설레게 만드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항상 응원하고 기대가 되는 곳 바로 남해입니다.



다음 '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 두 번째 동그라미는 전라남도 곡성군입니다.

많은 이들이 영화 <곡성> 외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그곳에서,

저는 워케이션을 경험했습니다. 곡성에서 찾은 '일하는 여행'의 좌표, 다음 편에서 열어보겠습니다.


히치하이커 드림.

작가의 이전글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 VOL.1-1 <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