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 VOL.2 <곡성>

영화가 아닌, 일상의 무대로서의 곡성

by 히치하이커

곡성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많은 분들은 아마 먼저 그 강렬했던 영화 제목을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섬진강 기차마을이나 장미 축제 같은 유명한 행사가 있음에도, 정작 우리의 기억 속 여행지 지도에서는 곡성이 그만큼 선명하게 자리 잡지 못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남해를 벤치마킹으로 다녀왔던 2023년 그해 늦가을, 또 다른 벤치마킹 일정지로 곡성이 정해졌습니다.

그때 동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워케이션을 주제로 한 번 가 보죠. 곡성 어때요?”

영화 제목으로만 알고 있던 그 곡성을 ‘일하면서 잠시 살아보는 실험’의 공간으로 다시 보자는 제안을 받은 순간, 제 안에서는 곡성에 대한 이미지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지도 위에 점 하나가 찍힌 느낌만 남았을 뿐,

그 점이 어떤 얼굴을 한 동네인지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번 일정에서 우리가 머물 숙소는 곡성 오곡면 심청한옥마을 안에 있는 워케이션 공간, 팜앤디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러스틱타운’이었습니다. 체크인 후 바로 미팅이 잡혀 있어 이른 오후에 도착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산골에서 워케이션이라니, 과연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의문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러스틱타운에 들어서는 순간, 마침 워케이션을 마치고 체크아웃 하고 택시를 기다리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있는 팀을 마주첬습니다.


노트북과 캐리어를 들고 한옥 마당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아, 여기서 진짜 워케이션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사실 이곳의 이름이 왜 심청한옥마을인가 했더니, 곡성이 바로 고전 소설 심청전의 본고장이라고 하더군요. 그 사실을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팜앤디협동조합은 관광지로서의 활기를 잃어가던 이 마을을 2022년부터 워케이션 거점으로 다시 꾸며, 기업과 개인이 머물며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머문 숙소는 이름에 걸맞게 고즈넉한 한옥 독채였습니다. 팀원들 모두 1인 1실을 배정받아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었고,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경치는 도시의 소음을 잊게 만들 만큼 훌륭했습니다.


반면 업무 공간은 철저히 기능적으로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겉은 예스러운 한옥이지만 내부는 일하는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쾌적하게 구성되어, 밖에서는 쉼을, 안에서는 일을 챙길 수 있는 균형 잡힌 공간이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곳이 방문 전부터 이미 숫자로 증명된 공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방문하기 직전인 2023년 9월 기준으로 이미 112개 기업, 700여 명의 직원이 다녀갔고 재방문율은 43%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한 곡성군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러스틱타운과 워케이션 사업을 지역의 핵심 사업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를 방증하듯 지방소멸대응기금 71억 원을 투입해, 폐교된 삼기중학교를 제2의 워케이션 거점으로 확장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공공이 기반을 닦아 비용을 낮추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머물 수 있습니다.”

팜앤디 서동선 대표의 말처럼, 민간의 기획력과 행정의 강력한 의지가 만나 소멸 위기의 지역을 누구나 와서 일하고 싶은 동네로 바꿔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보았던 불씨는 이제 거대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2025년 9월, 러스틱타운은 농림축산식품부 농촌 워케이션 사업의 신규 거점으로 선정되며 그 가치를 국가적으로 공인받았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던 발길은 이제 ‘워크빌리지 in 곡성’과 같은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에 머물며 살아보는 실질적인 정주 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년 전 낯선 산골 마을에서 목격했던 그 실험은 이제 곡성의 확실한 생존 전략이자, 지역 소생의 해법으로 단단히 뿌리내렸습니다.



곡성에서 '심청'이라는 고전이 현대적인 워케이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소설 속 하얀 문장들이 현실의 풍경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곳,

강원도 봉평입니다. 흐드러진 메밀꽃밭 사이에서 발견한 문학마을의 저력과 그곳만의 로컬 브랜딩 이야기.

<메밀꽃 필 무렵>의 그곳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히치하이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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