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하이커의 지방 지도 VOL.3 <봉평>

소설 한 편이 만든 150억의 기적, 봉평의 브랜딩

by 히치하이커

제 열아홉 살의 가을은 유난히 건조하고 팍팍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교실의 공기는 무거웠고, 책상 위에 쌓인 문제집들은 내일의 불안을 대변하는 듯 높기만 했습니다.


이효석 작가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처음 만난 것도 바로 그 무렵, 그것은 제게 그저 하나의 문제집 지문이었습니다. 당시 저에게 문학이란 가슴으로 느끼는 감동이 아니라, 밑줄을 긋고 핵심어를 외워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지문'에 불과했습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예시 / AI이미지>


라는 그 아름다운 묘사조차도, 시험에 나올법한 '직유법의 예시'로만 보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당시의 저는 '소금을 뿌린 듯하다'는 그 표현이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메밀꽃이 그토록 새하얗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요.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어른이 한참 되고 난 후 우연히 마주친 드라마 <도깨비> 속의 한 장면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허 생원과 성 서방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들의 여정이 어떻게 끝났는지 줄거리는 희미한 안개처럼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 치열했던 암기의 시간 속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제 머릿속에 선명한 부유물처럼 떠다니는 딱 세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메밀꽃, 봉평, 그리고 왼손잡이.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마치 제가 이 문학적 낭만을 좇아 봉평으로 달려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단어들이 저를 이곳으로 이끈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시작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지난 몇 번의 여름, 강원도로 휴가를 떠나면서 북적이는 동해안 일대보다 상대적으로 숙박비가 저렴하고 조용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올림픽 개최지였던 평창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거긴 좀 어떨까' 싶어 조금 더 가성비 좋은 곳을 깊이 찾다 보니, 자연스레 평창군 봉평면으로 발길이 정해졌습니다.


그렇게 세 번의 여행 동안 이곳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저렴한 숙소를 찾아 우연히 발을 디딘 이곳에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낡은 문제집 속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기억의 파편들을 따라 봉평에 도착해 눈에 들어오는 간판이라곤 온통 '막국수' 아니면 '메밀국수' 뿐이었습니다.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예전부터 타 지역에서 먹었던 메밀 음식(유명한 음식점)에 대해 그리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툭툭 끊어지는 낯선 식감이나 밍밍한 맛이 제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춘천에 가면 의무감으로 닭갈비를 찾듯, 봉평에 왔으니 '그래도 본고장의 맛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효석 문학관을 지나 메밀 음식점이 즐비한 '효석문화마을 메밀음식거리'에 들어서니,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 규모의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당 앞마다 관광버스가 서 있고 수많은 손님이 대기하고 있더군요. 그중 한 곳을 골라 들어가 메뉴판을 펼쳤습니다. 국수만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메뉴가 무척 다양했고, 개중에는 15,000원이나 하는 음식도 있어 내심 놀랐습니다.


저는 그중 들기름이 들어간 비빔국수를 주문했습니다. 곧이어 식탁 위에 놓인 국수는 제가 알던 투박한 막국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극적인 붉은 양념 대신 은은한 간장 베이스 소스가 깔려 있었고, 그 위로 형형색색의 신선한 채소 고명이 정갈하게 올려져 있어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습니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쓱쓱 비벼 한 입 맛을 보았습니다. 순간, 입안 가득 고소한 들기름 향이 퍼지며 아삭한 채소들이 어우러지는데, 마치 고급스러운 신선한 샐러드를 먹는 듯한 산뜻한 풍미가 정말 장난이 아니더군요. 메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제 오랜 편견이 단 한 젓가락에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장터의 패스트푸드에서 로컬 브랜드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며 벽에 붙은 글귀들을 읽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렇게 세련되고 맛있는 음식이 언제부터 이곳의 명물이 되었을까 하고요.


2010년의 한 기사를 찾아보니 당시 봉평 거리에 이미 30여 곳이 넘는 전문점들이 성업 중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훨씬 더 많아졌겠지만, 알고 보니 이 화려한 음식 거리의 시작은 그리 거창한 요리가 아니었습니다.

봉평 메밀국수의 기원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봉평에는 닷새마다(매월 2일, 7일) 열리는 '오일장'이 지역의 중심이었습니다. 장날이면 인근 마을 주민부터 물건을 파는 상인, 지나가는 여행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바쁜 장터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빠르고 간편하게 허기를 달랠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 바로 메밀국수였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흔하게 구할 수 있었던 메밀로 반죽을 하고, 주문 즉시 면을 뽑아 뜨거운 물에 삶아 내면 금세 한 끼가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메밀국수는 그 시절 봉평 장터의 '패스트푸드'였던 셈입니다.


재미있는 건 메밀의 성질입니다. 메밀은 밀가루와 달리 끈기가 부족하고 거친 곡물입니다. 그래서 미리 반죽해 놓거나 삶아두면 금방 불어버리고 뚝뚝 끊어지기 십상입니다. 이 때문에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면을 눌러 뽑고, 정확한 온도와 타이밍에 맞춰 삶아내는 기술이 필요했습니다. 금방 뽑아서 '막' 해 먹는다고 하여 '막국수'라 불렸다는 설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낯선 메밀의 성질을 다스리려 했던 이곳 사람들의 지혜와 손맛이 숨어있었습니다.


장터 한구석에서 싼값에 허기를 채워주던 그 국수는 이제 봉평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2010년 기사에서 이미 투박한 어감의 '막국수' 대신 '메밀국수'라는 명칭을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소개한 대목입니다. 이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오래전부터 메밀을 중심으로 한 봉평만의 음식 문화를 보존하고 그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메밀을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지역의 정체성으로 지키려던 노력은 비단 그릇 안에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봉평은 이제 매년 가을이면 수십만 명이 찾는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거듭났으니까요.


실제로 자료를 찾아보니 그 성과가 꽤 놀라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축제로 선정되었던 2018년 평창효석문화제의 경우, 불과 열흘 남짓한 축제 기간 동안 무려 151억 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방문객 수도 33만 5천 명에 달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5% 이상 급증한 수치였습니다.


흥미로운 건 방문객들의 구성이었습니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낭만적인 분위기 때문에 연인들이 가장 많을 거라 짐작했는데, 실제로는 가족과 친지 동반 관광객이 44.4%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낡은 문제집 속의 문학이 현실의 활기찬 축제가 되어 남녀노소 모두를 불러 모으고 있는 셈입니다.


그 열기는 여전할까요? 2025년 9월에 열린 올해 효석문화제에도 열흘간 19만 5,000여 명의 인파가 다녀갔다고 합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문학'과 '메밀'이라는 봉평의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건재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어쩌면 조금 충격적인 반전이 하나 숨어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메밀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은 이곳 강원도가 아니라, 바다 건너 제주도라는 사실입니다. 2024년 농작물생산조사 통계 자료를 살펴보니 그 차이는 더욱 극명했습니다. 메밀의 고장이라 불리는 강원도의 생산량은 157톤에 불과했던 반면, 제주도는 무려 2,586톤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경상북도(213톤)보다도 적은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메밀 하면 어디가 떠오르나요?"라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봉평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심지어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메밀조차 가공을 위해 육지로 보내져, 봉평의 이름을 달고 식탁에 오르기도 했으니까요.


도대체 무엇이 이 16배가 넘는 생산량의 차이를 뒤집었을까요? 저는 그 답이 바로 '이야기의 힘', 즉 브랜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의 메밀이 척박한 땅을 일구기 위한 농작물로써 묵묵히 존재했다면, 봉평의 메밀은 이효석이라는 걸출한 문학적 유산을 입고 화려한 '문화'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라는 소설의 문장 하나가, 봉평을 단순한 농작지에서 '낭만의 성지'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발길을 이끄는 것은, 물리적인 생산량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고유한 스토리'라는 것을 봉평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가 낡은 문제집 속 지문 한 줄을 기억하고 살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봉평에서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문학이 축제와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정착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목적지는 밭담 너머 힙한 가게들이 숨 쉬는 반전의 마을 제주 구좌읍 세화리입니다. 조용한 당근밭 마을이 어떻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로컬 힙(Local Hip)'의 성지가 되었는지 그 비결을 찾아갑니다. <제주 세화, 낭만이 아닌 '취향'을 팝니다> 편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히치하이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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