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말하는 대로

리뷰를 가장한 감상문

by 삼채문

* 스포일러가 많으며 글이 두서가 없습니다





신이 말하는 대로는 영화로 처음 접했다. (고3 때) 시작할 때 나온 머리가 터지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안경 쓴 놈이 냉정 해지라는 말이 인상 깊은 나머지 노트 앞에 파란색 포스트잇에다가 냉정이라고 써놓고 붙이고 다녔다.


만화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학교에 있는 학생, 2부는 학교에 없는 학생들이 게임을 해 살아남은 사람이 막판에 한 곳으로 모인다. 사람 목숨이 파리보다 가볍다. 파리나 모기도 이렇게 쉽게 죽지 않을 것이다.


1부 주인공은 슌이라는 놈이다. 주인공답게 적당한 운빨과 비상한 머리, 리더십, 여자들이 꼬인다. 미친 게임답게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 중 제정신이 극히 드문데, 슌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 자기 목숨이 한 개 더 있는 것 마냥 거침없이 행동한다. 잘리기 게임에서 50%의 확률에 목숨을 걸고 질주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 작품에서 50%는 큰 확률이긴 하지만) 또한 다른 인물들과 가장 차이나는 특색은 게임의 주최자인 '신'을 죽이는 데 미쳐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운 뽑기로 죽은 여자애의 고백을 들은 뒤로, 이 결심은 확실해진다. 규칙을 어겨가며 신을 죽이려 하고 , 나중에 신이 될 기회를 버려가며 동귀어진하는 미친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이 갖고 있는 두 개의 주제 중, 슌은 「운명에 대한 저항」 역할이다. 자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규칙을 어기고 목숨을 걸며 신에게 도전해 죽을 뻔한다. 또한 신이 될 기회를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삶이라며 죽음을 선택하는 행동은 거대한 힘을 가진 신과 운명에 저항하는 인간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2부 주인공은 아키네다. 얘는 한마디로 '이타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이 미친 게임에서 남을 위한다는 것보다 미친 게 있을까? 머리 회전은 좋지만, 그놈의 이타성 때문에 묻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리더십은 뛰어나다. 조직원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솔선수범하고 헌신적인 리더상이다. 삼국 경도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잡히면 팀 모두가 죽는 왕 역할인데 튀어나가 버리는 정신 나간 행동을 하지만, 작품의 긴장감을 위해 희생된 감이 없잖아 있다.

자기 절친이 자주 말하는 겁쟁이 닭이 될 건가 행동하는 소가 될 건가를 자주 말하며, 결정적일 때 행동력도 좋다.


아키 네로 작품이 전하는 주제는 이 미친 상황에서도 사람은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어쩌면 아키네의 비상한 머리 회전은 남을 도와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의 각성일 수도 있다.

게임 자체가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곧 뒤지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는 크다. 이 놈의 단짝 오키나와(?) 역시 제정신이 아니다. 어느 순간 거의 맹목적으로 사랑에 빠져 광신도가 된다. 머리와 피지컬 둘 다 최상급이어서 아키네가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앞에 나왔듯이, 정상이 거의 없다. 1부 처음에 나온 노란 머리는 죽기 직전에 흥분을 느끼는 약간(이 작품에서) 비정상이고, 진짜 살육을 즐기는 사이코도 있다. 이쯤 되면 여장남자는 비정상 축에도 못 낀다.


2부 마지막 카드 게임이 끝나고 신이 됐지만, 오유처럼 모든 사람들을 살려내겠다는 희망이 박살날을 때, 아키네는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억을 다 잃고 감정만 남아 사이코를 이기고 죽지만, 이제까지의 모든 여정들이 허튼짓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적어도 그에게는) 살아도 산 게 아닐 것이다. 사이코의 기억에서 슌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을 보았을 때, 슌이 동귀어진 안 하고 그냥 신이 됐으면 사이코를 제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키네 빠돌이를 빼고 게임 참가자들은 전부 죽었다. 숨 쉬는 것처럼 사람들이 죽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죽는 것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조연들). 그냥 어어하다가 터지거나 괴물들에게 픽픽 죽는다. 그 와중에서도 인상 깊게 죽는 애들이 몇몇 있었다. 스스로 죽음을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다.

가장 인상 깊은 학생은 모래 치우기 게임에서 팀의 전멸 위기를 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애다. 이름은 모르겠다. "내 목숨을 너에게 건다"는 간지 나는 유언은 덤이다. (그 뒤에 바로 실패해 말아먹긴 했지만) 그다음으로 가위바위보를 거부하고 살인자라고 일갈한 뒤 죽어버린 안경녀이다. 아키네는 미친놈답게 뒤지든 말든 죽빵 한 대 때려보겠다고 주먹(질)을 날린다. 오키나와는 아예 한 판 더하자고 한다. 죽은 애들이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해지는 발언이다.


미궁 마지막에 아키네와 같이 반반 확률의 해적 룰렛을 한 단짝도 능동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자신의 의지를 주인공에게 맡기고 당당하게 죽는 모습은,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채 죽어 슬픔이 배가 된다.

이렇게 능동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슌처럼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삶(=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파도에 도망치지 않고 뛰어가 몸을 던지는 모습에 숭고함과 비장미까지 느껴진다.


다행히도(?) 게임이 진행된 입방체는 중-고등학생들이 끌려갔다. 일단 난 살았다. 전 세계에서 벌어졌고, 많아봤자 생존율은 1% 정도다. (입방체마다) 한 세대가 사라지는 급의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게임 상황은 tv로 중계가 되는데, 요즘 나왔으면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가 됐을 것이다. 그걸로 돈 벌려고 혈안이 될 사람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입방체에서 살아 나온 학생들은 신의 아이로 추앙받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능 만점은 명함도 못 내밀 것이다.


현실이나 작품에서나 사람 목숨은 한 개다. 그래서 죽기 전에 인간은 본성이 드러나고 살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한다. 극히 일부를 빼고 뒤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기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는 주연들이 있지만, 전체로 보면 극히 적다. 사람은 극한의 순간에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다. 차에 깔린 애를 구하기 위해 혼자 차를 든 여성의 경우가 있다. 흔히 '목숨을 걸고 해라'는 말은 목숨까지 위험할 정도로 극한의 상황을 상정해 최상의 효율로 일을 처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꼭 극한 상황에서 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승부차기나, 시험, 양궁에서 마지막 순간에 결정되는 극한 상황에 긴장감으로 말아먹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간의 신체는 정신과 호르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여분의 기회는 긴장을 풀어 과감한 선택과 실패 가능성을 줄여준다.


'여분의 기회'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데, 승부차기와 차 밑에 깔린 아이의 경우를 비교해 보자. 마지막 승부차기에서 골을 못 넣으면 즉시 죽지는 않는다.(자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런데 차 밑에 깔린 아이는? 물론 즉사의 경우는 아니지만, 다음 기회에 이딴 건 없다. 그래서 자신의 신체를 초월하는 힘이 나오는 거다. 이걸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씨맥이 말한 쏘우에 나오는 폭탄 목걸이를 차고 일해야 한다. 옆 사람 것이 터져 피가 튀기면 효과 만점이다.


이 정도까지가 아니면 '목숨 걸고 한다'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다.

아니면 '목숨'과 적어도 엇비슷하게 실패 시 페널티를 거는 방법도 있다.

목표 달성 실패 시 50만 원 회식 쏘기, 여장, 남장하고 걸어 다니기 뭐 이런 것들을 미리 걸어보자.

한국 영화판 홍보문구처럼 지루했던 일상이 짜릿한 게임으로 변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