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걸음

『생텍쥐페리의 문장들』 중에서

by 세잎

그렇지만 나를 살린 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다시 한 걸음을,

항상 그 똑같은 한 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것 말이야.


-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중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지. 생텍쥐페리.


작가 이름보다도 『어린 왕자』 책 제목이 더 먼저 떠오르긴 할 거야.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가 작가 이전에 조종사였던 건 알고 있니?


생텍쥐페리는 당시 조종사로서 비행을 하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해. 생과 사를 넘나드는 일을 겪으며 그 경험으로 어린 왕자를 비롯한 여러 소설들을 쓰게 됐지. 저 글귀는 <인간의 대지>라는 책에 나온 글귀야.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경험이다 보니까, 정말 삶을 포기할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 많았겠지. 그런데 그 순간에 저러한 문장들이 나오게 돼.


"나를 살린 건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다시 한걸음을."




우리도 살다 보면 간혹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만나게 될 수 있어. 엄마 역시 참 많은 순간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었었단다. 크든 작든, 중요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말이야.


학생 때 공부를 하는 중에,

직장인이 되어 업무를 하는 중에,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중에,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 육아를 하는 중에,

그 외에도 참 많은 순간들에서 말이야.


작가가 말한 '한 걸음' 딱 그 한걸음 내딛는 게 참 쉽지 않더라.




엄마가 중국어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때였어.


대학교 때 교직이수도 하고 중국어 교사의 꿈을 가지게 되었지만, 소위 비주류 교과인 제2외국어 교사가 되는 건 쉽지 않았어. 교수님들도 말릴 정도였으니까.


더군다나 중국에서 몇 년씩 살다 온 중국어 능력자들과 경쟁하기엔 토종 한국 토박이였던 엄마의 실력은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수준이었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그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어. 모의고사를 봐도 합격 점수 언저리에도 가지 못하고 겨우 과락을 면할 정도의 점수였으니 말이야.


남들은 대학교 졸업 후에 이미 회사에 취직하고도 남는데, 나는 나이 먹어서 부모님께 계속 용돈 받아가며 공부만 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해서 합격이 보장된다면 모르겠는데 언제 합격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게 맞는 건가.


수도 없이 고민을 했지.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게 맞는 건가 하고 말이야. 첫해 임용고시를 떨어지고, 포기하냐 마냐, 재수를 하냐 마냐 기로에 놓였을 때 딱 이 생각이 들더라.


'지금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데.'

'딱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다시 도전해 볼까'


그때 다시 한걸음, 한걸음만 더 가보자라는 생각이 든 거야. 여기서 포기하면 지금껏 해왔던 게 너무나도 아쉬울 것 같았어. 그래서 떨어지더라도 후회 없이 떨어지자는 생각으로 재수를 결정하고 이 악물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단다.


중국어 능력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엄마는 중국어 원서를 통째로 다 외웠어. 아무리 해도 안 외워져서 매일 A4용지 한 박스를 옆에 두고 그 종이 한 박스를 다 쓸 때까지 책을 통째로 적어가며 외웠어. 몇십 장씩 종이에 써가며 외우다 보니까 손끝이 종이에 하도 많이 쓸리게 되고, 어느 순간엔 종이에 닿는 새끼손가락 쪽 끝면이 피가 나고 굳은살이 베기더라.


그렇게 치열하게 한걸음 한걸음 내디딘 경험이 있었기에 단단한 내면의 힘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아.




머리로는 알겠는데, 여기서 한걸음만 더 내디뎌 힘내면 될 것 같은데, 그 한 발짝 내딛는 거조차 힘들 때가 있을 수 있어. 만약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건 아마 네가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든 순간에 봉착했다는 얘기겠지.


엄마도 그런 순간들을 경험해 봐서 무작정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지는 않아. 어떤 때는 그 "힘내"라는 말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말이야. 너무 고마운 응원의 한마디이지만 간혹 너무 힘들 때 그 말을 들으면 오히려 지금껏 힘내왔던 것이 부정당한 느낌일 수도, '더 이상 낼 힘도 없는데......' 하고 낙담할 수도 있잖아.


그럴 때 너 자신에게 "힘내자"라는 말 대신에 "한 걸음만! 다시 한걸음만 딱 가보자"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


무언가 네가 계속해서 노력해 왔던 일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 일이 무엇 때문인지 막혀서 마지막까지 완주를 못하고 있다면 '한걸음만 더 가보자'라고 말해보는 거야.


물론 상황에 따라서 지금 멈추는 게 맞는 상황일 수도 있어. 오히려 나아가지 않고 멈추는 게 현명할 수도 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포기하고 멈추기엔 후회와 미련이 남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면, 잠깐 멈춰서 네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봐 봐. 그리고 네가 남긴 수많은 발자국들을 봐보렴.


그것이 지금껏 공부해 온 공부의 흔적일 수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쌓아온 노력일 수도, 그 어떠한 순간에서 흘린 땀방울일 수도 있겠지. 지금껏 한 발짝 한 발짝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온 너의 길이 결코 아쉽지 않게 딱 한 발짝만 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걸음만 더 가보는 거야. 그다음에 쉬어가든 포기하든 그때 정해도 늦지 않아.




생텍쥐페리 역시 그 한걸음이 자신을 살렸다고 말해. 죽음을 앞에 두는 순간에서 말이야. 그리고 용기 내어 걷는 그 한걸음이 덜 힘들도록 이런 말이 덧붙여 나와.


폭풍우 안개, 눈보라가 때때로 자네를 힘들게 할 거야. 그럴 때면 자네 이전에 그것을 겪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해냈던 것이라면 우리도 언제든지 해낼 수 있다'라고 말이야.


포기를 눈앞에 둘 때는 한없이 나 자신이 못나 보이고 약해질 수 있거든. 그때 이렇게 당당하게 말해보는 거야.


까짓 거. 남들이 한 거 나라고 못하겠어?


처음 한걸음 발을 내딛는 게 어렵지 그 한걸음을 다시 내딛는 순간 그것이 추진력이 되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야.


쉽지 않겠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이미 다 해봤는데도 안 됐던 거일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후회와 미련이 남을 것 같다면, "다시 한걸음" 내딛는 용기를 마지막으로 가져보길 바라. 그리고 그렇게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도전했을 때 결과가 어떻든 간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느낄 수 있을 거야. 결과는 상관없어. 네가 내디딘 수많은 발자국들이 너를 더욱 빛나게 해줄테니까.


아직 목표한 정상에 다다르지 않았다면 지금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한숨 고르고,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출발해 보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서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을 것 같다 할지라도 딱 한걸음만 더 내디뎌 본 후에 다시 쉬어가도 되니까 말이야.




그거 알아? 넌 이미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는 경험을 이미 했었다는 걸 말이야. 단 한 번도 세상에 두발을 딛고 서있어 본 적이 없었던 너는 수없이 많이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지고 부딪쳤지. 숱한 좌절과 고통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 끝끝내 걷기 시작했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었었단다. 첫걸음마. 어쩌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인생 첫 가장 큰 도전이자 가장 어려운 도전이지. 아직도 첫걸음마를 성공하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던 네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첫걸음마의 순간을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 사실은 알고 있으렴. 너는 다시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수도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끝끝내 성공했었던 사람이란 걸 말이야. 그렇게 넌 대단한 사람이란 걸 말이야.


KakaoTalk_20231016_230722566.jpg 네가 처음 신발 신고 밖에 나가 걸어 본 날.




잠시 숨을 고르고 한 발을 내디딜 때, 네 앞을 가로막았던 폭풍우와 안개가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이 싸악 사라지길 바라며,


치열하게 나아가는 너의 한걸음 한걸음을 응원할게!



jake-hills-bt-Sc22W-BE-unsplash.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