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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 Dec 31. 2023

<수업> 누가 수업의 주체인가

프로젝트수업(2)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기로 결심하고 나면 교과서를 끌어안고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며 이렇게 저렇게 수업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하게 되면 실제적인 문제해결이 목적이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접하게 될 상황을 설정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온 목차 순서대로 수업을 진행하기보다는 설정한 상황에 따라 학생들이 더욱 잘 이입을 하고 이해를 하기 위해 목차의 순서를 바꾸기도 한다. 어떠한 순서로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에게 가장 와닿는 실제적인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누가 수업의 주체인가." 하는 문제.  


교사가 주체가 되어 일방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주체가 될 수 있게끔 프로젝트 수업을 디자인하는 것.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휴직기간 열어보지도 않았던 노트북 저 깊은 곳의 수업자료 파일을 열어보며 지난 학기들에 프로젝트 수업을 어떻게 진행했었는지 정말 오랜만에 확인을 하게 되었다.




교과서 단원별로 정리해 둔 폴더들을 뒤로한 채 두 개의 폴더가 눈에 띄었다.


"여행프로젝트"

"입국심사프로젝트" 


1학기는 여행지에 도착하기 직전에 실제 비행기에서 하게 되는 입국심사서 작성을 메인 테마로 잡고, 2학기는 여행 계획을 직접 짜서 첫째 날부터 가게 될 곳, 하게 될 일, 먹게 될 것들에 대해서 계획 및 시뮬레이션 해보는 것을 메인 테마로 잡았다.


중국 입국심사서를 똑같이 작성해 보고, 비행기표 예매부터 숙소 예약, 본인이 정한 숙소에서 관광지까지 찾아가는 방법(실제로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지 실존하는 해당 버스 번호 및 지하철 호선까지 구체적으로), 그 도시의 맛집 검색 등, 실제 자유여행계획을 짜듯이 프로젝트에 임하도록 했다.


돈 많이 벌어서 이코노미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으로 예매를 할 것이라며 비즈니스석 비행기표를 찾는 학생,

무조건 별 다섯 개 5성급 호텔에서 묵을 것이라며 가장 유명한 5성급 호텔을 찾는 학생,

자기들이 환전해 가는 금액에 맞는 합리적인 숙소를 고르자며 이것저것 따져가며 중재를 하는 학생.  


회의를 하는 학생들은 사뭇 진지하고, 들떠있다. 누가 보면 정말 몇 달 후에 자기들끼리 해외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처럼 말이다.




이때 교사인 나 역시 매우 바쁘게 움직이게 된다.


나는 모둠을 수시로 돌아다니며 의견 조율이 잘 되고 있는지를 비롯하여 단순히 여행계획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이 우리가 배워야 할 교과서의 내용과 잘 연관 지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도움을 준다.


학생들이 먼저 주체가 된 활동이 선행되면, 교사가 주제와 관련하여 꼭 놓치면 안 되는 주요 문법사항이라든지 어려운 회화문장을 설명하게 되더라도 학생들은 지루해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충분한 동기유발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업 중에 학생들은 무작정 교과서 본문을 배우고 단어와 문장을 암기하고 문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먼저 접근하고 (여권발급, 입국심사서 작성, 비행기표 예매 등) , 궁금증이 생긴 부분에 대해 교과서 내용과 연계하여 본인이 먼저 탐색하고 알아본다. 그 후 마지막에 교과서 내용을 확인하며 교사의 설명을 듣는다. 교과서 , 후 일상이 아니라  일상, 후 교과서 가 되니 학생들의 관심과 집중도는 저절로 올라간다.


프로젝트 수업과 관련한 책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당신은 교사로서 여전히 교과 내용의 전문가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수업에서 교사에게는 그 이상이 요구된다. 당신은 프로젝트 공동 관리자, 조력자, 코치, 치어리더, 때로는 스트레스나 문제 상황의 해결에 필요한 상담자나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야 한다.

- <처음시작하는 PBL> 중에서


주어진 교과서 내용만 가르치고 끝나는 것도 사실 벅차다. 그렇기에 그 이상의 상황을 준비하고 자료를 준비하고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은 참 쉽지 않다. 거기다 교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관리자, 조력자, 코치, 치어리더, 심지어 상담자까지 되어야 한다니.


나는 절대로 '이 모든 역할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 잘 해내야지!' 하고 완벽한 교사의 표본이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무대 위에서 학생들이 본인들을 잘 뽐낼 수 있도록 프로젝트라는 큰 무대를 잘 만들어서 제공해 줬을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나에게 요구되었던 그 모든 역할들을 자연스럽게 하나하나 해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성장뿐만 아니라 교사인 나의 성장도 덤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복직 후 오랜만에 다시 진행하게 될 프로젝트 수업에서는 기존에 진행했던 여행프로젝트 방식에서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상황들을 설정하여 학생들이 더욱 상황에 잘 이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학생들이 주체적인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학습지는 필수이기에 학습지의 재검토 및 수정도 이루어져 업그레이드된 여행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한다.


그리고 최종목표, 이 수업과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중국어'만' 잘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토록 학생들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구상하고 또 구상했던 것은 학생들이 실제적인 문제해결능력을 키웠으면 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으로 학생들이 다른 교과, 혹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본인들이 주체가 된 문제해결능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부모나 다른 누군가가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회피하지 않고 직접 주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 그 모든 상황에서 자신을 믿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것, 그것이 수업의 최종 목표이다.  





여행 프로젝트 수업을 처음으로 진행했던 해, 졸업 즈음에 한 학생에게 편지를 받았다.


1년간 진행했던 프로젝트 수업에서 "중국 샤먼"이라는 도시를 선정해 여행프로젝트를 진행했던 학생이었다. 편지 내용 중에 이 부분이 내 마음을 울렸다.


선생님 덕분에 이번에 샤먼으로 가족여행 가게 됐어요! 중국은 별로일 거라는 생각에 항상 괌이나 호주나 유럽쪽으로만 있다 와서 아쉬웠는데 중국에 가보게 돼서 너무 좋아요! 중국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편지를 나에게 건네주며, 1년 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 수업 여행준비 과정대로 본인이 직접 이번 가족여행의 여행가이드가 될 거라며 한껏 들떠있던 그 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교과서에서 멈추지 않는 배움,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 세상 밖으로 이어지는 배움.


내가 생각한 배움의 의미를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실천해가고 있는 것 같아서 뭉클하고 또 감사했다.




이러니 어찌 프로젝트수업을 멈출 수 있겠는가. 단 한 명이라도 삶으로 연계된 배움을 실천하는 학생이 나온다면 관리자, 조력자, 코치, 치어리더, 상담자 그 외 수많은 역할들을 다 수행해야 한다 할지라도 나는 또 프로젝트 수업을 준비할 것이다.

이전 05화 <수업> 배움은 학교 밖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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