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불안감의 중간쯤
첫 홀 드라이버 티샷을 위해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서 넓고 푸른 페어웨이를 쳐다본다. 그림같이 펼쳐진 푸른 잔디를 보고 있노라면 상쾌한 기분이 듦과 동시에 오늘은 기필코 시작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살짝 밀려온다. 티 위에 공을 얹어 바닥에 꽂고 두 걸음 뒤로 와서 탄착 지점에 공이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가볍게 연습 스윙을 하고 나서 볼 앞에 선다. 숨을 길게 내뱉은 후에 다시 한번 탄착 지점을 보고 나서 마침내 스윙을 시작한다.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힘이 들어간 스윙에 나의 공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저 넓은 페어웨이를 놔두고 슬라이스가 나서 OB 구역으로 날아가고야 만다.
지금껏 그랬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대기업에 입사할 때까지 항상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게 하면 늘 마지막에는 나름대로 괜찮은 결실이 있었기에, 과정은 힘이 들었지만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면 마지막엔 결국에는 그런대로 잘 풀리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뭐든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고, 그래서 무언가 이루지 못한 사람을 보면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은 아마 이때부터 조금씩 무너졌던 것 같다. 세상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맘 같지 않은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결혼을 하였고 늦은 만큼 빨리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조급함을 키웠을 것이다. 결혼 이후에 생각보다 빨리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얼마든지 해결될 문제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와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몸에 좋은 것을 챙겨 먹고, 좋다는 병원에 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운동도 하며 살도 빼고, 좋다는 한약도 지어먹어 보았지만 그 결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급함은 점점 커져만 갔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데, 나에게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는 것이 아주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는 아주 어렵고 평범하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1년 가까이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는 마지막으로 병원을 다시 찾아 방법을 물어보게 되었다. 이렇게 임신이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원인이라도 명확히 알았으면 좋겠으나 의학적으로 문제는 없다는 없다는 말에 안도감도 있었지만 오히려 답답함은 커져만 갔다. 요즘은 여러 가지 환경적인 탓에 난임이 매우 흔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가임 부부의 15% 정도 난임이며 이는 결혼한 부부 7쌍 중 1쌍이라는 말로, 실로 적지 않은 비율이다. 이에 최근에는 다양한 난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였고, 의사의 권고를 받아 한 가지 방법을 시도하게 되었다.
다행히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으며, 와이프는 곧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둘이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결실인 것일까, 이렇게 나의 아니 우리 부부의 노력은 점점 결실을 맺는 듯 보였다. 그것도 두배로. 오랫동안 기다려온 임신 소식을 양가에 전하고 태명부터 지었다. 산부인과를 찾아가 심장박동 소리도 정상적으로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잘 보이진 않지만 어렴풋이 아기의 형체도 보이는 것 같았다. 어렵게 찾아온 아기인 만큼 잘 키우기 위하여 태교도 잘하기로 굳게 마음먹고 쌍둥이 용품들도 찾아보았다.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니 주변에 쌍둥이들이 꽤 많이 있었다. 최근 방송에서는 모연예인의 세 쌍둥이가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세 쌍둥이 모두 건강하게 잘 태어나서 자라는 방송을 보며, 쌍둥이 출산 및 육아에 대해서도 알아보며 부모가 될 부품 꿈을 꾸며 출산을 기다리기로 했다.
임신을 확인하고 두 번째 산부인과를 방문하는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분명히 두 명의 심장 소리가 들렸는데 하나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행히 한 아기는 아무런 문제 없이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었지만, 다른 아기는 중도 유산이 된 것이다. 임신 초기라 이런 경우 별도의 수술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심장이 멈춘 아이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얼마 전 연예인 부부의 유산 소식을 인터넷 기사로 본 적이 있다. 난임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뱃속에서 거의 10개월 가까이 애지중지 키웠으나 출산을 얼마 남기지 않고 아이를 떠나보낸 것이다. 그 비통한 심정을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상당히 가슴이 아팠다. 얼마나 기다렸던 아이인데 뱃속에서 세상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한 채 보내야 하는 부모의 슬픔은 이루 말하지 못할 것이다.
쌍둥이 육아 용품은 이제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슬퍼만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 뱃속에 있는 남은 아기는 잘 자라야 하기에 슬픔은 얼른 떨쳐내야만 했다. 아기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닌 것이었다. 열심히 노력을 한다고 반드시 모두 잘 되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힘을 줘서 스윙한 드라이버는 실수를 유발한다. 잘해보고자 그립을 꽉 쥐 거나 스윙 과정에 힘이 들어가면 당겨 치거나 덮어 치기 쉽다. 열심히 잘해보고자 힘을 주지만 오히려 미스샷을 하는 것이다. 골프든 인생이든 참 마음먹은 대로 안될 때가 많다. 잘해보겠다고 너무 힘을 주지는 말아야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