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나는 피아노를 내려놓았다

내가 왜 피아노를 그만뒀냐면 마지막편

학과장님은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으라고 권유했다. 난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소파에 앉았다.


"슬희야, 음악강사 할 생각 있니?"


갑작스러운 학과장님의 제안에 난 얼어붙고 말았다. 학교에 출강하는 강사님들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들이었다. 그런데 대학교 졸업을 3개월 앞둔 나한테 음악강사를 하라고? 유학을 보내려고 하시나? 아니면 대학원?


학과장님은 말을 이었다.


"학교 근처에 장애인시설이 있어. 거기서 합창 강사를 구해달라고 부탁하더라고. 딱 슬희 네 생각이 났어. 아직도 봉사활동 하고 있지?"


잔뜩 들떠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사실 대학원생들한테 들어온 자리인데, 장애인을 가르친다고 하니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고. 너는 봉사활동 경험이 많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대학원생들도 못 하겠다는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문제부터 생각했다. 그리고 채은이가 떠올랐다.


채은이의 장애는 재능기부 수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종종 채은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잊기도 했다. 다른 장애인들도 채은이와 다르지 않겠다 싶었다.


난 말했다.


"해볼게요.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학과장님은 크게 기뻐하며 명함을 건네주셨다. 그런데 세상에. 익숙한 명함이었다. 내가 봉사하고 있는 바로 그 시설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온갖 걱정들이 물밀듯이 쏟아졌다. 채은이 정도면 양호하고, 이미 몇 번이고 얼굴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 나눴던 아이들, 나보다 나이 더 먹은 언니, 오빠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몸짓으로 이야기해 왔는데, 누가 노래를 할 수 있지? 어떻게 합창을 한다는 거지? 수업 커리큘럼은 또 어떻게 짜고? 자신있는 목소리로 해보겠다고 말한 게 조금 후회됐다.


시설 선생님께 전화드렸다.


"선생님, 저희 학과장님 통해서 합창강사 추천 요청하신 거요. 그거 제가 하게 됐어요."


시설 선생님은 그러네, 합창강사를 가까이 두고도 생각 못 했다고, 정말 반갑고 잘 부탁한다고 하셨다.


첫 수업 날, 긴장과 설렘,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자리에 앉았다. 누가 수업에 참여하는지는 미리 확인해두었다. 말을 전혀 할 수 없는 언니, 오빠들을 위해서 단순 발성연습을 워밍업으로 준비해 왔다. 모두가 좋아할 법한 신나는 노래로.


피아노에 손을 올리고 장애인 시설 이용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난 쌍둥이 지호와 지훈이는 몸이 강직돼서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음악적 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채은이는 높은 음도 잘 내고 산뜻한 목소리를 가졌다. 재훈 오빠는 낼 수 있는 소리라곤 '우어어, 우어어'뿐이지만 수화를 할 수 있었다. 상철 오빠도 말을 못 한다. 하지만 정확한 박자에 '우어어' 하고 노래할 수 있다. 희수와 희연이 남매는 강직 장애가 없어서 수업을 잘 따라올 것이다.


직접 얼굴을 둘러보고 나니 상상했을 때와는 다르게 각자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해졌다. 채은이와의 피아노 수업을 되새기며 힘차게 건반을 눌렀다.


우리는 '곰 세 마리'부터 불렀다.


곰 세 마리가 우어어 우어어

아빠곰 엄마곰 우어어

아빠곰은 우어어 엄마곰은 우어어

애기곰은 우어어 으쓱으쓱 우어어


아수라장이었다. 분명 익숙하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에, 묘하게 박자가 맞는 목소리들, 가사에 맞춰서 펼쳐지는 수화까지. 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나만 웃긴 게 아니었다. 내가 배를 잡고 웃는 동안 수업에 참여한 언니, 오빠, 동생들도 함께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내 질문에 노래를 가장 잘한 지호가 대답했다.


"노래 다 같이 해본 건 처음인데요, 이상하게 박자가 맞아요. 그게 신기하고, 우리 이런데 합창 가능한 거예요?"


자고로 합창이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조화롭게 섞여서 하나 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곰 세 마리'는 합창으로 볼 수 없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던 합창 수업에서는 조금만 음을 잘못 불러도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생님이다.


나는 '곰 세 마리'를 다시 한번 연주하며 한 명 한 명 짚어봤다. 우어어 소리밖에 못 내는 상철 오빠는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낼 수 있는 최선의 소리로 노래하고 있었고, 재훈 오빠는 가장 정확한 때에 정확한 수화로 노래했다. 채은이, 지호, 지훈, 희수, 희연이도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누군간 조화롭지 못하다고 할 노래가, 내 귀에는 환상의 합창으로 들렸다. 약간 거슬리는 우어어 박자만 티칭해야지….


두려움은 사라지고 즐거움만 남았다. 집중이 짧은 아이들과 언니, 오빠들을 위해서 나는 손짓 몸짓을 하며 광대처럼 수업했다. 내가 벌떡 일어나서 몸을 활짝 열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배꼽 잡고 눈물 나올 때까지 웃었다.


그렇게 수업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시설 연말 행사 무대에 섰다. 잔잔한 곡부터 신나는 앵콜곡까지. 무대가 끝나자 엄청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들은 내 손을 꼭 붙잡고 어떻게 아이들이 이렇게 노래를 부르냐며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고, 덕분에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시간이 더 지나자, 우리는 꽤 유명해져서 지역 행사 초청무대도 섰고, 대회에 나가 상도 여러 번 받았다. 시설 선생님들은 이런 결과에 욕심이 났는지 밴드도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물론 못할 건 없지.




장애인시설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동안, 난 아동청소년복지시설에서도 재능기부로 합창을 가르치고 있었다. 어릴 적 했던 합창단 경험만 믿고 덜컥 20여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한 것이다.


내 수업에는 어린 홍슬희가 몇 명이나 있을까? 11살 홍슬희 어린이 합창단원은 관심을 끌려고 수업 시간 동안 온갖 짓을 다 했다. 돌아다니기도 하고 노래 가사를 바꿔 부르고 앞자리 친구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지휘자 선생님은 그런 홍슬희를 혼내기도 하고 어르기도 했지만 결국 머리를 짚고 고개를 떨구셨다. 나도 선생님 처럼 아이들을 혼내고 어르다가 고개를 떨굴까? 그런데 의외로 아이들은 딴짓에 집중하기 보다는 수업에 열중했다. 내가 선생님들을 힘들게 했던 기억 때문에 지레 겁먹었던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다가도 피아노 반주가 시작 되면 귀를 반짝 열고 한껏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아동청소년복지시설 선생님이 집에 가려던 날 멈춰 세웠다.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선생님은 지역아동센터 지원단에서 특기적성강사를 모집하니 지원해 보라고 하셨다. 그동안 사례비 없이 매주 합창 수업을 해주는 내가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러니 꼭 지원해보라고,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을 계속 가르쳐달라고, 이제 돈 받으면서 수업해달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재능기부 봉사 이력으로 특기적성 강사 지원서를 냈다. 서류 합격하고, 생각보다 딱딱한 분위기의 면접도 봤다. 결과는 합격. 이듬해 봄부터 개인레슨을 다 정리하고 경기 남부권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를 돌아다니며 특기적성 강사로 활동했다.




2년간의 특기적성 강사 생활은 짜릿했다. 나로 인해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지켜보고 변화한 아이들이 어떤 성취를 일궈내는 지도 지켜봤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25살 겨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아야 할 때가 왔음을 온몸으로 직감했다.


나는 고민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4살 때부터 꿈꿔온 피아니스트를 포기해야 할지. 20년을 간직해왔던 꿈, 들인 시간, 노력, 돈, 부모님의 헌신을 한 순간에 버리긴 힘들었다. 역시 홍슬희는 피아노를 쳐야겠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피아노와 아이들을 놓고 저울질을 했다.


그렇게 새벽 5시, 잠시 졸다 깨어났을 때 문득 시설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재영이는 평소 다른 수업에선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 하는 아이인데 선생님 수업에선 열심히 참여해서 너무 신기해요.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이 변하고 있어요."


재영이는 첫 수업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지적만 세 번을 받고 쫓겨난 아이였다. 지금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합창 수업에 참여했다. 확신이 생겼다.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아도 괜찮겠구나, 당장 홍슬희가 치는 피아노보다 재영이가 친구들과 함께 노래 부르는 게 더 가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날 아침, 나는 나를 가장 빛나게 해주던, 내 세상의 전부였던 피아노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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