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함께한 브라스 밴드
피아노를 내려두고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결심한 뒤, 난 강사 생활 하던 시설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 사회복지 대학원에 진학했다. 낮엔 경기 남부권을 돌아다니며 음악수업을 하고 저녁엔 대학원으로 가 사회복지 공부를 했다. 그렇게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시설 선생님께서 전화하셨다. 아이들이 성인이 됐는데 졸업생 음악모임을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화기 너머에서 반가운 이름들이 튀어나왔다. 대학생 시절 처음으로 간 봉사에서 만난 아이들과 수업하며 만난 아이들의 이름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어른이 된 아이들을 보게 되다니.
난 고민도 않고 하겠다고 했다. 다만 아이들이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다. 시설 행사 같은 작은 무대라도 내가 직접 무대에 설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첫 모임을 간 날, 얼굴은 그대로인 채 몸집만 자란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만나 어색하기도 했지만 곧 가볍게 웃으며 농담을 나눴다. 모임을 끝내곤 근처 호프집으로 장소를 옮겨 뒤풀이를 열었다. 우리는 “쌤이랑 술 마실 줄은 몰랐어요”, “나도 그래. 언제 이렇게 컸냐. 쌤이랑 술도 다 마시고”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한껏 오른 나는 너무 신이 나버렸다.
“쌤이 악보 준비 다 할게. 곡만 골라! 해외 사이트를 뒤져서라도 우리가 연주할 악보를 찾아내겠어!”
다음 날 아침, 나는 여전히 흥에 취한 채 음악 전문 서점으로 향했다. 플룻, 클라리넷, 호른, 트럼펫, 트롬본 그리고 피아노. 우리 밴드가 연주할 악기들이었다. 나는 피아노 악보 코너를 지나쳐 관악, 앙상블 코너로 향했다. 맙소사. 서점엔 이 구성을 갖춘 악보가 없었다. 다급히 인터넷을 켜서 해외 서점 사이트를 뒤져봐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던 찰나, 서점 배경 음악이 들렸다. 내 귀는 자연스럽게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음을 쫓고 있었다. ‘아! 나 절대음감이지!’ 평생 어디에 써먹나 하던 재능이 드디어 제 할 일을 찾았다.
난 ‘악기론’ 책을 뒤지며 밴드 구성원들의 악기 특성을 공부하고, 온라인 강의를 보며 악보 만드는 프로그램 사용법을 익혔다. 어느 정도 악기와 프로그램 사용에 익숙해진 뒤에는 첫 모임에서 정한 연주곡을 귀로 듣고 우리 구성에 맞게끔 편곡을 했다. 플룻과 클라리넷은 멜로디를 오가고, 트롬본은 ‘뿜-빠-’ 거리며 베이스라인을 지켰다. 악보 프로그램에서 밤새워가며 만든 악보를 재생해보니 꽤 그럴싸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첫 합주 날, 악보를 살펴보던 멤버들이 곳곳에서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냐 하니, 연주가 불가능하댄다. ‘여기는 소리가 안 나요’, ‘여기는 불가능한 도약이에요’ 내가 멤버들에게 요구한 건 손 세 개로 악기를 연주하란 격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건 멤버들에게 먼저 묻지 않고 무작정 악보를 만든 내 탓이었다. 난 우선 파트별로 멤버를 나눴다. 그리고 각 파트원들에게 악보를 보여주며 어디가 문제고 어디를 살리고 어디를 죽일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쌤, 이 음은 쓸 수는 있지만 자주 쓰는 음이 아니에요.', '쌤, 여기 패시지는 한 손에 연주하기 어려워요'. 난 멤버들의 말을 악보에 받아 적으면서 혼자가 익숙했던 내 음악 세계가 어떤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해. 이거 쌤이 집에 가서 다음 모임 때까지 고쳐볼게"
그때 현우가 말했다.
"쌤, 같이 해요. 우리가 알려줄게요"
혼자 하던 음악이 함께 하는 음악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악보가 완성되고 우리는 저녁마다 모여 연습했다. 트로트 한 곡, 동요 한 곡, 클래식 한 곡. 연말에는 작은 강당을 빌려 이웃들과 시설 아이들을 초대해 첫 공연을 했다. 전문 공연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대 단상도 없고 조명도 없었다. 하지만 내 곁엔 든든한 멤버들이 있었다.
내가 하던 피아노는 골방에 틀어 박혀 혼자 씨름하며 만들어가던 음악이었다. 무대에서 연주할 땐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연주해야 했고, 관객들은 작은 숨 소리도 안 내며 나에게 집중해야 했다. 하지만, 이 작은 강당에서, 멤버들과 함께 하는 음악은 달랐다. 서로를 믿고 함께 즐기는 것 그뿐이었다. 게다가 기막힌 선곡으로 관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연주 사이에 환호하는 관객들, 신나서 옆으로 나와 춤 추는 아이들, 박수 치며 함께 따라 부르는 노랫소리까지. 클래식을 할 땐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이 소란한 관객들이 싫지 않았다.
공연을 마친 뒤, 한구석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한 제자가 슬쩍 찾아왔다.
“저도 고등학교 졸업하면 거기 들어갈 수 있어요?”
제자의 질문은 날 기쁘게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음악을 하려고 모인 멤버들이, 학업과 일로 바쁘면서도 저녁이면 연주를 준비하는 멤버들이 나는 참 자랑스러웠다. 덕분에 나도 음악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을 선택한 뒤, 더는 무대에 설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나의 무대가 되어줬다. 나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야겠다 싶었다.
“당연하지!”
제자에게 대답한 뒤 고개를 돌려 한창 무대에서 연주 중인 어린 아이들을 봤다.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가득했고 최선을 다해 연주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연주 중간 악기를 내리고 가족에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강당엔 사람들의 웃음이 가득했고 연주를 마친 아이들의 얼굴엔 ‘잘 해냈다’라는 뿌듯함이 뿜어져 나왔다. '너흰 우리 팀 예비 멤버다.' 앞으로 우리 팀이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생각에, 나도 연주를 계속할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