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회사 문을 열고 나선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마스크 때문이었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갑갑함이 온 몸을 감쌌다.
당시 난 코로나로 음악 활동이 끊어졌고 회사에서도 어려운 일들이 연속적으로 닥쳤다. 숨을 쉬어보려고 했지만 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코와 입 끝엔 얕은 숨만 가늘게 붙어있었다. '지금 힘든 일들이 닥쳐서 그런 거야,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라고 다독이며 힘겹게 집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자 온갖 잡념이 뒤엉켜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퇴근하기 전에 들었던 상사의 날카로운 말들도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명상 수행하는 스님처럼 생각을 지워보려고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에도 난 여전히 얕은 숨만 헐떡였고 스스로 숨을 쉬지 않는 지경까지 갔다. 놀란 마음에 휘적휘적 일어나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난 어릴 때부터 이유 모를 두통과 구역감, 지독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성인이 되어선 툭하면 길에서 쓰러졌다. 대학병원 의사도 이유를 몰랐다. 난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자, 난 신체적인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임을 직감했다. 여태껏 숨을 쉬지 못하는 일이 없었고, 몸에서 특별한 징후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평소보다 심장이 빨리 뛴다는 것 정도.
의식하지 않으면 숨 쉬는 걸 자꾸 잊어버리는 내 모습에, ‘이러다 숨 막혀 죽겠구나’하는 두려움에 빠져 곧바로 병원을 예약했다.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듣곤 몇 가지 검사지를 건네줬다. 검사지에 수록된 질문에 답변을 채워 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전의 나였다면 고민도 없이 '아니오'에 체크했을 질문들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모든 질문이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아서 버틸 수가 없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린 뒤에 상담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환자용 푹신한 쇼파는 나를 바닥으로 더 끌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혹시 최근에 큰 일을 겪었나요?"
머리 속엔 내게 벌어진 일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나는 눈물이 쏟아져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익숙한 듯 휴지를 건넸다.
"지금 불안과 우울감이 상당히 높아요. 슬희님이 겪고 있는 증상은 전형적인 공황장애예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옷을 걸어둘 힘조차 없어서 신디사이저 피아노 위에 툭 걸쳐두었다. 거실로 나와 물을 마시는데 똥과 오줌에 더러워진 강아지, 고양이 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5분이면 치울 텐데, 그래야 우리 팡이가 패드에 볼일을 볼 텐데... 하지만 나는 그 5분을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간신히 물과 밥만 챙겨준 뒤에 침대로 향했다. 불안과 우울 위에 죄책감까지 더해졌다.
우울과 공황장애 증상이 짙어질 수록 나는 끝없는 수렁으로 굴러떨어졌다. 싱크대엔 언제 먹었는지 모를 음식 찌꺼기가 눌어붙은 그릇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집안 바닥엔 아무렇게나 벗어둔 옷가지와 쓰레기, 둥그렇게 뭉쳐진 반려동물들의 털들이 가득했다.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안타까워 하며 내가 집을 비웠을 때 몰래 찾아와 종종 대청소를 해주었다. 물론 깨끗한 상태는 며칠 가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무대에 올라 피아노를 치던 나, 제자들과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하던 나, 지난날들이 모두 허상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난 속이 텅 빈 채 썩어버린, 더 이상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죽은 나무가 된 것 같았다.
밖에선 지독히 무너진 나를,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은 나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시답잖은 이야기도 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친구들도 만났다. 하지만 입에 진득한 풀을 발라놓은 듯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았고, 시시콜콜한 농담에도 희미한 미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붙잡고 수다를 떨던 카톡에서조차 난 침묵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예전의 내가 없어진 걸 쉽게 눈치챘다. 그 밝던 애가 왜 이렇게 조용하냐고, 꼭 무슨 일이 생긴 사람 같다고 말했다. 난 숨기고만 싶은 막막한 내 상태를 들킨 것 같아서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와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문득 신디사이저 피아노가 생각났다. 피아노라면 날 일으켜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난 벌떡 일어나서 피아노가 있는 옷방으로 갔다. 피아노는 옷무덤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양팔로 옷들을 한 번에 감싸 들어 바닥에 던졌다. 옷더미에 가려져 있던 신디사이저 피아노에는 먼지가 가라앉아 있지 않았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울적할 때도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고 달래주던 피아노다웠다.
난 마음이 울적해 실컷 울고 싶은 날이면 스크리아빈을 쳤다. 이번에도 그러길 간절히 바라며 악보를 펼치고 손을 올려 건반을 눌렀다. 참담했다. 클래식 피아노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돼 손가락은 그 어떤 음도 제대로 칠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있었다. 더듬더듬 힘겹게 건반을 찾아 움직이는 손가락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는 이제 끝났어. 음악도, 네 인생도.'
한참을 울다가 옷방 가장 깊숙한 곳으로 피아노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바닥에 던져둔 옷을 그 위에 쌓아 올리며 생각했다.
‘배신자. 내 손가락이 엉망이 됐어도 넌 내 마음을 위로해 줬어야지.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붙잡아줬어야지!’
그때 옷 사이로 ‘나 아직 여기 있다’며 삐죽 튀어나온 하얀 건반이 보였다. 이젠 더 이상 내게 힘도, 위로도 안 될 그냥 플라스틱 덩어리일 뿐이었다. 난 바닥에 있던 양말 한 짝을 들어 마지막 건반을 덮었다. 피아노는 더 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쓸쓸한 무덤으로 변했다.
음악이 끝났다. 이제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 피아노는 필요 없었다. 나는 거실 바닥에 나뒹구는 살림과 쓰레기들을 발로 밀어내며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침대로 향했다. 침대는 피아노가 배신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듯이 나를 감싸안으며 더욱 깊은 수렁으로 끌고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