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쮸리, 이 피아노 어때?”
집사람이 뜬금없이 보낸 당근마켓 링크를 보고는, 그 링크 속에 정말 말도 안 되는, 듣도보도 못 한 브랜드의 7만 원쯤 되는, 낡은 디지털피아노를 보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랬을까, 그 말도 안 되는 피아노를 보자마자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단 의욕이 마구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나 피아노 치고 싶어졌어. 디지털 피아노 살래! 근데 오빠가 보내준 건 싫어. 너무 구려. 다른 거 찾아볼 거야”
집사람은 잔뜩 신난 채 디지털 피아노 판매 사이트를 뒤져보는 내 옆에 앉았다. 내가 보고 있던 디지털 피아노는 어쿠스틱 피아노 건반 움직임을 그대로 구현해 터치감도 실제에 가깝다는 최신형이었다. 스크롤을 내려본 나는 깜짝 놀라 입이 절로 벌어졌다. 가격이 700만 원이 넘다니. 아픈 강아지, 고양이 병원비로 쌓인 카드값을 갚느라 생활비조차 부족했던 내겐 모아둔 돈이 없었다. 미련을 뚝뚝 흘리며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고 있던 내게 집사람이 말을 건넸다.
“쮸리, 그냥 당근에서 중고로 막 칠 거 사자. 그리고 좋은 피아노가 있는 연습실에 한 번씩 다니면 되지.”
선택지가 없던 난 집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근마켓을 뒤지기 전,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급은 25일에 들어오고, 월세랑 카드값은 말일에 나가니까... 그 사이 20만 원은 쓸 수 있겠다.’
30대 후반에 전 재산이 20만 원뿐이라니. 난 고개를 슬쩍 돌려 집사람을 쳐다봤다. 다행히 내 통장 잔고는 못 본 것 같았다. 마음을 비집고 나오려는 자괴감을 애써 누르며 집사람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꺼냈다.
“오빠가 보내준 7만 원짜리는 살만한 게 못 돼. 클래식 피아노 치려면 88개 건반이 다 있어야 하거든. 근데 그건 64개밖에 안 되더라고. 다시 생각해도 구려. 그냥 한 20만 원짜리 살까 봐.”
집사람은 70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낮춘 내 기준에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엄청난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쮸리! 잘 생각했어! 20만 원?? 오빠가 우리 쮸리 피아노 꼭 같이 찾아줄게!”
마치 영화 속 비밀 결사 조직원이 사람들 앞에서 대의를 약속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결의에 찬 모습. 난 차마 대놓고 웃을 수가 없었다. 난 한 손으로 이마를 받쳐 고개를 숙인 채 들썩이는 어깨를 애써 내리며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내 피아노를 꼭 찾아주겠다던 집사람의 결의는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피아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집사람이 보내준 당근 링크들 속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피아노들뿐이었다. 계속된 나의 퇴짜에 집사람은 “쮸리가 칠 거니까 쮸리가 찾는 게 맞는 것 같아. 오빠는 더 이상 못 찾겠어”라며 백기를 들었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는지 내 방 침대와 화장대, 캣타워를 옮겨가며 디지털 피아노 자리를 미리 잡아뒀다.
그 사이 난 나름 세운 기준을 생각하며 당근마켓을 뒤졌다.
‘중고라도 터치감이나 소리가 예상되는 수준의 브랜드로 가려면 야마하 정도는 돼야 해. 신디사이저나 스테이지 키보드는 너무 가벼우니까 콘솔형이어야 하고. 보기에도 좋게 유광이었으면 좋겠어’
당근마켓엔 콘솔형 야마하 디지털 피아노가 넘쳐났다. 하지만 예산을 맞추자니 죄다 10년은 가까이 돼서 어디가 고장 났을지 예상도 안 되는 피아노뿐이었다. 지역을 바꿔가며 뒤져보던 찰나, 5년 좀 안 된, 유광 콘솔형 야마하 디지털 피아노를 찾아냈다. 내가 세운 기준에 가장 맞는 피아노였다. 하지만 거래 가격이 맞지 않았다. 판매자가 올린 가격은 내 전 재산의 딱 두 배, 40만 원이었다.
난 한참을 고민하다 집사람에게 링크를 보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의 피아노를 찾았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비싸네...”
소설을 쓴다고 일을 그만둔 지 오래된 집사람에게, 나보다 9살이나 어린 집사람(애칭이 오빠다)에게 차마 ‘돈 좀 빌려줄 수 있어?’라는 말은 도저히 꺼낼 수가 없었다.
집사람은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내게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오빠가 빌려줄게. 그걸로 피아노 사자. 판매자한테 산다고 바로 말해!”
내심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난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집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판매자와 약속을 잡으니 집에 피아노가 온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난 창고에서 악보를 꺼내 책꽂이에 하나하나 꽂으며 피아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다음날 회사에 반차를 쓰고 집사람과 함께 쏟아지는 비를 뚫고 판매자 집으로 달려갔다. 판매자 집에서 피아노를 시연해보니 ‘아, 제대로 잘 골랐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판매자의 도움을 받아 차에 피아노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서 집까지 집사람과 낑낑대며 피아노를 옮기는데 어찌나 설레는지 웃음이 자꾸 실실 새어 나왔다.
피아노를 집에 옮겨다 놓은 후 바로 출근한 나는 머릿속에 온통 피아노 생각뿐이었다. 우울과 공황장애가 찾아온 지 몇 년 만에 모처럼 회사에서 마음이 편했다.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한 번씩 내 귀를 찌르며 마음 깊은 데까지 파고들던 상사의 날카로운 말조차 한 귀로 흘려 보내기 바빴다.
‘뭘 쳐보지? 입시곡은 몸이 기억하니까 입시곡으로 당분간 손을 풀어볼까? 아, 브람스 파가니니도 치고 싶었어. 아니면 반성하는 마음으로 하농이랑 체르니를 좀 칠까? 아냐. 하농이랑 체르니 칠 시간이 어딨어? 쳐보고 싶던 베토벤이랑 스크리아빈부터 쳐볼 거야!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피아노 치고 싶다.’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퇴근하자마자 외출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전원을 켜고 천천히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쳐봤다. 음색도, 터치감도 내가 원하던 수준이었다. 난 창고에서 꺼낸 지 얼마 안 돼 아직 먼지가 앉아 있는 악보들을 가만히 살펴보다 그토록 다시 치고 싶었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악보를 꺼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 1년 전, 내가 피아노를 치고 싶어 했다는 걸 집사람 입을 통해 알게 됐을 때 쳐봤던 곡이었다. 그때 잠시 용기를 내봤지만, 엉성한 손가락이 참 수치스러워서 금방 접었었다.
그때처럼 내 손을 탓할 순 없었다. 내 마음과 생활은 이미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고 또 한 번 도망칠 곳 없는 구석으로 날 몰아넣을 순 없었다. 그때의 난 신디사이저 피아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도망쳤다.
이번엔 견뎌내고 싶었다. 아니, 이겨내고 싶었다. 우울과 공황장애는 5년 동안 나를 짓누른 채 끝도 없이 수렁으로 끌고 내려갔다. 다행히 집사람의 다정한 침범과 돌봄으로 조금씩 수렁 밖으로 나오곤 있었지만, 그건 내 의지와 내 노력이 아니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난 마음을 가다듬고 가만히 악보를 쳐다보다가 건반에 손을 올렸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피아노를 사랑했지만,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삶을 선택하며 평생 쳐왔던 피아노를 포기했다. 다행히 제자들과 친구들과 음악 모임을 만들어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간신히 이어가던 음악 활동이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한 뒤 입사했던 회사에서마저 어려운 일들을 겪었다.
참 힘든 시간들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돌고 돌아 내 피아노와 다시 마주한 순간이자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난 악보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은 나뭇가지처럼 뻣뻣해져서 겨우 두 마디도 넘기기 힘들었다.
가장 급한 건 엉망이 된 손을 다시 돌려놓는 것이었다. 현실을 부정할 시간도 아까웠다. ‘어쩌겠어? 내가 버려버린 피아노인걸. 다시 주워 담아야지’ 하고 굳은 다짐을 하며 매일 퇴근하자마자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난 쳐보고 싶었던 곡들도 치고, 굳어버린 손가락의 감각을 되살리는 지루하고 단조로운 연습도 했다. 4살부터 대학 졸업까지 20년 동안 피아노를 쳤던 게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었는지 손의 감각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써도 쳐지지 않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도 뚱땅거리긴 했지만 즐길 수 있는 정도로는 칠 수 있게 됐다.
매일 나아지는 내 모습을 보는 건 중독적이었다. 난 매일 같이 마시던 혼술을 단번에 끊고 피아노에만 매달렸다. 연습을 다 하고 침대에 누우면, 다음 날 퇴근 후에 할 연습이 너무 기대돼서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였다. 집사람은 그런 날 보며 “쮸리, 나랑도 놀아 줘~ 오빠 심심해”라고 말하곤 했지만, 그 누구보다 내 변화를 가장 기뻐해 줬다.
손가락에 생명이 다시 깃들기 시작했다. 생명이 다시 깃든 건 손가락뿐만이 아니었다. 느리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손을 보며 내 마음에 ‘나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겠다’라는 희망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나는 불현듯 무대에 다시 서고 싶단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