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이면 손가락이 굴러갈 줄 알았지

무대에 서고 싶단 생각을 하던 내게, 때마침 사촌 동생이 연락을 해왔다.


“언니, 나 요즘 소모임 어플로 피아노 동호회에 나가. 언니도 동네에서 하는 거 찾아서 활동해 봐. 정기연주회도 하고 연습 모임도 있더라. 언니가 좋아할 것 같아”


나는 사촌 동생이 알려준 어플에서 피아노 동호회를 찾아보았다. 음악 감상 동호회, 앙상블 동호회, 클래식 동호회, 피아노 연주 동호회….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다시 피아노]

- 취미생들의 피아노 연주 & 감상 모임

- 실력, 장르, 나이 무관

- 3개월마다 정기연주회, 수시로 소모임

- 피아노를 좋아하고 연주에 귀 기울이는 사람,

다른 악기 연주자, 감상자 모두 환영



가만히 동호회 소개 글을 곱씹었다.


‘실력 무관, 3개월마다 정기연주회,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 환영’


좋네. 14년 만에 다시 클래식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내게 실력도 안 보는, 취미생들이 모인 동호회는 부담 없이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오래 쉬었다지만 취미생들 보단 잘 치겠지.’


이런 오만한 생각까지 해버렸다.


난 가볍게 피아노 동호회 가입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가입 인사를 작성하자마자 사촌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가 혹시 ‘옹옹’이야? 거기 우리 동호회야!”


사촌 동생은 내가 가입한 동호회가 자기가 활동하는 동호회라며 깔깔댔다. 아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사촌 동생은 내가 동호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새 연습 모임을 열어줬다. 사촌 동생의 설명을 들어보니 연습 모임은 피아노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난 곡 두 개를 준비하기로 했다.


화려함의 극치인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와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악명 높은 쇼팽 에튀드 작품 번호 25의 6번, 일명 ‘3도’. 이 두 곡이면 사람들 앞에서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으스댈 수 있을 것 같았다. 피아노에 앉아 손을 굴려보니 그럴싸하게 굴러갔다. 난 만족하며 연습 모임 날만 기다렸다.




첫 연습모임 날, 난 모처럼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이수역 근처 소규모 피아노 홀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올 지, 어떤 곡을 칠 지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걱정은 안 됐다. 난 전공자고 취미생들은 듣기만 해도 ‘우와’ 소리 낼 곡을 골랐으니까.


모임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잠깐 기다리니 작은 연주 홀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직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던 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불편해서 어색한 인사만 나눈 채 침묵을 지켰다. 사촌 동생은 시간이 다 되어 들어왔다.


사촌 동생은 참석자 목록을 확인한 뒤, 모임을 진행했다. 대관 시간을 인원수에 맞춰 나누고 사다리 게임으로 피아노 칠 순서를 정했다. 가만히 전체 진행 내용을 들어보니, 내가 상상했던 단순한 연습 모임이 아니었다. 사실상 연주 모임이었다.


“A 님은 3번, B 님은 4번, 그리고 슬희님은 5번입니다.”


다섯 번째였다. 내 순서를 확인하자마자 긴장되기 시작했다. 심장은 귀에 들릴 정도로 쿵쿵 대고, 손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손바닥엔 땀방울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샘솟았다. 대학 시절, 무대 뒤에서 내 연주 차례를 기다릴 땐 경험하지 못했던 극도의 긴장감이었다. 난 벌벌 떨리는 모습을 애써 감추며 첫 무대를 오르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냈다.


첫 번째 연주자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걸 보고 나는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취미생이라고 해서 뉴에이지나 영화나 드라마의 OST 같은 곡들을 칠 줄 알았는데, 첫 번째 연주자는 나도 어렵다고 생각했던 클래식 곡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연주했다. 어떤 곡이었는지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나처럼 전공을 숨긴 채 모임에 참석한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연주자가 연주를 시작했을 때, 난 당황스러웠다. 두 번째 연주자는 어렵고 난해한 클래식 곡임에도 듣는 사람까지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연주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취미생 모임이라며?’


나는 고개를 돌려 객석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손엔 클래식 악보가 들려있었고, 펼쳐진 악보 페이지에는 색색깔로 중요한 부분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연주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은 진지했고 나처럼 오만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던 오만방자한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 내 차례였다. 14년만에 사람들 앞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치는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지만 난 좀처럼 즐길 수가 없었다. 그토록 무대를 좋아했고, 대학 무대를 독차지 하던 내가, 지금은 떨리는 손과 다리를 진정시키는 데 급급했다.


난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아 건반에 손을 올렸다. 첫 번째 곡인 쇼팽 에튀드 op. 25 no. 6을 머리 속으로 떠올렸다. 오른손은 거미 다리같이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3도 진행을 연주해야 했다. 집에서는 꽤 그럴듯하게 연주를 해냈다.


하지만 좀처럼 시작을 못 했다. 천천히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잡았고 그러다 마침내 짧게 숨을 들이마신 뒤에 용기 내어 첫 마디를 쳤다. 첫 음부터 오른손가락이 뭉개지고 팔이 뻣뻣하게 굳었다. 곡의 화성을 받쳐주는 왼손은 정확한 위치를 짚지 못하고 어긋났다. 사람들 앞에서 뽐낼 욕심에 골랐던 곡이 내 밑바닥을 드러냈다.


두 번째 곡인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는 나를 도망칠 수 없는 구석으로 몰아갔다.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오른손 도약에선 손가락이 미끄러졌고, 이어지는 화려한 테크닉들은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무대에서 뛰쳐 내려가고 싶었다.


7분 남짓한 짧은 연주를 끝내고 난 잔뜩 굳은 얼굴로 무대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의 박수 소리는 비웃음 소리처럼 들렸다.


모든 연주가 끝난 뒤, 우리는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난 사촌 동생 옆 가장자리에 앉아 생수에 소주만 계속 들이키며 무대를 곱씹기 바빴다. 그때 두 번째 연주자가 내게 말을 건넸다.


“슬희님, 전공 하신 거죠?”


몰려오는 수치심에 나는 말을 더듬었다.


“어…어렸을 때요. 학부 전공이 피아노예요. 지금은 아니고요”


전공을 했으면 했다고 하면 되지, 굳이 ‘어렸을 때요… 학부 전공이… 지금은 아니고요…’라는 말을 붙여댔다. 난 비겁하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집사람이 뛰쳐나와 온갖 질문들을 쏟아냈다.


“쮸리, 오늘 어땠어? 피아노는 잘 쳤어? 기분은 어땠어? 사람들이 박수 많이 쳐줬어?”


“망쳤어”


난 연습 모임에서 본 취미생들의 진심을, 나의 오만함을 털어놓았다.


“취미생만 있다는 거 순 뻥이야. 전공을 안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쳐? 그 사람들 앞에서 엉망진창으로 쳐서 진짜 쪽팔려. 난 왜 그렇게 자만했던 거지? 뭘 믿고? 부끄러워 죽겠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자책을 하는 내게 “그래도 잘 했을 거야.”라고 집사람이 말을 건넸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집사람에게 말했다.


“나 피아노 다시 배워야겠어.”




바쁜 직장인에겐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스케쥴을 보니 레슨을 정기적으로 받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난 단기 레슨을 받기로 결정하고 우선 숨고 어플부터 살펴봤다.


아마도 숨은 고수의 줄임말일 어플에는 다양한 경력의 선생님들이 있었다. 대학생, 학원 강사, 프로 연주자까지. 그들의 이력서를 살펴보던 나는 문득 망설였다. 얼굴도 실력도 모르는 사람에게 비싼 레슨비를 들여서 피아노를 배우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레슨비를 아끼자고 음대 졸업생인 내가 음대생에게 배우는 것도 웃겼다.


난 숨고 어플을 닫고 인연이 닿아 있는 교수님들을 떠올려봤다. 입시 때 교수님은 연락을 안 드린 지 너무 오래돼 연락처조차 없었다. 졸업 이후로도 종종 뵙고 있는 음대 시절 담당 교수님은 ‘즐기는 음악’을 가르치는 분이셨다. 지금 내겐 문제점을 콕 찝어 고쳐줄 수 있는, 연륜 있는 선생님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난 게 친구의 담당 교수님이신 홍 교수님이었다. 친구 따라가서 봤던 홍 교수님의 바흐 연주는 충격이었다. 딱딱하다고만 느끼고 있던 바흐 음악이 교수님의 손끝에서 아름답게 풀어졌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의 깊이 있는 음악에 너무 감동을 받아 매 연주마다 쫓아다니기까지 했었다.


난 ‘학부 제자도 아니었는데 날 제자로 받아 주실까?’ 하는 걱정을 안고 홍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수님, 저 슬희예요. 잘 지내고 계시죠? 다름이 아니라, 저 피아노 다시 쳐보려고 하는데요, 오랜만에 치려니 잘 안돼서 교수님께 몇 번 배우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교수님은 무척 상기된 목소리로 반겨주셨다.


“어머!! 슬희야~ 너무 기쁜 소식이다~ 당연히 배우러 와도 되지~ 웬일이니~ 피아노 다시 시작하려구? 너무 기특하다 얘~ 언제 올래? 바로 날 잡자!”


교수님의 환대에 괜히 마음이 벅차올랐다. 온 세상이 내가 다시 피아노 치는 것을 기뻐해 주는 것 같았다. 교수님과 일정을 잡은 뒤 난 더욱 연습에 몰두했다.



교수님 댁은 차로 40분 걸렸다. 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교수님을 따라 들어간 피아노 방은 무겁고 두꺼운 문 두 개를 열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방 안엔 그랜드 피아노가 두 대 놓여 있었고 벽엔 연주 포스터와 악보가 가득했다. 나도 이런 피아노 방이 갖고 싶어졌다. 이런 방을 만들려면 돈을 얼마나 들여야 할까?


교수님은 레슨용 영창 그랜드 피아노에 나를 앉힌 뒤 준비해 온 곡을 쳐보라고 하셨다. 나는 다시 만회해야만 하는 리스트 ‘라 캄파넬라’와 쇼팽 에튀드 op. 25 no. 6을 교수님 앞에서 연주했다.


교수님은 잠자코 듣고만 계셨다. 오랜만인데 감각이 살아있다고 칭찬을 해주실까? 이것만 고치면 잘하겠다고 다독여주실까? 아니면 연습 방향성을 조언해 주실까? 어떤 말씀을 하실지 가늠이 안 됐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교수님은 악보를 보며 침묵하셨다. 그리고 무척 상냥한 말투로 마침내 말씀하셨다.


“슬희야. 이 곡은 몇 분의 몇 박자니?”


생각지도 못한, 가장 기초를 묻는 질문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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