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독주회를 기획하다

난 독주회를 해야만 한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첫 번째 피아노 동호회 연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사람들에게 박수 받던 순간이 자꾸만 떠올랐다. 퇴근 후 연습실에 틀어박혀 피아노에 매달린 채 애쓰던 시간들을 보상받은 것 같았고 잃었던 내 존재가 다시 일어서는 기분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은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서 곧 죽고 말 거라는 공포가 생기는 공황장애식 두근거림이 아니었다. 무대 전후에 느끼는 긴장감이 불러일으키는 두근거림도 아니었다. 어린이날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부풀어있고, 오랜 시간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오늘 뭐해?" 라는 문자를 받은 사랑꾼처럼 짜릿한 두근거림이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이 두근거림을 또 느끼고 싶었다. 다만 보다 강렬한 두근거림을 느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피아노 동호회 연주회에서 받은 박수는 내가 원하던 것보다 모자랐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환호성이 터져 나와서 도파민이 폭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오직 내게만 집중돼야 하는 것이다. 나 아무래도 독주회를 열어야겠다.


달력을 봤다. 매년 2월 초는 회사의 일 년 사업이 마무리되는 주간이었다.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조금 한산한 때 독주회를 열면 되겠다 싶었다. 한... 2월 마지막 주 수요일쯤으로.


그러면 곡은 뭘 할까. 내가 쳤던 악보들을 꺼내 살펴봤다. 홍슬희 하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였으니 빼놓을 수 없겠고, 우아하고 격정적인 쇼팽의 ‘발라드 3번'도 좋겠다. 친구들이 나와 어울린다며 추천해 줬던 맥도웰의 '마녀의 춤', 내가 우울과 공황장애의 수렁에 빠져있을 때 찾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4번'도 있었다. 이 네 곡 사이사이에 끼워 넣을 곡들은... 교수님께 레슨 받을 때 정하지 뭐.

난 집사람을 붙잡고 원대하지만 아직 스케치에 불과한 독주회 계획을 늘어놨다. 집사람은 횡설수설 두서없이 내뱉는 말에 재밌을 것 같다며 맞장구를 쳤고, 난 그 맞장구에 더 신나서 내친김에 독주회 타이틀을 정하기로 했다. 키워드는 파티, 연주회, 독주회, 쌀롱, 피아노 등이 있었다.


내가 한참 키워드를 붙잡고 끙끙대자, 집사람이 물었다.


"독주회가 왜 하고 싶은데?"


난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내가 박수 받고 싶어서!"


타이틀은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이듯 정해졌다.


스리가 박수 받고 싶어서 하는 피아노 파티 『홍슬희 쌀롱』


딱 이거다 싶은 타이틀이었다. 나는 신나서 공연 장소를 물색했다. 우선 맛있는 음식과 술을 파는 곳이 좋겠다 싶었다. 숨 가쁘게 '라 캄파넬라'를 마치고 우레 같은 박수 속에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는 거다. 관객들도, 나도. 또 빈자리를 의식하지 않도록 공간이 작아야 했다. 우울과 공황장애를 겪은 인간의 주변 관계란 좁기 마련이니까.


"술 마실 거면 차 가지고 가야 하는 곳은 안 되겠네?"


집사람이 옳은 지적을 했다. 서울과 경기도 곳곳에 사는 지인들을 초대할 생각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오가기가 편한 지역으로 장소를 찾아봐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그랜드피아노였다. 14년 만에 서는 독주 무대에, 음대 시절처럼 예쁜 드레스를 입고 눈가도 반짝거리게 화장할 생각인데, 업라이트피아노를 친다? 말도 안 된다. 속된 말로 간지가 나야지. 무조건 그랜드피아노가 있어야 했다.


난 지도 앱에서 '근처 그랜드피아노 와인바'를 검색했다. 두 곳이 연관 검색에 걸렸다. 첫 번째 집은 카페였는데 그랜드피아노가 아닌 업라이트피아노가 놓여있었고 와인도 팔지 않았다. 두 번째 집은 약간 어두운 분위기에 와인, 칵테일을 파는 술집이었지만 역시 업라이트피아노가 놓여있었다.

지역 범위를 조금 더 넓혔다. 지하철로 다섯 정거장 떨어진 지역에 한 곳이 있었다. 작은 무대에 갈색 그랜드피아노가 놓여있고 노란 조명이 어두운 공간을 은은하게 비추는 와인바였다. 음식 사진도 살펴보니 와인과 잘 어울리는 플레이팅으로 내어졌다. 게다가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내가 상상하던 홍슬희 쌀롱의 무대 그 자체였다.


그때가 새벽 1시였다. 대관 문의는 내일로 미뤄야겠지, 포스터는 어떻게 만들까, 보통 클래식 연주회 포스터는 사람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박아두는데, 티켓은 팔까 말까, 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들었다.




내일의 나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랬다. 다음 날 일어나서 독주회를 생각해보니, 조금 오바했나 싶었다. 피아노를 다시 친지 겨우 두 달밖에 안 됐으면서 독주회를 기획하다니. 회사일도 바쁘고 집사람이랑 데이트도 해야 하는데, 반 년 안에 곡을 완성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홍 교수님은 뭐라고 하실까. 아직 이르다고 하실지, 무모하다고 하실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오늘이 레슨날이었다. 교수님은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피아노 동호회 연주에 대해 물어보셨다. 본격적으로 인연을 튼 지는 한 달쯤 됐지만, 어쨌거나 제자가 기특하게도 스스로 다시 무대에 올랐으니 궁금하실 법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실수를 몇 번 해서 아쉽긴 했는데, 연주 끝내고 나니까 너무 뿌듯하고 행복하고 벅차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 독주회 하고 싶어요. 저 할 수 있을까요?”


교수님은 거의 소리치듯이 말씀하셨다.


“슬희야, 해! 하면 되지! 너무 잘 생각했다! 연주하고 나면 엄청 성장하거든. 우리 같이 준비해 보자.”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에, 나는 용기가 생겼다.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친 뒤 박수 소리를 독식하며 우아하게 와인잔을 들어올릴 나를 상상하니 벌써부터 입술이 씰룩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