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텅텅 음대 졸업생의 업보
난 머리가 텅텅 비어 있다. 절대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자책하는 말은 아니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생 땐 손가락 굴리기 바빴고, 음대 시절엔 무대나 찾아다녔지 음악 지식을 쌓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음악사나 화성학 강의는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강의실을 나서기 위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내 귀로 들어온 강의는 머릿속에 남지 않고 그대로 휘발되었다. 굳이 잡으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피아노만 잘 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동기들 보다 무대에 더 많이 섰고 몇 명 못 받는 실기 우수장학금도 여러 번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툭툭 건드는 친구가 있었다. “네 음악은 가벼워, 깊이가 없어. 네가 뭘 치는지 알곤 있어? 공부도 하고 다른 곡들 좀 들어봐.” 연습실에 붙어있기보단 나가 놀기 좋아하던 친구의 말에 기가 찼다. 자기는 연습도 열심히 안 하면서 뭘 안다고. 워낙 성격이 잘 맞아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였지만 한 번씩 저런 말을 할 때면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실제로 한 대 쥐어박았을지도 모른다.
교수님께 독주회에서 치고 싶은 곡들을 말씀드렸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4번 1악장, 리스트 라 캄파넬라, 쇼팽 발라드 3번, 맥도웰 마녀의 춤. “어머, 그거 잘 골랐다, 슬희 너랑 잘 어울리는데? 프로그램 괜찮네.” 하는 교수님의 추임새는 곡만 골랐을 뿐인데도 엄청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교수님은 뒤이어 “또 어떤 곡을 치고 싶니?”라고 물어보셨다. ...맙소사. 생각나는 곡이 없었다. 먼저 고른 네 곡은 25분 정도 걸리고 이왕 독주회 하는 거 한 시간은 채워야 하는데 더 칠만한 곡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졸업연주 때 쳤던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5번? 아니면 3학년 때 쳤던 슈만의 카니발이나 라흐마니노프의 사랑의 기쁨? 겨우 세 곡만 떠오르다니 한숨만 나왔다.
손가락 굴리는 데에만 심취해 있던 음대생 시절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내 취향을 찾을 새도 없이 그저 사람들이 ‘우와’ 할만한 곡들만 찾아다녔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내가 치는 곡에 대해 알려고도 않았다. 졸업연주로 쳤던 그라나도스가 어느 나라 작곡가인지, 고예스카스가 무엇을 뜻하는지 지금도 모른다.
이 좁디좁은 견문이 내 발목을 붙잡고야 말았다. 난 부끄러워 교수님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건반만 응시하며 교수님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할까 하던 중 14년 전 친구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네 음악은 깊이가 없어. 가벼워.” 이제서야 친구의 말이 이해됐다. 친구는 내 음악의 민낯을 꿰뚫어본 것이었다.
“저 이왕 하는 거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는 곡을 준비해서 연주하고 싶어요. 여러 곡 추천해 주시면 골라볼게요.”
공부하고 싶단 내 대답에 교수님은 너무 좋아하시면서 책장에서 이것저것 악보를 골라내기 시작하셨다.
바흐 인벤션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음대 실기곡으로 나오니까 이해됐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화려하고 낭만적인 리스트나 쇼팽에 비해 악보를 보는 것 자체는 쉽다. 하지만 모차르트 특유의 반짝거리며 통통거리는 음색을 살리면서도 양손을 고르게 치는 건 참 까다롭다. 모차르트는 배울 게 많겠다 싶어 단숨에 납득했다.
그런데 바흐 인벤션은... 보통 바흐 인벤션은 초등학생들이 피아노학원에서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와 부르크뮐러, 소나티네를 어느 정도 익힌 뒤 배우는 곡이다. 학원에서 배우니 깊이는 부족했겠지만, 나도 초등학교 2학년쯤부터 인벤션 중에서 여러 곡을 쳤었다. 초등학생 때 치는 곡을 내주시다니.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음대 졸업생인데, 체면이 구겨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교수님은 내 의아함을 눈치채시곤 말씀하셨다.
“슬희야, 일단 해봐. 인벤션에서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생각보다 쉽지 않을걸?”
믿을 건 교수님뿐이었으니 묻고 따지지도 않고 교수님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레슨을 마친 뒤 다음 시간까지 인벤션 15곡 중 2곡,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중 1곡을 정해서 오기로 했다.
집에 오자마자 바흐 인벤션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악보를 꺼냈다. 이왕 초등학생 때 쳤던 바흐 인벤션을 하기로 했으니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도 초등학생 때 쳤던 걸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고른 곡은 바흐 인벤션 4, 8번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이 세 곡은 모두 유명하니까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먼저 바흐 인벤션 악보를 펼쳤다. 이게 웬걸. 겨우 두 페이지짜리 악보 앞에서 손가락이 길을 잃고 말았다. 조금만 패턴을 익히면 손가락이 굴러가던 베토벤과는 달랐다. 익숙하지 않은 구조에 자꾸만 손가락을 헛짚었다. 게다가 쇼팽처럼 왼손이 반주, 오른손이 멜로디를 맡는 구조도 아니었다. 바흐에서는 왼손도 노래, 오른손도 노래였다. 마치 두 사람이 2중창을 부르듯. 각 성부는 서로의 멜로디를 침범하면 안 됐고 중요한 멜로디는 더욱 표현을 살려야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겨우 2성부 곡인데 이렇게 헤매다니.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악보를 펼쳤다. 손가락은 굴러가니 일단 마음은 편했다. 그런데 계속 치고 있자니 모차르트 특유의 느낌이 살지 않았다. 자고로 모차르트 음악은 대체적으로 밝고, 맑고, 산뜻하고 가볍게 통통거린다. 특히 16번은 더 그렇다. 반면 내가 치고 있는 모차르트는 무거워서 베토벤 같기도 했고 너무 과하게 감정을 담아 쇼팽 같기도 했다. 심지어 가볍게 통통거리며 움직여야 할 손가락이 투박하게 움직여 소리가 뭉치기까지 했다.
악보를 덮고 잠깐 거실로 나와 보리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이건 업보다.’
어려운 아이들을 선택했으니까, 우울과 공황장애로 난 힘드니까 변명하며 클래식 피아노를 떠나있던 세월이 14년이었다. 다시 피아노를 해보겠다고 다짐한 지금은 이 뒤뚱거리는 손가락에 댈 핑계가 내겐 없었다. 곡을 바꾸자니 스무 해도 더 전에 이 곡을 쳤던 초등학생 홍슬희에게 진 기분이었다. 초등학생 홍슬희는 이 곡을 매일 연습해서 결국엔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지, 아마. 그러고 보니 초등학생 정도는 해볼 만하지 않나?
피아노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연습 일기장을 펼쳐 목표를 써 내려갔다.
바흐 인벤션 4번, 8번
- 악보 꼼꼼하게 읽기
- 테마를 파악하고 각 성부를 따로 연습하기
- 손가락 움직이기 불편한 부분들 확인하고 이유 찾아보기
- 피아니스트 음반을 들으며 더욱 살려야 할 표현 찾기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전 악장
1악장
- 메트로놈 켜놓고 천천히 연습하기
- 곡에 나오는 스케일 연습하기
- 뭉개지거나 꼬이는 곳 부분 연습 하기
2악장, 3악장
- 편안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천천히 악보 읽기
바쁜 직장인 홍슬희가 연습 시간이 넘쳐나는 초등학생 홍슬희를 이기려면 전략이 필요했다. 그 전략은 역설적으로 아주 느긋하고 소소한 목표를 세워 달성하는 것이었다. 바쁘디바쁜 직장인 생활과 피아노로 돌아온 사람의 생활을 적절하게 버무려내는 것이다. 체력이 바닥나버리면 14년 만에 찾은 내 의지와 의욕도 소용없어진다. 그래야 직장 다니면서도 독주회를 준비할 수 있다.
목표가 가득 채워진 일기장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 느긋한 마음을 되새기며 바흐 인벤션 4번 악보를 펼쳐 하나하나 뜯어보듯 살펴봤다.
- 오른손은 처음 2마디 동안 16분음표로 상승했다가 낮은음을 재빠르게 한 번 찍고 다시 높은 음으로 올라가 하나씩 내려온다.
- 곧이어 왼손이 튀어 나와 오른손과 완벽하게 같은 음을 노래한다.
- 왼손이 테마를 노래할 땐 오른손 파트에선 8분음표로 음들이 옆으로 펼쳐져 나오며 리듬감과 화성에 풍부함을 더한다.
이게 테마인가 보군.
- 다음부터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테마가 오른손에서 연이어 세 번 나온다.
- 곡이 연주되는 동안 테마는 계속 변형돼서 오른손, 왼손을 넘나들며 나온다.
이렇게 세밀히 살펴보긴 처음이었다. 손가락만 굴리는 피아노를 넘어서는 깊이 있는 음악을 향해 발을 뗀 거다. 물론, 화성의 변화, 화성 간의 관계, 연결구와 같은 곡의 구조까지 다 보아야 하지만, 난 이론 공부를 전혀 안 했으니 이정도의 발견만으로도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분명 테마를 파악했음에도 양손을 동시에 치려니 서로 자기가 테마라며 소리치고 있는 꼴이 펼쳐졌다. 도저히 내 피아노를 들을 수가 없어서 귀를 씻어내고 싶어 바흐의 대가 글렌 굴드의 인벤션을 찾아 들었다. 테마는 명확하게 연주됐고, 곳곳에서 받쳐주는 화성들도 함께 노래를 하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양손 성부를 따로 연습하되 테마를 과장해서 크고 센 소리로 쳐보기로 했다. 곡이 워낙 짧아 10분만 연습해도 충분했다. 2개 성부를 귀와 손에 익힌 뒤 슬며시 합쳐봤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벤션을 쳤을 때보다 훨씬 좋게 들렸다. 난 신나서 함께 골랐던 인벤션 8번도 같은 방법으로 연습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연습 방향이 확실하게 그려졌다. 시원한 바람에 먼지구름이 멀리 날아가며 새파란 하늘이 열리는 순간,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처럼 가슴이 뻥 뚫렸다.
기분이 좋아진 김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악보를 펼쳤다. 인벤션처럼 분석을 해볼까 하고 악보를 들여다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소나타 형식도 분석할 수 없는 음대 졸업생이라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분석이야 나중에 논문 찾아보면 되니 우선 메트로놈을 켜놓고 천천히 박자를 잡아가는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갑갑함을 느꼈다. 난 어릴 때부터 메트로놈 연습을 싫어했다. 분명 메트로놈 시작과 동시에 피아노를 치는데 어느 순간이면 어긋남이 쌓였다. 기계가 틀릴 리 없으니 내 탓이란 건데 내 탓을 하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똑딱거리는 소리 안에 나를 가두는 느낌도 싫었다. 메트로놈 연습 = 고역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홍슬희쌀롱을 해야 했기에 이 끔찍한 괴로움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연습했다. 박자가 크게 흔들리는 곳들을 찾아 악보에 별을 그려 표시하고 정박에 들어갈 때까지 집중 연습을 이어갔다. 메트로놈의 박자감에 꽤 익숙해진 뒤에는 메트로놈을 끄고 손가락이 꼬이거나 뭉개지는 곳들을 다시 점검했다. 연습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질 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여전히 말을 안 듣는 손가락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고치기만 하면 무조건 나아질 상황밖에 남지 않았다는, 기분 좋은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그때 집사람이 쓱 다가오더니 연습 중인 건반을 뚱땅거렸다. 내가 치는 건반의 소리와 집사람이 치는 건반의 소리가 서로 다르지 않았다. 반짝거리고 또랑또랑한 소리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피아노를 한 번도 안 배운 사람과 전공한 사람의 음색이 같다니. 몇 분의 몇 박자냔 질문을 받았을 때와 같은 정도의 충격이었다.
이건…… 디지털 피아노의 특성이었다. 당근에서 업어온 이 야마하 디지털 피아노의 음색은 참 맑고 예쁘다. 하지만 결국엔 전자 기계일 뿐이었다. 교수님이 치든, 내가 치든, 집사람이 치든, 같은 소리를 낸다. 터치감에 따라서도 표현에 천지 차이를 보이는 피아노이기에 이 디지털 피아노로는 깊은 연습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난 당장 그날그날 예약하던 연습실을 한 달 치 통으로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