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게임의 파이, 더지니어스의 조유영
어렸을 때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았습니다. 귀여운 동물인형 보다도 진짜 동물 그 자체에 더 관심이 있었던 어린이에게 날 것 그대로의 동물의 삶이 흥미로웠습니다.
TV에서 사회실험은 교양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예능 요소를 도입해서 연출한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서바이버 시리즈가 해당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여럿 있었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EBS의 리얼 실험프로젝트 X 시리즈였습니다.
가장 처음 보았던 것은 인터넷 쇼핑만으로 한달살기 실험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 쇼핑과 택배가 발달했다면 그 결과나 너무 뻔히 예상되서 재미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사회실험 프로그램에 예능적인 요소란 기본적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난다는데 있습니다.
리얼실험프로젝트 X에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은 일반인 대상 무인도 체험이었습니다.
제작진은 사전에 5KG가 넘지않는 범위에서 생존 물품을 가져오라고 했답니다.
이들은 먹을건 주는줄 알았다고 합니다. 책을 가져왔네요.
이들이 일주일간 살게된 무인도는 거주환경이 척박하여 오래 전 선주민이 염소 몇마리 키우다가 집을 비우고 떠나버린 섬입니다. 무인도체험에서 제공하는 것은 따로 없습니다. 생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버려진 낚시 도구로 물고기를 잡으려해도 마땅한 장소가 없습니다.
애당초 이 섬이 사람이 살만한 섬이었다면, 낚시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섬이었다면 무인도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래전 버려진 염소가 있지 않을까 희망을 하기도 했지만 가혹한 생존환경에서 식량을 구하는데 실패한 이들은 한 명만이 가져온 쌀을 소진하고 쫄쫄 굶기를 이어가다가 제작진 텐트를 기습해서 초코파이를 훔쳐먹기에 이릅니다. 결국 실험을 중단하고 집단 퇴소를 결정합니다. 어딘가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머니게임의 참가자들이 인간관계 갈등으로 인해 퇴소를 결정했다면 이들은 식량난으로 인해 퇴소를 결정합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섬 밖 육지로 나간 이들은 치킨을 뜯고 과자를 먹으면서 욕구를 채우고는 실험 복귀를 결정합니다.
머니게임의 퇴소자들이 남성참가자들의 사과를 받고 복귀했듯이 말입니다.
사회실험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점은 이렇듯 룰을 넘어선 일들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데드풀>에서 데드풀이 관객에게 말을 걸듯이 욕구가 제한된 극단의 상황에서 이들은 처음에 설정된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이것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느냐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데드풀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은 대부분의 관객을 납득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데드풀1의 경우 한국에서 호불호가 갈리다는 평이 주류였지만 북미 코믹스 데드풀이 원래 그렇다는 리뷰 후기들이 공감대를 얻으면서 데드풀 2는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문법이라도 납득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1박2일> 초창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회당 수백만원의 출연료를 받는 강호동이나 출연자들이 1,000원짜리 김밥에 목숨을 걸고 게임하는 일에 쉽게 몰입할 수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몰래 돈을 숨기거나 배낭에 미리 먹을걸 넣어오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따금씩 보여지는 수십대의 카메라들과 심지어는 출연자들이 잠을 잘때도 돌아가는 적외선 카메라, 가방검사를 하는 PD의 모습을 꾸준히 보면서 시청자들도 리얼 야생 로드버라이어티를 납득하게 된 것입니다.
반면에 <지니어스>의 조유영과 <머니게임>의 파이는 이 지점에 실패했습니다. 정확히는 제작진이 이러한 연출에 실패한 것입니다.
<지니어스2>는 룰 브레이커라는 부제목을 달고 나오면서 <지니어스1>에서 절도와 폭력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은지원 등이 이두희의 신분증(게임내에서 사용되는 아이템)을 돌려주지 않은 행동을 절도이며 집단따돌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명시적인 규칙이 아니기에 게임에서 허용되는 행동이지만 시청자들은 납득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래 글은 2013년 12월에 쓴 글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니어스 참가자들을 동물원에 갇힌 동물로 보고 있습니다. 어차피 그들이 택할 행동은 생존이라는 목적에서 파생된 것들이라 보고 최종 목적이 생존이라면 모든 행동에는 윤리적인 의미를 최대한 배제하고 보는게 맞다고 봅니다.
지니어스에서는 은지원처럼 게임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것도 하나의 생존전략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낭패였는지 아닌지는 우린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오로지 탈락시점에서만 그것을 온당하게 평가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조유영을 비난하는 입장이 불편한 이유는 첫번째는 조유영의 행동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는 비판입니다.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오판에 대해서는 각자의 합리적 추정아래 비판할 수 있겠지만 조유영의 선택이 어떤 나비효과가 되어 어떻게 돌아올지는 시청자가 '신' 아닌 입장에서 제한된 판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각자의 조유영 행동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인 진리입니다.
두번째는 조유영이 방송인 연합에 일조했다는 점입니다 이건 지니어스 게임에 대한 흥미를 저해할 수 있다는 면에서 제작진을 향한 지적으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조유영이 지니어스 게임의 흥미를 위해 행동해야 할까요? 대다수 시청자가 정치적인 파워게임보다는 지능으로 승부하는 게임에 호감이 있고 그런 취향이라는 것과 조유영이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당위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만약 지니어스에 다리가 한쪽씩 밖에 없는 장애인들이 출전한다고 봅시다. 이들이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로 어깨를 짊어지고 연합한다고 칩시다. 이들은 서로 누군가가 떨어지면 앞으로의 게임에 대단히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서로를 생존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장애인으로서 친목질 하는 행위고
치팅으로 비난할 것인가요?
방송인연합이 흥미를 저해한다는 지적은 어디까지나 시청자들의 미학적인 취향문제입니다. 만약 그게 문제라면 친목질이 기능하도록 설계를 한 제작진에게 비판이 돌아가야 온당하다고 봅니다. 움직임이 제한된 장기말을 두고 너는 왜 퀸처럼 움직이지 못하느냐는 건 비판이 될 수 없습니다. 홍진호의 플레이는 홍진호만이 할 수 있죠. 그래서 우리가 홍진호를 좋아하는 것 아니었나요?
머니게임의 시청자들을 격분하게 한 것은 집단퇴소 장면일 것입니다. 어렵게 공개된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게임 내에서도 퇴소를 거론한 것은 제작진 이하 모든 관련자들에 대한 갑질로 느껴졌습니다.
"돈 따러 왔다며 XXX들아"
공혁준의 외침이 적나라하게 공감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집단퇴소로 마무리되었더라면 지금만큼 비난이 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게임으로 복귀해서는 성별에 따른 파벌 전략을 유지하면서 상금을 획득했습니다. 심지어는 게임에서 중도 퇴소한 이들까지 상금을 분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치팅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사회실험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상금을 나눠갖기로 한 것은 경계를 넘어선게 아니냐는 논란입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온당하게 평가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불문율을 어긴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1 프로게이머들에게 벙커링이나 4드론 같은 전략은 사도로 여겨졌습니다. 지금 역시 그러한 인식은 마찬가지지만 방송경기에서는 두 프로게이머가 치열하게 주고 받는 운영형 경기가 시청자들에 대한 매너라는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문율은 낭만주의 시대를 넘어서 성적에 따라 생계를 걸고 싸우는 프로 시대가 되고는 여러가지 선택지 중 하나로 재평가되었습니다.
<머니게임>에서 파이 일당이 벌인 일들도 재평가를 받을 날이 올까요? 사람이 기존에 갖고있는 신념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대중들에게 사회실험에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은 것으로 판단된 이상. 그리고 그 판단을 계속해서 재확인시켜준 이상 재평가 받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파이에게 남은 것은 제작진을 향해 화살을 돌리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일면 정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김계란 팀이라고 알려진 3Y 코퍼레이션에서 제작한 웹 예능은 가짜사나이2와 본작인 머니게임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다만 과거 가짜사나이2에서 일어났던 논란으로 인해 이번작에서는 진용진을 메인에 내세우고 본인들은 파트너로 조용히 협력했습니다.
파이 섭외과정에서 김계란이 파이에게 보여준 배려와 말솜씨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김계란 팀, 피지컬 갤러리, 가짜사나이를 거쳐 2030 젊은 남성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그들이 놓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들은 관계성 폭력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전기와 공혁준이 공금 8천만원을 이용해서 생존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반박하는 모습에서 여성출연자들은 할말을 잃고 분노했습니다. 심지어 육지담 출연자는 무섭다며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정신병 관련 언급은 인격모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이 전에 공혁준이 담배를 많이 피운다며 내쫓으려 하긴 했지만 공혁준이 울지 않았기에 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공혁준이 도리어 냉정하게 판단하고 생존을 위해 연합을 구성하는 모습은 여성 출연자들에게는 침착하다는 좋은 느낌보다는 비인간적이고 내쫓아야될 대상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논리를 말하며 꼬박 반박하는 전기 출연자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의리를 앞세워서 몸싸움 하루 뒤 극적 화해를 이룬 박형준 출연자와 가오가이 출연자는 감당할 수 있는 대상으로 느껴진 반면에 사고형 두뇌로 보여지는 공전 연합에게는 그러한 감정을 못느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여성출연자들의 감정선 연출이 <머니게임>에는 배제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내로남불'이라는 형식적 오류에 엄격한 세상입니다. 조국 사태를 비롯한 여러 정치 사회적 갈등을 겪으며 '공정'이라는 화두가 중요하게 떠올랐으나 대중들에게는 형식적 오류가 있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의가 팽배해있습니다.
얼마전 친구와 이야기 나누던 중에 말이 나왔습니다. 친구는 조희연 교육감이 아들을 특목고에 보냈으면서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면서도 절차적 문제가 없다면 특목고에 아들을 보낸 것은 문제가 안된다고 반박했습니다.
"아들을 특목고에 보낸 사람이 어떻게 특목고 폐지를 주장할 수 있나"
언틋 일리있는 말처럼 느껴집니다만 저는 이런 자세에 대해 관점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개인으로서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들을 특목고에 보낸 것은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일은 맞습니다.
그러나 절차적 문제가 없었고 아들이 특목고를 졸업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이 손해보다 크다면 그것을 선택한 것은 합리입니다.
그리고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교육감이라는 교육자이자 행정가적 관점에서 특목고 폐지가 우리 사회에 주는 손실이 이득보다 크다면 특목고 폐지를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는 더 도덕적인 행동과 덜 도덕적인 행동을 금방이라도 구분할 수 있는 규범적인 판단능력을 획득했습니다.
그렇지만 도덕을 무장으로 남을 공격하는 전쟁의 기술로 사용하는건지 사회를 더 진보하게 만드려는 목적인지 비난과 비판의 경계를 구분하는, 스스로를 진단하는 메타-도덕적인 판단능력, 자기성찰능력은 맞추어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성현의 말씀으로 긴 글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너희들은 너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자들이다(소크라테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