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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샘 Aug 28. 2020

장률의 후쿠오카

그냥 낯선 도시


장률 감독의 영화는 <경주>로 시작을 했는데 군대에서 이걸 보자고 했다가 

제대할때까지 영화선택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경주를 보신분들은 아실겁니다


장률 감독의 영화는 몇편 안보았지만 성적 긴장감이 바탕에 있습니다

복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맥거핀인 스타일이죠 


왓챠를 비롯해서 소위말하는 여성주의 평론들의 <후쿠오카> 비난이 엄청난데

얼마전 기안84 사태도 그렇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문화예술을 공격하는 태도가 적잖이 피로합니다 

중년 남성과 20대 여성 사이에 성적 긴장감이 있다는 것만 한줄평에 써서 혹평하는 관객들이 있습니다

장률 영화 같은 경우는 굳이 찾아서 봐야하는 영화라서 

혹평할 목적으로 1시간 30분이나 투자했을리는 없고, 포스터나 시놉시스를 보고 

한줄평을 남긴 것 같습니다. 안보고 썼다는 거죠 


<후쿠오카>에 대해 단순하게 소개하면 후쿠오카 한번 가자는 박소담의 제안을 

윤제문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되는 후쿠오카 여행을 그린 영화입니다 


스크린에 없는 인물의 말을 통해서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박소담은 일본인들과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 등 비현실적인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작중 인물들과 연락을 하지 않아도 어디있는지 귀신같이 알아냅니다

이외에도 온갖 설정들이 현실이 아니라는 듯한 느낌을 더해줍니다


1. 어린아이 같은 중년 남자들 


어린 아이는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지능력이 자기중심적인 수준밖에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지능력이 발달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관념입니다 


그렇지만 무의식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어린아이 시절의 사고가 작동합니다

멀어서 안보이는 것은 없는 것처럼, 가까운 것은 중요한 존재로 여겨집니다


제문과 해효는 28년동안 서로 떨어져 지냈지만 

해효가 운영하는 술집에 제문이 들른 뒤로는

서로 붙어다니며 대학시절처럼 술을 마셔댑니다 


꺼지라고 해봐야 꺼지지 않는 사람(소담, 제문)이 인생에 개입하는 걸 그들은 막지 못합니다

후쿠오카 가자길래 후쿠오카에 가고 의절하고 28년동안 안만났어도 

새벽에 술먹자는 전화를 걸어도 거절하는 법이 없습니다


해효와 제문은 서로 닮았고 어린아이처럼 눈에 띄는대로 어울리고 행동합니다

 

2. 말 


처음에 제문은 자신을 욕하는 남자의 말에 화를 냅니다. 

하지만 밀실과 같은 서점에는 제문과 소담만이 있을 뿐입니다.  

내면의 평화를 방해하는 팩트폭행은 사람을 짜증나게 합니다


100년이나 된 오래된 술집을 적막하게 운영하는 해효에게 "이러고 사는구나"는 

제문의 말은 악의가 크게 안느껴져도 짜증이 납니다 


해효의 단골 손님은 여자에게 차이고 10년동안 말을 안하고

소담의 아비는 아내가 도망간 후로 말수가 줄어 소담과 사는 동안 대화한 시간이 30분밖에 안됩니다  


<후쿠오카>에서 여자에게 차인 남자들은 말을 잃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집니다

자신들의 언행으로 인해 관계를 상실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타인은 지옥이란 걸 깨닫게 되었는지 이들은 실어증에 걸립니다 


제문과 해효는 이들과는 좀 다릅니다

이들의 삼각관계가 여자의 대학 자퇴로 마무리 되었지만

그녀가 자주가던 서점을 인수해 28년동안 서점을 운영하는 제문이나

그녀의 입학서류를 확인해서 출신지인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는 해효는

말주변을 잃지는 않은 것을 보니

자신들이 완전히 차였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3. 후쿠오카와 윤동주


재작년에 후쿠오카를 방문했을 때 윤동주가 목숨을 다한 곳이 후쿠오카 형무소라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가보았지만 그곳에는 리모델링된 구치소가 있을 뿐

윤동주를 기억할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장률 감독은 <후쿠오카>가 윤동주를 위해 만든 영화라는 언급을 합니다

주인공들이 윤동주의 시를 한참 읽기도 하고 그들이 사랑한 동아리 후배의 이름은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순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딱히 문학에 조예가 없는 저로서는 그것말고는 어떤 것도 읽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4. 경주, 군산 그리고 후쿠오카

<경주>는 고분의 도시가 가진 오래된 죽음의 이미지를, <군산>은 일제시대 번성했던 식민지 항구의 경계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주인공들이 고분에 오르고 일본식 가옥을 찾아다니는 모습들이 도시의 역사와 이미지를 잘 담아냈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후쿠오카는 좀 다릅니다 

<군산>과 <후쿠오카>에 등장하는 "후쿠오카나 한번 갈까"라는 대사는 

애초에 가까운 외국땅을 밟자는 의미 이상은 없습니다 


나카스 강이 등장하지만 나카스의 포장마차는 전혀 보이지 않고, 하카타역도 존재가 희미합니다

해효가 후쿠오카에 온 것이 순이를 만나기 위해서고 

제문이 후쿠오카에 온 것은 소담의 제안에 일단 끌렸을 뿐 

숙소에 도착한 후에는 어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는 후쿠오카하면 떠오르는 도시 이미지는 없습니다 

낯선 땅일뿐이니까요 

후쿠오카 나가하마의 돈코츠 라면

후쿠오카 나가하마에서 먹었던 라면이 그리웠던 저같은 사람들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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